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먹는 용역] ②1850만원 들여 ‘감자고로케 레시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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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 먹는 용역] ②1850만원 들여 ‘감자고로케 레시피’ 연구?

    MS투데이, 최근 5년간 춘천시 학술연구용역 발주 실태 분석
    전통주 식당에 '반찬 레시피' 용역
    비슷한 주제로 중복 용역 남발

    • 입력 2022.12.15 00:01
    • 수정 2024.01.02 13:47
    • 기자명 김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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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지영 기자)
    (그래픽=박지영 기자)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학술연구용역은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의 타당성을 외부 전문기관에 자문하는 과정이다. 춘천시도 연간 30~50건의 학술용역을 발주해왔다. 그런데 무작정 용역만 맡기고, 흐지부지 끝나 용역비만 날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걸 왜했지' 생각이 드는 황당한 용역부터, 시장 한마디에 엎어지고 깨진 용역까지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MS투데이가 최근 5년간 춘천시의 학술용역 실태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②‘퍼주기’ 유형 | 협동조합에 선심성 용역⋯전문성도 의심

    감자고로케, 알감자조림, 토마토찜, 오이잡채, 고추만두⋯. 식당이나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찬이다. 시는 올해 이런 반찬을 포함 총 15개의 반찬 조리법(레시피) 연구에 1850만원을 지출했다. 춘천에서 생산한 농산물로 제품을 만들어 생산하려는 ‘농산물 가공기술 표준화’ 사업의 일환이다.

    그런데 시가 학술용역을 의뢰한 곳은 전통주를 제조해 한식당을 운영하는 ‘주모협동조합 호수양조장’으로 전문성에 의심이 드는 곳이다. 이 업체는 전통주 빚기 체험과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면서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김수경 춘천시 식품산업과 주무관은 “양조장의 대표가 전통음식기능보유자이고, 식당에서 전통주와 맞는 음식을 만들어 계절밥상을 차려주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기능보유자가 전통주 분야이긴 하지만, 음식과 연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 용역을 맡겨도 괜찮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역 결과물은 시민 혈세 1850만원의 연구개발비를 들여 만들었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춘천만의 특색 있는 반찬 15가지의 레시피를 연구했다지만, 용역결과보고서에 올린 반찬 모두 일반 가정이나 한식당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종류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수십 가지의 레시피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보고서의 레시피 내용도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의 내용을 복사하거나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요리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과보고서의 25% 분량을 차지하는 ‘농산물의 효능’ 정보는 네이버 백과사전에 등록된 내용을 그대로 베꼈다.

    2014년 (사)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에 등록된 ‘햇순나물의 소비확대를 위한 조리기술 개발 및 영양성 평가’ 논문(왼쪽)과 주모협동조합이 2022년 연구용역 결과로 개발했다고 발표한 조리법(오른쪽). 조리법과 요리 이름이 8년 전 논문에 등록된 ‘엄나무 순 닭고기 냉채’와 동일하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2014년 (사)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에 등록된 ‘햇순나물의 소비확대를 위한 조리기술 개발 및 영양성 평가’ 논문(왼쪽)과 주모협동조합이 2022년 연구용역 결과로 개발했다고 발표한 조리법(오른쪽). 조리법과 요리 이름이 8년 전 논문에 등록된 ‘엄나무 순 닭고기 냉채’와 동일하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네이버 지식백과 우수 식재료 디렉토리 감자의 영양 및 효능(왼쪽)과 춘천시가 주모협동조합에 발주한 ‘2022년 농산물 가공기술 표준화(반찬류) 사업 연구 용역’ 결과보고서(오른쪽). 출처도 밝히지 않고 검색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네이버 지식백과 우수 식재료 디렉토리 감자의 영양 및 효능(왼쪽)과 춘천시가 주모협동조합에 발주한 ‘2022년 농산물 가공기술 표준화(반찬류) 사업 연구 용역’ 결과보고서(오른쪽). 출처도 밝히지 않고 검색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시에 따르면 현재 용역결과보고서를 토대로 품목제조보고가 완료된 상태로 생산 예정이다. 본지가 담당자에게 흔한 반찬인데 상품화 가치가 있느냐고 묻자 민망해하며 “저희도 고민 중”이라며, “춘천시만의 독특한 반찬은 아니지만, 춘천 지역 농산물을 사용한 게 중요하다. 드릴 말씀이 이 정도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용역 대부분은 공정 경쟁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이뤄졌는데 용역 주제와 연관성이 다소 낮은 업체이거나, 이미 실행한 용역 주제와 비슷한 학술용역을 반복적으로 맡긴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말 시는 시민 참여 정책과 관련한 연구를 춘천 소재 A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었다. 본지가 해당 업체를 확인해보니 A업체는 심리상담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곳으로 주제와 관련성이 높지 않았다.

    용역 주제와 연관성이 낮은 점도 문제였지만, 업체의 관계자가 시 산하 위원을 함께 맡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해충돌 문제도 제기된다.

    김선영 춘천시 자치행정과 주무관은 “학술용역 면허가 있는 업체와 계약했다”며 “(이해충돌 여부보다는) 시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깊게 연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시민 참여 정책 연구는 이미 학술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행정의 효율성 향상을 위한 게 목적이라지만, 불필요한 중복 용역으로 볼 수 있다.

    김 주무관은 “해당 연구는 매년 한 번씩 발주한다”면서도 올해는 발주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매년 할 수 있지만, 올해는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굳이 안해도 되는 연구를 불필요하게 반복적으로 발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권 기자·이종혁 기자 ks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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