“여뀌[蓼]. 이태원(利泰院)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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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뀌[蓼]. 이태원(利泰院)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도문대작] 45. 길섶의 잡초인 여뀌가 식용이었다고?

    • 입력 2024.09.28 00:04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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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우리가 늘 걸어 다니는 길섶에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식물이 살아간다. 이름을 알 수 있는 식물 종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잡초라는 이름으로 싸잡아서 거론되는 풀들인데, 알고 보면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우주를 감싸고 있다. 대부분 식물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동시에 대부분 식물에는 그 나름의 독을 품고 있으므로 이들을 어떻게 해독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도 한다. 날것으로 먹어도 인간에게 독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부터 아무리 작은 양을 먹어도 치명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식물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독을 내포하고 있다.

    작은 시내가 흘러가는 옆쪽이라든지 땅이 축축하여 습한 길섶에는 어김없이 여뀌가 군락을 이루어 자생한다. 생명력이 매우 강한 풀이어서, 어쩌다 낫이나 삽으로 캐내도 어느새 그곳을 무성하게 가득 채운다. 보통은 어른의 무릎을 넘지 않는 정도로 자라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에서는 그 이상으로도 자란다. 길쭉하고 날씬한 타원형의 잎에 줄기는 늘 똑바로 서서 자라는데,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여뀌를 자세히 살펴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잎의 모양새만 놓고 보면 얼핏 복숭아잎과 흡사한 느낌이 든다. 따가운 햇볕을 받으면서 여름을 무성하게 지낸 여뀌는 가을이 오면서 핑크빛 꽃을 피운다. 꽃대 하나만 놓고 보면 붉은색에 가까운 핑크빛이지만 군락으로 꽃을 피우면 길섶을 온통 붉게 물들이곤 한다. 그래서 근대 이전의 한시문에서 여뀌는 가을을 상징하는 단어처럼 사용된다. 요즘은 그저 잡초로 취급하는 바람에 이마저도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못하지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보면 예쁘다.”

    허균의 ‘도문대작’에서 여뀌 항목을 보았을 때 약간은 당황했다. 나는 이것을 한 번도 먹는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주변 어른들에게 여쭈어보았는데 여뀌를 식용으로 삼았다는 사례를 들어보질 못했다. 그런데도 허균은 여뀌를 하나의 항목으로 설정하고 다음과 같이 썼다. “여뀌[蓼]. 이태원(利泰院)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여뀌가 식용이라는 것도 몰랐는데, 이태원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약간의 습기만 있는 땅이면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이 여뀌다. 지금도 그러한데 옛날에는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그런데 굳이 이태원에서 나는 여뀌를 최고로 기록한 허균의 글을 보면서, 나는 여뀌를 도대체 어떻게 먹었을까 궁금해졌다.

     

    황금빛 들녘에 벌개미취와 '여뀌'가 피어있다. 사진=연합뉴스
    황금빛 들녘에 벌개미취와 '여뀌'가 피어있다. 사진=연합뉴스

    오신채(五辛菜)가 있다. 독특한 향, 특히 매운맛이 있는 다섯 가지 나물이라는 의미이다. 특별히 스님들은 계율에 의해 오신채를 삼간다는 점이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을 뒤집어 생각하면 오신채는 일반인들에게 널리 식용으로 이용된다는 의미가 아닌가. 파, 마늘, 부추, 겨자와 함께 여뀌를 넣어서 오신채라고 부른다. 오랫동안 한문을 읽으면서 오신채의 용례를 수없이 많이 보았을 터인데, 나는 그저 일상적이고 관습적으로 보고 넘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신채를 늘 꼼꼼히 따져보았다면 예부터 여뀌를 식용으로 삼아왔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뀌는 봄이 되어 올라온 어린잎을 따서 나물로 먹는데 살짝 매운맛이 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오신채 중의 하나로 거론된다. 서거정은 자신의 채마밭에 ‘생강, 마늘, 파, 여뀌 등 다섯 가지 맛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고 자랑한 바 있다(廵菜圃有作, 사가시집 권51). 성현(成俔, 1439~1504)의 ‘청강곡(淸江曲)’이라는 한시에는 여뀌와 후추를 양념해서 가을 회를 저민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서 여뀌는 나물처럼 먹기보다는 양념으로 만들 때 식재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후기 문인인 이달충(李達衷, ?~1385)의 시 ‘산촌잡영(山村雜詠)’(동문선 권11)을 보면 산골의 가난한 살림살이를 이렇게 묘사한다. 풀을 베고 샘물 나오는 수맥을 찾다 보니 지형을 따라 초가집이 이어졌는데, 보리밥 그릇에는 피가 반이나 섞여 있고 여뀌 절임에는 마름도 끼어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시골의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반찬으로 여뀌를 소금에 절인 것이 등장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여뀌는 어디나 있는 것이니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소금에 절여서 반찬으로 먹었다.

    조선 후기 백과사전인 ‘산림경제’(권2)에 의하면 유인(楡仁) 즉 느릅나무 열매로 유인장(楡仁醬)을 만드는 방법이 나온다. 유인을 깨끗이 씻어 일주일 정도 물에 담가 두었다가 껍질이 뜨는 것은 걸러버리고 포대에 느슨하게 담아서 물속에서 흔들면 점액질이 빠진다. 거기에 물기를 없애고 여뀌즙을 뿌려서 볕에 말린다고 했다. 또 더위 먹은 사람에게 여뀌잎과 향유(香薷, 꿀풀 종류)를 달여서 먹인다고 했다.

    실제로 이렇게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윤휴(尹鑴, 1617~1680)의 ‘독서기(讀書記)’ (백호전서 권46)에는 여뀌를 여러 가지 고기와 함께 먹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돼지고기를 씀바귀로 싸고 여뀌로 배 속을 채우며, 닭고기를 삶되 해장(醢醬, 젓갈과 장)을 넣고 여뀌로 배 속을 채우며, 생선을 삶되 곤장(卵醬)을 넣고 여뀌로 배 속을 채우며, 자라를 삶되 해장을 넣고 여뀌로 배 속을 채운다.” 이는 ‘내칙(內則)’의 주석에 대한 독서기라서 고대 중국의 풍속일 터인데, 이런 방식으로 여뀌가 식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조선의 유학자들은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의 다양한 기록을 살펴볼 때 여뀌는 약용으로도 사용하고 나물이나 향신료, 즙 등으로 다양하게 먹었다. 어느 곳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풀이라는 것도 명확해 보인다. 그런데 허균이 이태원의 여뀌를 말하는 것은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이태원은 남대문을 나와서 남산 자락 아래를 지나 한강 쪽으로 갈 때 지나가는 길목이었으니, 여러 가지 이유로 이 길로 다니면서 여뀌를 먹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어떻게 먹었든 간에 허균의 ‘도문대작’을 통해 우리는 여뀌의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잡초로 취급되면서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여뀌가 한때는 우리의 입맛에 중요한 식재료였다니, 참으로 식물의 용도는 신기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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