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기 교수의 도문대작 읽기] ⑦기름 자르르 흐르는 꿩고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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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교수의 도문대작 읽기] ⑦기름 자르르 흐르는 꿩고기의 추억

    • 입력 2024.01.06 00:02
    • 수정 2024.01.07 00:05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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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박인로(朴仁老, 1561~1642)는 우리 시가 문학사에서 위대한 가사(歌辭) 작가이다. 그의 가사 작품 중에 ‘누항사’(陋巷詞)가 있다. 가난한 시골 선비의 궁색한 삶을 그리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넘어서 유생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려는 의지를 표현한 작품이다. 거기에 아마도 박인로 자신이 경험한 것 같은 일화가 하나 들어있다.

    작중 화자는 작은 땅에 농사를 지어서 근근이 먹고 사는 선비다. 소가 없어서 해마다 밭을 갈기 위해 동네의 평민에게 빌려야만 한다.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결국 그는 한밤중에 소를 빌리러 간다. 저녁을 훌쩍 넘은 시간, 달도 없는 어둑한 시간에 어쩔 수 없이 소 있는 집을 찾아간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기침을 길게 낸다. 겨우 만난 집주인에게 소를 빌려달라며 입을 뗐는데, 집주인의 대답이 걸작이다. “공짜거나 빌려주는 값을 치르거나 간에 선비님 댁에 빌려드릴 만도 합니다만, 마침 어젯밤에 건넛집 사람이 빌려달라고 하기에 그러마 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건넛집 사람이 어젯밤에 와서 소를 빌려 달라면서 목이 붉은 수꿩을 옥(玉) 같은 기름 뚝뚝 떨어지게 구워내고, 막 익은 술을 걸러 와서 취할 정도로 권하더군요.”

    흥미로운 것은, 소를 빌리러 온 건넛집 사람이 선물로 들고 온 것이 바로 꿩이라는 점이다. 꿩은 쓰임새가 많은 조류다. 요즘도 전국 곳곳의 야산에서, 심지어 도심 안의 공원에서 꿩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꿩고기 요리를 파는 식당도 있어서 꿩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근대 이전 우리 사회에서 꿩은 지금보다 훨씬 중요했다. 국가적인 제의나 민가에서의 제례를 거행할 때면 제수로 필요했으므로 많은 지역에서는 공물로 올려야만 했다. 그러나 꿩을 잡는 일이 어찌 쉬웠겠는가. 꿩은 주로 응사(鷹師) 즉 매사냥꾼들이 주로 잡았는데, 조선 후기가 되면 이들에게 부과되는 꿩의 숫자가 너무 많아져서 도망치는 매사냥꾼들이 많았다고 한다. 공물로 바칠 꿩을 확보하지 못하면 닭을 슬쩍 끼워서 바치곤 했으니, 그야말로 꿩 대신 닭이었던 셈이다.

    60대 이상 중에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꿩을 잡는 것을 자주 보았을 것이고, 그에 대한 경험도 제법 있을 것이다. 특히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꿩을 잡으러 다녔고, 이렇게 잡은 꿩은 잘 보관해 두었다가 설날에 만두소로 쓰거나 산적(散炙) 같은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꿩은 그때도 흔한 음식은 아니었다. 꿩을 숯불에 올려 구우면 거기서 나오는 기름이 상당했다. 박인로의 ‘누항사’에 나오는 표현, ‘옥지읍(玉脂泣)게 구워냈다’는 것은 바로 이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고치(膏雉)라는 음식을 목록에 올렸다. 이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 바 있다. “고치(膏雉·꿩)는 황해도 산간 지역에서 나는데, 양덕(陽德)과 맹산(孟山)의 것이 가장 좋다.”

     

    기름진 음식이 귀했던 조선 사회에서 귀한 음식으로서의 꿩 요리는 높은 성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기름진 음식이 귀했던 조선 사회에서 귀한 음식으로서의 꿩 요리는 높은 성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양덕과 맹산은 남북으로 이어져 있는 고을로, 평안북도의 험준한 산악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맹산은 함경북도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의 산세는 손에 꼽을 만하다. 관서와 관북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으므로 많은 관원이 왕래했을 것이고, 이들을 대접하는 귀한 음식으로 꿩 요리가 상에 늘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허균이 기록한 ‘고치’는 말 그대로 살진 꿩을 말한다. 성현(成俔, 1439~1504)이 지은 ‘용재총화’(慵齋叢話)에 보면 고치에 대한 기록을 이렇게 하고 있다. 꿩이 아름답기로는 북쪽 지방이 최고다. 지금은 평안도 강변(江邊)의 꿩을 진상(進上)한다. 그 크기가 집오리만 하고 기름 엉긴 것이 호박(琥珀)과 같다. 겨울이 되면 이것을 잡아서 진상하는데, 이를 고치(膏雉)라 부른다. 그 맛이 매우 좋다.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갈수록 꿩이 점점 비쩍 마르는데, 호남·영남의 남쪽 끝으로 가면 고기 비린내 때문에 먹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북쪽 지방에는 풀과 나무가 많아서 꿩들이 쪼아 먹을 것도 있고 둥지를 마련할 곳도 많으므로 살져 있다.’

    이렇게 보면 허균이 기록한 고치는 평안도 산간 지역에서 잡히는 큰 꿩을 지칭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집오리만 한 꿩을 불에 구우면 흘러내리는 기름의 양이 상당히 많다. 노란 기름이 엉긴 모습을 호박이라는 보석에 비유한 것을 보면, 기름진 음식이 귀했던 조선 사회에서 귀한 음식으로서의 꿩 요리는 높은 성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허균은 고치가 황해도 산골에서 나는데 양덕 맹산 지역의 고치가 가장 맛있다고 했다. 허균은 황해도사(黃海都事)를 지낸 적이 있으므로 황해도의 고치를 자주 맛보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 지역의 고치를 비교했을 때 평안도 산간 지역의 고치가 가장 맛있다고 한 것을 보면 그가 북방을 왕래할 때 인상적으로 맛보았을 것이다.

    물론 조선 말기로 오면서 화승총을 다루는 사냥꾼들이 북방 지역에 널리 퍼지자 총으로 꿩을 잡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러나 허균 당시에는 덫이나 매사냥으로 꿩을 잡았을 것이므로,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야 꿩고기 요리를 맛보았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눈 쌓인 뒷산을 뛰어다니던 일이 생각난다. 꿩은 사람이 가까이 오기 전에는 도망가지 않는 습성이 있었다. 게다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바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마치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듯 일정 거리를 달리다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렇지만 눈이 쌓인 산에서는 날아오를 만큼 달리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꼬마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서 쫓아오니 얼마나 다급했겠는가. 결국, 머리만 눈 속에 파묻은 채 우리 손에 잡혔다.

    요즘은 산에서 꿩을 잡는 사람도 없으니 어릴 적 추억은 그저 세월의 갈피 속으로 묻혔다. 꼭 꿩을 잡아서가 아니라 꿩을 잡는다면서 동네 친구와 형들이랑 쏘다니던 기억 때문에 내게는 참으로 그리운 일이다. 어쩌면 허균이 맛보았던 고치, 꿩 요리야말로 한겨울 귀양지에서 그립기 그지없던 음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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