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먹는 용역] ① '쪼개기'의 마법⋯74%가 경쟁없이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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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 먹는 용역] ① '쪼개기'의 마법⋯74%가 경쟁없이 계약

    MS투데이, 최근 5년간 춘천시 학술연구용역 발주 실태 분석
    2000만원 이하 쪼개기 용역만 10건 중 7건 꼴
    복사하고 베낀 ‘반찬 레시피’에 1850만원 지출
    수십억 들인 공공 연구자료, 10건 중 7건 공개 누락

    • 입력 2022.12.15 00:02
    • 수정 2024.01.02 13:47
    • 기자명 김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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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지영 기자)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학술연구용역은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의 타당성을 외부 전문기관에 자문하는 과정이다. 춘천시도 연간 30~50건의 학술용역을 발주해왔다. 그런데 무작정 용역만 맡기고, 흐지부지 끝나 용역비만 날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걸 왜했지' 생각이 드는 황당한 용역부터, 시장 한마디에 엎어지고 깨진 용역까지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MS투데이가 최근 5년간 춘천시의 학술용역 실태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지방자치단체가 외부 기관에 맡기는 용역계약은 ▲기술용역 ▲일반용역 ▲학술연구용역으로 구분된다. 이 중 학술연구용역(연구용역)은 학문분야의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에 관한 연구용역이다. 주로 지자체의 정책 또는 사업 추진에 앞서 관련 분야 전문가에게 자문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연구용역에는 예를 들어 큰 예산이 들어가는 어떤 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미리 따져보거나, 새로운 정책 수립을 위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에 대가를 주고 연구 결과를 받아보는 것 등이 있다. 세금으로 건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지급하기에 용역을 받는 기관 입장에서는 큰 이득이 걸려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춘천시가 외부 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기는 과정이 불투명하게 진행된 정황이 MS투데이 취재 결과 다수 확인됐다. 무분별한 쪼개기 용역 발주를 비롯해 재탕, 삼탕 비슷한 용역 발주는 예사였다. 검증조차 되지 않은 특정 단체에 수의계약으로 용역을 주거나 목적조차 의심되는 ‘이상한’ 용역 사례까지 총체적 난맥상이 드러났다. 연구용역에는 매년 수십억원의 혈세가 들어가는 데다 시정 발전과 직결되는 만큼 전반적인 관리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분별하게 발주한 용역은 주제에 따라 방식도 다양했다. 쪼개기, 퍼주기, 답정너, 시장님 한마디에 발주하는 식이다. 춘천시의 용역 발주 행태를 유형별로 살펴봤다.

     

    ① ‘쪼개기’ 유형 | 2000만원 아래로 분할⋯같은 용역, 같은 연구소

    MS투데이가 최근 5년간 춘천시 학술용역 발주·계약 현황을 살펴보니 10건 중 7건꼴로 수의계약이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총 199건 가운데 150건을 경쟁입찰에 부치지 않고 임의로 연구기관이나 업체를 선정해 계약했다.

    지방계약법 시행령에 따르면 계약 추정 가격이 2000만원 이하, 여성기업이나 장애인기업 등 사회적 가치 추구기업과는 2000만원 초과 5000만원 이하까지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수의계약을 우선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 기준’을 보면 계약 담당자는 용역‧물품 계약에 대해 단일 사업을 부당하게 분할하거나 시기적으로 나눠 체결하지 못하도록 ‘분할 계약’을 금지하고 있다. 과도한 수의계약은 계약 담당자의 자의성이 개입될 우려에다 특혜나 공정성 시비까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춘천시가 의뢰한 학술용역의 상당수도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면서 금액을 2000만원 이하로 지켰다. 자칫 정당한 용역 발주로 보일 수 있지만, 충분한 사전검토 없이 각종 사업에 관한 조사·분석을 무분별하게 남발한 용역이 수두룩했다.

    성공적인 사업 수행을 위해 꼭 필요한 전문용역도 있지만, 구체적인 실행계획조차 세우지 않거니와, 공무원이 직접 추진해야 할 정책조차 혈세를 주고 무작정 외부에 맡기는 실정이다.

    춘천시는 5년동안 대부분의 학술용역을 2000만원 이하로 발주했다. 예를 들어 2000만원이 넘는 발주 건은 1950만원 한 차례, 1000만원 한 차례 나누는 식이다. 원칙적으론 가능하다. 하지만, 수의계약 위주로 발주할 경우 다수의 업체가 입찰 참가 기회조차 받지 못해 공정경쟁입찰 원칙이 근본적으로 훼손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로 한 해 10억~20억원의 연구용역을 발주하면서 경쟁입찰은 고작 49건에 불과했다. 전체 용역의 74.3%가 수의계약이나 제한입찰로 진행됐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27건 중 18건, 2019년 60건 중 44건, 2020년 49건 중 36건, 2021년 33건 중 26건, 2022년 30건 중 24건을 시가 특정 업체를 상대로 계약을 맺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그래픽=박지영 기자)

    발주 과정에서 의도적인 쪼개기로 보이는 용역도 다수 발견됐다. 같은 주제로 건명만 바꾼 수준이다. 2020년 시 녹지공원과에서 ‘도시숲 마스터플랜’을 주제로 발주한 용역은 2021년 ‘도시숲 마스터플랜 세부계획수립 연구용역’으로, 같은 해 ‘GIS DB분석을 통한 도시숲 연구용역’으로 주제가 조금씩 변경되거나 구체화 됐다.

    3건 합쳐 총 5312만7000원을 썼는데 건별로는 모두 2000만원을 넘기지 않았다. 첫 번째 용역은 1784만6000원, 두 번째 1821만7000원, 세 번째 1706만4000원으로 분할 발주했다. 3건 모두 강원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맡았다.

    또 에너지온실가스평가연구소에는 올해 2건의 연구용역을 의뢰했는데 ‘배출권거래제 2022년 모니터링 및 관리 용역’에 1710만원, 같은 주제의 ‘모니터링보고서 작성 및 대응 용역’에 1350만원을 분할 발주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한국재정경제연구원에는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 원가산정 용역’ 1260만원, ‘대형폐기물 수집·운반·처리 대행 원가산정 용역’ 840만원, ‘음식물류 폐기물 자원화시설 민간위탁운영 원가산정’ 600만원, 총 3건 2700만원을 나눠서 발주해 각 건당 2000만원이 넘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의도적인 쪼개기로 보이는 용역은 올해에만 총 9건, 금액으로는 1억3020만원에 달한다. 기관별로 학술용역 수의계약을 따낸 곳을 보면 강원대학교 산학협력단이 14회로 가장 많았고, 에너지온실가스평가연구소와 한국재정경제연구원, 강원도문화재연구소가 각각 5회씩, 21세기산업연구소, 춘천역사문화연구회, 농촌NET, 에이치아이 각각 4회씩이다.

    [김성권 기자·이종혁 기자 ks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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