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태(甘苔). 함평·무안·나주에서 나는 것이 썩 맛이 좋아 엿처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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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태(甘苔). 함평·무안·나주에서 나는 것이 썩 맛이 좋아 엿처럼 달다.”

    [도문대작] 39. 엿처럼 달콤한 감태의 맛

    • 입력 2024.08.17 00:01
    • 수정 2024.08.22 22:56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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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조선 전기 관료 문인이었던 용재(慵齋) 성현(成俔, 1439~1504)의 친구인 김간(金澗)이 절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밥상에 맛있는 반찬이 올라왔는데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스님에게 물어보니 매산(莓山)이라고 했다. 훗날 성현의 집에 놀러 왔다가 성현에게 매산을 먹어본 적이 있느냐면서 천하의 진미라고 자랑을 했다. 그러자 성현은 매산이라는 것이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는 것인데 김간을 위해 구해 보겠노라고 했다. 그리고는 하인을 시켜서 숭례문 밖 연못에서 태발(苔髮) 즉 풀어헤친 머리카락처럼 물속에 길게 늘어져서 물결 따라 일렁이는 푸른 이끼를 잔뜩 떠오게 했다. 이것을 구워서 술상을 차려 놓고는 김간을 초청했다. 김간과 마주 앉은 성현은 자기 앞에 놓은 진짜 매산만 먹고 김간 앞에는 연못에서 떠온 태발로 만든 가짜 매산을 놓았다. 술을 마시며 가짜 매산을 먹던 김간은 “매산 구이 속에 모래도 섞여 있는 데다가 절에서 먹던 것과는 달리 속이 메스꺼워서 불편하다”고 하면서 즉시 집으로 돌아갔다. 토하고 설사를 하면서 며칠 고생을 했으니, 나는 ‘용재총화’(권8)에서 이 일화를 읽으며 성현의 장난이 심한 건 아닌지 싶었다. 그런데 성현이 여기서 말하는 ‘매산’은 감태와 비슷한데 그보다는 조금 짧은 것을 지칭한다고 하면서, 다시 감태는 남해에서 주로 생산되는 김을 지칭한다고 기록하였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물을 만나지만 각각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이름을 붙이는 문제는 워낙 논쟁적이어서 간단하게 정리할 수는 없지만, 그것의 근저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 깊이 개재해 있다. 하나의 사물에 하나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사회적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사물에 반드시 하나의 이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약속으로 소통하면 최상이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많은 조건과 환경, 기준에 따라 하나의 사물은 다른 이름을 가지기도 한다. 나라가 다르면 언어가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이름이 붙기도 하고, 지역이 다르면 지역어의 차이 때문에 다른 이름이 붙기도 하며, 살아가는 집단이 다르면 집단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의 이름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기도 하고, 이름이 지칭하는 사물이 달라지기도 한다. 허균의 ‘도문대작’을 읽다 보면 이런 점을 절감(切感)한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나물을 보통 해채(海菜)라고 부른다. 널리 알려진 해채류로는 김, 미역, 다시마, 감태, 파래 등이 있다. 해채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미역과 다시마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김과 감태, 파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근대 이전 한문 문헌에서 김은 해의(海衣)로 되어 있지만, 감태(甘苔)는 지금도 표기가 같다. 문제는 ‘감태’라는 용어의 함의가 늘 같은가 하는 점이다. 문헌에 따라 감태가 김을 지칭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감태와 김을 구분하기도 하며, 감태를 다른 단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기록자가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거나 아니면 그가 살던 지역에서 부르는 용어를 그대로 기록하는 바람에 그보다 널리 알려진 보편적인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던 탓일 수도 있다.

     

    “감태(甘苔). 호남에서 나는데 함평·무안·나주에서 나는 것이 썩 맛이 좋아 엿처럼 달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감태(甘苔). 호남에서 나는데 함평·무안·나주에서 나는 것이 썩 맛이 좋아 엿처럼 달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이 같은 현상은 허균의 ‘도문대작’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는 해의와 감태를 각각 표제어로 선정하고 서술하였다. 말하자면 김과 감태를 서로 다른 사물의 명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해의는 이미 소개한 바 있거니와, 감태에 관한 서술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감태(甘苔). 호남에서 나는데 함평·무안·나주에서 나는 것이 썩 맛이 좋아 엿처럼 달다.”
    허균이 서술하는 감태는 김을 의미하는 해의와 다른 항목으로 설정되어 있으므로 지금 우리가 말하는 감태를 지칭한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19세기의 박물지라 할 수 있는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도 전국의 특산물을 소개하면서 나주의 감태를 적시한 바 있다. 지금도 무안은 우리나라 감태의 최대 산지로 이름이 높은데, 무안을 중심으로 남해안은 대체로 김과 감태가 모두 대량 수확되는 곳이다.
    감태가 김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의 정확한 명칭은 가시파래다. 양식이 어려워서 지금도 자연산을 채취하는 경우가 많다. 가시파래를 예부터 감태로 불러왔기 때문에 근대 이전 기록에서 감태는 대부분 김을 지칭하기보다는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감태를 지칭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감태가 김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의 정확한 명칭은 가시파래다. 사진=클립아크토리아
    감태가 김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의 정확한 명칭은 가시파래다. 사진=클립아크토리아

     흥미롭게도 감태는 석순(石蓴)과 혼동되기도 한다. 석순은 대부분 파래를 의미하지만, 맥락에 따라서는 김이나 감태, 심지어 육지에서 자라는 다른 채소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조선 후기로 갈수록 김, 감태, 파래는 서서히 다른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로 정착이 되어간다. ‘증보 산림경제’에는 ‘석순’을 설명하면서 “잎은 백합과 같으며, 4, 5월에 캐서 국을 끓여 먹거나 식초에 담가 먹으면 좋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석순은 파래와는 명확하게 다른 것을 지칭한다. 게다가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해의(김), 감태와는 항목을 달리하여 석순을 설정한 뒤 “석순. 영동지방에서 많이 나는데, 가장 좋다.”고 서술한 바 있다. 그가 말하는 석순이 감태와 다른 것은 분명하지만, 석순이 파래를 지칭하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바닷가 바위에 감태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마치 푸른빛 부드러운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파도가 칠 때마다 일렁이는 모습은 그렇게 아리따울 수가 없다. 파래도 그러하지만, 감태 역시 파래의 일종이고 보면 두 해조류는 조리 방식이 비슷하다. 그렇지만 파래는 국으로 끓여 먹거나 식초 같은 것에 부쳐서 무침 나물처럼 먹는 경우가 많지만, 감태는 김처럼 얇게 펴서 말린 뒤 밥이나 다른 것을 싸서 먹는 경우가 많다. 김보다 도톰하게 말려서 먹는 감태는 굳이 밥이나 다른 음식을 싸서 먹지 않고 그냥 먹더라도 부드러운 식감이라든지 혀에 남는 달착지근한 맛의 여운이 일품이다.
    허균이 엿처럼 달다고 표현한 것은 조금 과한 듯하지만, 단맛에 중독된 지금의 우리로서는 감태의 단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고 자신하지는 못할 것이다. 새삼 자연의 맛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진 우리의 미각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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