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기 교수의 도문대작 읽기] ⓸금강산 자락에서 맛본 곰 발바닥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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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교수의 도문대작 읽기] ⓸금강산 자락에서 맛본 곰 발바닥 요리

    • 입력 2023.12.13 00:01
    • 수정 2023.12.14 08:35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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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우리 역사에서 지금처럼 음식을 풍족하게 누리던 시기가 또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사회나 빈부격차가 있다. 그에 따라 의식주와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요소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빈부격차에 따른 소외 즉 가난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여하로 볼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오는 결과로 보아야 한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런 말을 한다. 비록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지금보다 행복했노라고. 그렇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과연 그러한가. 어쩌면 어렸기 때문에 세상의 근심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고, 그래서 행복한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닌가. 음식이 좀 거칠고 부족해도 그것을 상쇄할 정도의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닌가.

    허균이 젊은 시절 강릉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 먹었던 방풍죽이 정말 맛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요산군수를 지낼 때 먹었던 방풍죽은 그만 못했다는 기록을 ‘도문대작’에서 읽은 바 있다. 이 역시 음식의 맛을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그 사람의 기억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한다. 특별한 기억이 스며있는 음식은 늘 아름답고 맛있는 법이다.

    허균의 ‘도문대작’에서 귀한 요리로 손꼽을 만한 것은 역시 웅장(熊掌)이나 표태(豹胎)같은 음식일 것이다. 이러한 음식은 조선 시대에도 진귀한 음식으로 취급되었다. 특히 웅장에 대해서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이렇게 썼다. “웅장(熊掌) : 산골에는 모두 있다. 요리를 잘하지 않으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 회양(淮陽)의 요리가 가장 좋고, 의주·희천(熙川)이 그다음이다.”

    17세기만 해도 곰은 한반도 전역에서 많이 살고 있었다. 곰은 가죽부터 고기까지 모든 부위를 활용할 수 있었지만, 워낙 맹수인 까닭에 곰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웅담(熊膽)을 우선 떠올리지만,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웅장 즉 곰 발바닥 요리를 떠올렸다. 허균이 웅장 요리를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고 했지만, 이것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고위 관료로 살았던 탓에 가능한 발언이었다. 아무리 웅장이 전국 어느 산골에서나 먹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어찌 일반적이었겠는가.

     

    허균의 '도문대작' 중 '웅장'편. 사진=김풍기
    허균의 '도문대작' 중 '웅장'편. 사진=김풍기

    허균은 웅장 요리를 회양, 의주, 희천 등에서 맛보았다. 평안북도 의주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거나 명사(明使)를 맞이하는 접반사(接伴使)로 갔을 때 왕래하던 곳이었고, 희천은 공무로 다녔던 곳이다. 해당 지역 관리들은 허균을 접대해야 하는 처지였으므로 진귀한 음식을 올렸을 것이다. 더욱이 의주나 희천 모두 험준한 산과 이어져 있는 지역이니 곰을 잡아서 웅장 재료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허균의 기억 속에서 가장 맛있는 웅장 요리는 회양에서 먹었던 것이었다.

    회양은 금강산의 상당 부분을 관리하는 행정 단위였다. 금강산은 워낙 많은 사람이 유람하러 가기도 하려니와 금강산 유람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명망이 높은 사람도 제법 많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그런 명망가에게 잘 응대하라고 회양부사의 직급을 다른 지역보다 한 등급 높여서 발령을 낸다는 소리도 있었겠는가. 그가 1603년 8월에 파직된 뒤 강릉으로 가던 중 금강산을 들러 유람을 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 당시 지은 시를 모아서 ‘풍악기행’(楓嶽紀行)이라는 시집으로 엮은 것이 그의 문집에 전한다.

    그 외에서 회양을 지났을 법한 일이 몇 차례 있기는 했지만, 그가 맛있는 웅장을 맛본 것은 이맘때였을 것이다. 파직되기 직전까지 허균은 사복시정(司僕寺正) 겸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사복시정만 하더라도 정3품의 고위 관료였다. 그가 비록 탄핵을 받아서 벼슬을 그만두었다고는 하지만 언제든지 조정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회양 인근의 도호부사가 홀대할 수는 없었으리라.

    웅장 요리법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책으로 ‘음식디미방’을 들 수 있다. 현재 전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한글 조리서인 이 책은 안동의 여중군자(女中君子)로 칭송받는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썼으니, 허균과 비슷한 시대의 조리서인 셈이다. 이 책에 웅장 요리법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귀한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17세기 조선 양반가에서는 조리해서 맛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요리는 지역이나 요리사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여러 기록을 통해서 1990년대까지도 우리나라 고급 호텔 식당에서 판매되었음이 확인된다. 곰을 잡는 것이 불법으로 규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요리는 사라졌으나,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서는 진귀한 음식의 상징처럼 남아있다.

    허의(許宜)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부잣집에서 자라면서 입맛을 너무나도 사치스럽게 했으므로 천하에 산해진미로 꼽히는 음식도 싫증 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병이 나서 눕게 되자 먹을 만한 것이 없어서 끝내 굶어 죽고 말았다. 김자점(金自點, 1588~1651)은 효종 때 역모로 처형을 당한 인물인데, 그가 망하기 직전 어떤 부드러운 음식도 단단하다고 하면서 갓 부화한 병아리를 먹었다고 한다. 정후겸(鄭厚謙, 1749~1776) 역시 영조 때 온갖 유언비어로 세손(世孫)을 모해 하다가 세손이었던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사형당한 인물이다. 그 역시 음식을 부드럽고 사치스럽게 했다고 한다. 음식 사치를 지나치게 하는 사람들의 말로가 이러한 것은 음식을 통해 드러나는 과도한 욕망이 음식 하나의 분야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들의 일화는 18세기의 대표적인 문신인 성대중(成大中, 1732~1812)은 자신의 글 ‘성언’(醒言)에 나온다. 성대중은 이들의 일화를 써놓은 뒤 당시 떠돌던 이런 소문도 덧붙였다. 근래에 어떤 세도가에서 떡국을 만들어 먹었는데, 사람의 오관(五官)과 사지(四肢)를 모두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집안 역시 패망했다고 하였다.

    수많은 음식이 넘쳐나고, 온갖 부드럽고 우리의 감각을 끝없이 자극하는 음식들이 인기를 끈다. 음식 역시 문화이기 때문에 우리가 함부로 그 흐름을 조절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음식이 지나치게 호화롭고 부드럽고 달고 맛있다는 것은 음식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 쾌락을 극대화했다는 의미다. 인간 본성으로서의 음식과 탐욕으로서의 음식 사이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과 방향을 잘 가늠해보아야 한다.

    <김풍기 교수 약력>
    강원자치도 강릉에서 출생했다.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문학박사)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 전기 문학론 연구’, ‘한국 고전시가의 역사적 지평’. ‘옛 시 읽기의 즐거움’, ‘선물의 문화사’, ‘한국 고전소설의 매혹’, ‘시힘, 시의 정원을 채우는 창작정신’, ‘김풍기 교수와 함께 읽는 오언당음’, ‘선가귀감, 조선 불교의 탄생’,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마음’, ‘한시의 품격’, ‘독서광 허균’,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 ‘삼라만상을 열치다’, ‘누추한 내 방’ 등이 있다. 주요 번역서로 ‘옥루몽(전 3권)’, ‘열하일기’(공역, 전 2권), ‘강원도지’(공역), ‘강원여성시문집’(공역) 등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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