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먹는 용역] ④'시장님 한마디'에 2억짜리 결과 뒤집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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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 먹는 용역] ④'시장님 한마디'에 2억짜리 결과 뒤집혀

    방사광가속기 유치전, 시장 언급하자 단 27일만에 졸속 추진
    용역비 2억1700만원 허탕
    치유의 숲 사업, 시장이 용역결과 뭉개고 사업도 무산

    • 입력 2022.12.16 00:01
    • 수정 2024.01.02 13:47
    • 기자명 김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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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지영 기자)

    (그래픽=박지영 기자)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학술연구용역은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의 타당성을 외부 전문기관에 자문하는 과정이다. 춘천시도 연간 30~50건의 학술용역을 발주해왔다. 그런데 무작정 용역만 맡기고, 흐지부지 끝나 용역비만 날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걸 왜했지' 생각이 드는 황당한 용역부터, 시장 한마디에 엎어지고 깨진 용역까지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MS투데이가 최근 5년간 춘천시의 학술용역 실태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사업지 선정 한달 전 2억 원 들여 방사광가속기 용역 발주

    2000만원 이하 용역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단 한 건에 수억원이 들어가는 용역도 충분한 검토나 고민 없이 지자체장 한 마디에 부분별하게 세금을 낭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가 ‘방사광가속기’를 유치하겠다며 의뢰한 용역이었다.

    방사광가속기는 슈퍼현미경으로 불리는 장비로, 밝은 빛을 생산해 여러 가지 물질의 구조를 파악하거나 물성변화를 분석하는 데 쓰인다. 장비가 들어서는 지역의 경제효과도 수조원에 달할만큼 2020년 최대 국책사업으로 꼽혔고, 부동산 호재로까지 작용해 그해 청주 집값 상승을 이끌었다.

    당시 시는 방사광가속기 유치전에 뛰어들기 위해 날리지웍스라는 기술경영컨설팅기업에 학술용역을 발주했다. 타당성 검토를 비롯해 아예 책임자의 관여가 필요한 유치제안서 작성까지 맡겼다. 용역비는 단 한 건에 2억1700만원, 용역결과물도 108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했다.

    문제는 시점이었다. 본보가 학술용역을 맡긴 기간을 확인해보니 발주는 4월 2일, 결과물은 29일에 나왔다. 용역 의뢰와 보고서 작성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7일, 사실상 용역 결과물에 대한 발주기관의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은 채 제안서를 제출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누가 봐도 연구기간이 짧다”며 “몇 백만원짜리 연구용역도 과업기간이 몇 개월은 걸리는데 조단위 사업 타당성 용역을 한 달만에 해달라고 의뢰한 것 자체가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유치에 성공한 충북 청주시 담당 공무원도 의아해하는 목소리로 답했다. 본보가 ‘춘천시는 4월에 연구용역을 맡겼더라’고 알려주자 “네?, (2019년이 아니고) 2020년 4월이라고요? 5월에 선정이었는데...”라며 되묻는 반응이 돌아왔다.

    박선녀 충북도 기획조정과 주무관은 “도와 청주시는 2019년부터 협업해 유치를 추진했고, 연구용역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맡겨 10개월간 진행했다”며 “춘천시는 아마 공모가 뜬 이후 뒤늦게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시는 뒤늦게 사업 유치전에 참여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재수 전 시장이 제안해 추진했다고 밝혔다.

    이호배 문화환경 국장(당시 기획예산과장)은 “이 전 시장이 중앙정부를 다니다가 ‘정부가 방사광가속기라는 것을 계획하고 있더라, 춘천도 한 번 준비를 해보자’고 해서 시작됐다”며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 청주시에서 많은 노력을 했더라”고 말했다.

    강용범 춘천시 기획예산과 기획팀장은 “과거의 일이라 함부로 평가하면 안되겠지만, 그런 점(촉박하게 진행한)은 있긴 하다”며 “우리가 미리 알았으면 더 오래 준비하지 않았을까, 앞으로는 이런 정보들을 좀 빨리 알아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역 과업이 시작된 당시는 이미 부지 선정 이전부터 청주시와 나주시가 유력 후보지로 거론된다는 언론 보도가 상당히 나온 시점이었다. 이를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시장의 의견에 따라 무리하게 추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치유의 숲 연구용역 결과 후보지, 시장 한마디에 변경

    기껏 용역을 맡겼더니 시장 말 한마디에 사업이 뒤짚어진 경우도 있었다. 2019년 시가 국비를 따내 ‘치유의 숲’ 조성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사업은 관내에 치유센터, 커뮤니티센터, 치유의 숲길 등을 만들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시는 사업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치유의 숲 조성 연구용역(2200만원)을 통해 부지 9곳을 선정, 그 뒤 해당 부지에 대한 타당성 평가 용역에 다시 2250만원을 썼다. 이 가운데 후보지 2개를 압축해 용역보고회를 가졌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이재수 전 시장은 후보지에 포함되지도 않은 사유지를 검토해볼 것을 제안, 또 다시 이 부지가 적절한지 검토하는 용역에 7500만원을 추가로 지불했다. 시장 한 마디에 애써 만든 용역 결과가 흐지부지되자 지역사회에서는 “시장 말 한 마디에 결과가 뒤집어지는데 용역은 왜 한거냐”는 비난이 제기됐다.

    결국 시는 이 부지를 밀어붙였고, 최근 산림청 ‘녹색자금 지원사업’ 치유의 숲 분야 공모에서 탈락했다. 올해 50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강원도 지방이양사업에도 도전했지만, 이마저도 선정되지 못해 사실상 무산됐다. 3차례에 걸친 용역비 1억1950만원을 헛쓴 꼴이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그래픽=박지영 기자)

    이외에 이재수 전 시장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춘천시 영화촬영 스튜디오 건립도 무산됐다. 지난해 실시한 ‘춘천시 영상산업 중장기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5000만원)에서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100억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가는 점과 타 지역에 비해 영화산업 경쟁력이 없다는 지적에서다.

    공지천에 수상무대를 만들자며 연구용역을 의뢰한 ‘춘천시 수상예술콘텐츠 개발 용역’(4700만원) 역시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받았으나, 2019년 이후 3년간 진척된 게 아무것도 없다.

    [김성권 기자·이종혁 기자 ks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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