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은 서해안 ‘자하’를 최고의 맛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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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은 서해안 ‘자하’를 최고의 맛으로 기억한다

    [도문대작] 43. 서해안에서 나는 자하(紫蝦)의 감동스러운 맛

    • 입력 2024.09.14 00:02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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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조선 시대 기록에 보면 ‘감동해(甘冬醢)’라는 것이 더러 보인다. ‘자하(紫蝦)’로 만든 젓갈을 말한다. 자하는 우리말로 곤쟁이 혹은 곤쟁이새우라고 한다. 그러니 감동해는 자하젓을 지칭하는 것이다.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이 쓴 ‘어우야담(於于野談)’에는 감동해(자하젓)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명나라에서 사신이 왔는데, 황해도 해주를 지나다가 밥상에 올라온 자하젓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울음을 터뜨리며 숟가락을 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연유를 물었더니, 집에 노모가 계시는데 먼 땅에서 이렇게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접하니 어머니 생각에 차마 목구멍으로 삼킬 수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던 원접사(遠接使)가 해주의 관리에게 자하젓을 진상토록 하여 사신에게 선물로 건넸다. 그러자 중국 사신이 “감동을 이기지 못하겠소.” 하고 답을 했다. 중국 사신을 감동하게 했다는 것 때문에 자하젓을 감동해(感動醢) 혹은 감동저(感動菹)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자하를 우리말로 ‘감동’이라고 하고 한자로는 감동(甘冬)이라고 쓰지만 감동했다고 할 때의 감동(感動)과 발음이 같으므로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이다.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이 쓴 ‘사재척언(思齋摭言)’이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박세평(朴世平)이라는 선비는 평소에 우스갯소리를 잘 했다. 그의 집은 음성(陰城)에 있었는데, 마침 이자(李耔, 1480~1533)가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파직된 뒤 음성에 있는 집에 머물고 있었다. 하루는 자하와 오이를 섞어서 담근 김치를 이자의 집으로 보내면서, “이 음식은 너무 맛있어서 공(公)께서는 필시 감동스러우실 겁니다.” 하고 말을 전했다. 이 선물을 받고 맛을 본 이자는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별미 가득한 음식을 받았는데 거기에 ‘감동’이 있더군요. 다만 그대는 여러 가지가 뒤섞여 실속이 없는 말을 너무 좋아하니 세상 사람들이 그대를 과소평가하는 이유가 됩니다. 이제부터는 짐짓 그만두시지요, [권정(權停)].”

     일종의 언어유희라 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는 요즘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고 웃음을 터뜨리기가 쉽지 않다. 박세평과 이자 사이에 오간 이야기의 언어유희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박세평이 음식을 보내면서 ‘감동스러울 것’이라고 한 것은 그가 보내는 음식이 자하 즉 곤쟁이새우와 오이를 섞어서 담근 김치 종류였기 때문이다. 자하의 한자식 표현이 ‘감동’이었으니 ‘감동스럽다’는 뜻의 감동과 발음이 같았다. 그것을 즉시 알아차린 이자는 박세평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너무 우스갯소리를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하면서 농담을 ‘짐짓 그만두라’고 했다. ‘짐짓 그만두라’는 구절의 한문 표현은 ‘권정(權停)’인데, 이것은 바로 감동 즉 ‘곤쟁(이)’을 상기시키는 단어인 것이다. 감동으로 던진 농담을 곤쟁이로 받았으니 두 사람의 언어유희와 그 사이에서 우러나는 웃음 넉넉한 풍류가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이 일화가 유몽인의 책에는 어득강(魚得江, 1470~1550)의 일화로, 이익(李瀷, 1579~1624)의 시문에는 위에 나오는 김정국의 일화로 기록된 것을 보면,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농담이었던 것 같다.

     

    너무 작아서 잡는다는 표현보다는 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자하는 늦봄에서 여름까지가 제철이어서 여름에 많이 먹기도 하지만 젓갈로 담가서 가을에 먹는 맛이 일품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너무 작아서 잡는다는 표현보다는 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자하는 늦봄에서 여름까지가 제철이어서 여름에 많이 먹기도 하지만 젓갈로 담가서 가을에 먹는 맛이 일품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자하 즉 곤쟁이는 강원도 지역을 포함한 동해안 사람들에게는 낯선 식재료다. 그렇지만 부새우라고 하면 무엇인지 얼른 알아들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곤쟁이니 자하니 고개미니 하는 것들을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는 부새우라고 부른다. 너무 작아서 잡는다는 표현보다는 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자하는 늦봄에서 여름까지가 제철이어서 여름에 많이 먹기도 하지만 젓갈로 담가서 가을에 먹는 맛이 일품이다. 오죽하면 봄의 자하젓은 개도 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까.

     새우라고 부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새우가 아니라고 한다. 사정이야 어떻든 자하는 우리나라 서해안 지역의 특산물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탕으로 끓여서 먹는 일이 많지만, 젓갈로 담그는 경우가 더 많다. 자하젓은 국밥이나 찌개에 넣어서 간을 맞추기도 하고, 무나 오이 같은 재료를 깍두기처럼 숭덩숭덩 잘라서 자하젓과 버무려 먹기도 한다.

     

    무나 오이 같은 재료를 자하젓과 버무려 먹기도 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무나 오이 같은 재료를 자하젓과 버무려 먹기도 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자하를 이렇게 서술했다. “자하(紫蝦). 서해에서 난다. 옹강(瓮康)의 것은 짜고, 통인(通仁)의 것은 달고, 호서(湖西)의 것은 매우면서 크다. 의주(義州)에서 나는 것은 가늘고 달다.”

     자하는 한반도 전역에서 잡히지만, 그중에서도 서해안 즉 옹강, 통인, 호서 지역에서 나는 것이 맛있다고 했다. 크기도 다르고 느껴지는 뒷맛도 다르지만, 서해안에서 잡히는 자하는 최고의 맛을 자랑했던 것으로 허균은 기억한다. 이 지역에서 잡히는 자하가 특별히 좋은 맛을 낸다는 것은 조선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 때에는 궁궐로 진상하는 자하젓을 연안(延安)의 섬 백성들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많은 폐단이 있어서 해주에서 진상하도록 하는 건의가 올라온다. 이에 대해 정조는 자하젓 때문에 백성들이 너무 고생하니 폐단을 줄이도록 잘 살펴보라는 지시를 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명나라 황제인 영락제도 나이가 들어 입맛이 없을 때 자하젓을 올리도록 명하였는데, 이 때문에 명나라 사신이 조선으로 왔을 때 자하젓을 구해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나온다.

     

    자하젓은 국밥이나 찌개에 넣어서 간을 맞추기도 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자하젓은 국밥이나 찌개에 넣어서 간을 맞추기도 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가을의 문턱에 서면 떠오르는 음식이나 식재료들이 제법 많다.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과일과 식재료들이 시장에 출하되지만, 우리 몸에 깊이 들어있는 조상들의 기억은 우리의 의지와 다르게 문득 튀어나오곤 한다. ‘도문대작’을 쓴 허균 역시 과거에 무심히 접했을 음식이었겠지만 귀양살이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뜬금없는 맛을 떠올린 것은 아닐까 싶다. 허균은 일찍이 황해도사(黃海都事)를 지내면서 해주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하를 이때 맛보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한겨울에 ‘도문대작’ 원고를 썼으니 자하젓은 귀양지 함열 인근의 것도 구해서 맛보았으리라. 만약 그러하다면, 날카로운 겨울의 칼바람과 짭조름한 자하젓의 맛이 그의 삶을 새삼 느끼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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