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지방서 많이 나는 흰 앵두 맛은 붉은 앵두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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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동 지방서 많이 나는 흰 앵두 맛은 붉은 앵두만 못하다.”

    [김풍기 교수의 도문대작 읽기] 21. 영동 지역의 달고 큰 하얀 앵두

    • 입력 2024.04.13 00:01
    • 수정 2024.04.16 00:03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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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앵두가 열리기 시작하면 여름이 한창때로 접어든다는 뜻이었다. 대숲이 한층 푸르러지고 작은 바람에도 댓잎이 서걱거리면서 부딪기 시작하면 대숲 입구에 있던 앵두나무에는 붉은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 우물가에는 앵두나무가 두 그루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나무에서 열린 앵두를 따서 먹어 보면 어딘지 모르게 우리 집 앵두보다 맛이 적었다. 우리 집에 열리는 앵두 알은 크고 달았는데, 거기에 비하면 우물가의 앵두는 작고 신맛이 강했다. 지금도 나는 그 앵두만큼 맛있는 걸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앵두의 맛과 함께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만든 오묘한 맛 때문일 것이다.

     맛에 민감했던 허균이 여러 지역의 앵두를 맛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는 ‘도문대작’에서 이렇게 썼다. “앵두(櫻桃). 저자도(楮子島)에서 나는 것이 작은 밤만큼이나 크고 맛이 달다. 흰 앵두는 영동(嶺東) 지방에서 많이 나는데, 맛이 붉은 앵두만은 못하다.”

     

    작은 바람에도 댓잎이 서걱거리면서 부딪기 시작하면 대숲 입구에 있던 앵두나무에는 붉은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작은 바람에도 댓잎이 서걱거리면서 부딪기 시작하면 대숲 입구에 있던 앵두나무에는 붉은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저자도는 한강에 있던 사라진 섬이다. 서울의 압구정동과 옥수동 사이에 있었던 섬으로, 옛날 기록에 흔히 등장하는 동호(東湖)의 명승지라 할 수 있다. 이 섬은 대대로 왕실의 사유지로 상속되었는데, 경치가 좋아서 중국의 사신이 조선을 방문하면 이곳에 잔치 자리를 마련하고 선유(船遊)를 즐기던 곳이기도 하다. 강변에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되는 닥나무가 많이 자라기 때문에 저자도(‘저자’는 닥나무라는 뜻이다)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이후 골재 채취를 저자도에서 했는데, 그 바람에 36만여평에 달하던 이 섬은 완전히 사라졌다.

     근대와 함께 없어진 것은 앵두만이 아니었다. 허균이 그토록 맛있다고 했던 앵두, 크기는 작은 밤만큼이 하고 단 앵두와 함께 그것을 길러내던 저자도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허균의 ‘도문대작’을 통해서 사라진 앵두를 상상할 수 있다. 앵두가 아무리 크다고 해서 작은 밤 정도의 크기라니,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게다가 맛이 달다고 했으니 그 앵두를 먹으려고 봄이 다 가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오죽했을까. 어렸을 적 살던 집의 앵두도 제법 달았다. 앵두가 빨갛게 익어서 말랑말랑해진 것을 입에 넣으면 씨를 발라낼 필요도 없이 과육은 녹듯이 사라지고 씨만 남았다. 어쩌면 허균이 맛보았던 저자도의 앵두가 이러하지 않았을까.

     

    앵두가 빨갛게 익어서 말랑말랑해진 것을 입에 넣으면 씨를 발라낼 필요도 없이 과육은 녹듯이 사라지고 씨만 남았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앵두가 빨갛게 익어서 말랑말랑해진 것을 입에 넣으면 씨를 발라낼 필요도 없이 과육은 녹듯이 사라지고 씨만 남았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붉은 앵두가 많기는 하지만 흰 앵두도 제법 있다. 허균은 맛있는 흰 앵두를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 맛보았다고 했다. 흰 앵두라고 해서 새하얀색은 물론 아니다. 흰색에 약간의 베이지색이 살짝 섞인 듯한 느낌을 준다. 허균도 말한 것처럼, 흰 앵두보다는 붉은 앵두가 맛이 좋기는 하다. 그렇지만 흰 앵두가 많지 않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는 것이므로 그런 앵두나무를 가진 집에서는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허균이 저자도에서 앵두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은 동호 주변에서 외국 사신을 접대하거나 관료들의 연회가 열리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었다. 특히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면 조선 측에서는 한시를 잘 짓는 관리를 뽑아서 접대를 담당하도록 한다. 그런 사람을 접반사(接伴使)라고 한다. 허균은 워낙 시를 빨리 짓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인물이었다. 어떻든 이런 사정 때문에 저자도 부근을 여러 차례 갔을 것이고, 이때 저자도의 앵두를 맛보았을 것이다. 또 젊은 시절 임진왜란 당시 강원도 영동 지역으로 피난하러 가서 1년 넘게 살았으니, 흰 앵두는 이때 맛보았을 것이다. 함열 귀양지의 차가운 겨울을 지내면서 앵두는 허균에게 따뜻한 계절을 떠올리게 하는 열매가 아니었을까.

     

    사라진 고향 집 앵두나무는 내 마음에 남아서 지나간 시절을 증언하곤 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사라진 고향 집 앵두나무는 내 마음에 남아서 지나간 시절을 증언하곤 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강원도 영동 지역의 흰 앵두를 허균이 언급하기도 했지만, 흥미롭게도 이 지역에는 흑 앵두도 있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인인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은 강원도 지역에서 흑 앵두와 흑 복분자를 맛있게 먹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정원용(鄭元容, 1783~1873)이 강원도관찰사로 발령이 났을 때 이유원의 조부에게 부임 인사를 하러 왔는데,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두 가지를 꼭 구해서 먹어 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정원용이 임기를 마치고 왔을 때 다시 인사를 왔는데, 강원도에서 흑 복분자는 구해서 맛을 보았는데 흑 앵두는 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유원은 강원도에서 맛을 보았지만, 훗날 호남 지역을 다니면서 흑 앵두를 찾아보았는데 끝내 보질 못했다고 하였다. ‘임하필기(林下筆記)’(권32) ‘순일편(旬一編)’에 나오는 일화다. 요즘은 지역에 따라서 버찌를 흑 앵두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유원의 흑 앵두는 이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나도 관심을 가지고 강원도 영동 지역을 두루 수소문한 적이 있는데 아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흑 앵두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꽃과 열매가 모두 아름다울 뿐 아니라 달고 맛있는 열매가 주는 감흥은 봄과 여름을 느끼게 한다. 마당에 흰 앵두꽃이 보이고 길섶에서 붉은 앵두가 열린 나무를 만나면 마치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이제는 사라진 고향 집 앵두나무는 내 마음에 남아서 지나간 시절을 증언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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