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먹는 용역] ⑤발주만 하고 '나몰라'⋯"전임자 업무"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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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 먹는 용역] ⑤발주만 하고 '나몰라'⋯"전임자 업무" 핑계

    수십억 들인 연구자료, 10건 중 7건꼴로 게재 누락
    총괄 자료도 오류투성이⋯관리 실태 처참
    "툭하면 용역주는 버릇부터 버려야"

    • 입력 2022.12.16 00:00
    • 수정 2024.01.02 13:47
    • 기자명 김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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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지영 기자)
    (그래픽=박지영 기자)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학술연구용역은 새로운 정책이나 사업의 타당성을 외부 전문기관에 자문하는 과정이다. 춘천시도 연간 30~50건의 학술용역을 발주해왔다. 그런데 무작정 용역만 맡기고, 흐지부지 끝나 용역비만 날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걸 왜했지' 생각이 드는 황당한 용역부터, 시장 한마디에 엎어지고 깨진 용역까지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MS투데이가 최근 5년간 춘천시의 학술용역 실태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⑤ 용역현황 관리 실태 | 내 세금인데⋯캐비넷에 방치된 용역보고서

    ▶자료 없거나 "모르겠어요", "전임자가 했는데요"

    춘천시의 학술용역 현황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이 자료는 시청 홈페이지나 행정안전부 정책연구관리시스템(프리즘)에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하는 결과물이다. 정보공개청구 절차를 굳이 거치지 않아도 시민 누구나, 국민 모두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정보다.

    취재진이 시에 5년간 누락됐던 자료를 요청했을 때 으레 그랬듯 정보공개청구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청구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하자 3년간 자료는 있는데 4~5년 전 자료는 ‘너무 오래돼’ 찾으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용역결과의 사후관리가 얼마나 엉망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같은 공개 누락은 ‘과제담당관은 학술연구용역 종료 후 지체 없이 시 홈페이지 및 정책연구관리시스템에 공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춘천시 학술연구용역 관리 조례(14조) 위반이다.

    5년간 프리즘에 공개되지 않은 용역건수는 총 199건(진행·예정 제외) 중 153건, 무려 73.2%에 달했다. 시청 홈페이지에는 고작 32건의 결과물만 올라온 정도였고, 취재를 시작했을 무렵 주무관이 “기존에 누락된 결과물을 지금 올리고 있다”고 답했다. 이후 39건이 추가로 올라왔다.

    취재진이 시에 용역 발주 현황을 문의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전임자가 했던 용역”이라는 핑계였다. 결과보고서가 왜 게재되지 않았는지 물으면, “전임자가 잊고 안 올린 것 같다”라거나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받지 못했다”, “전임자에게 확인해보고 연락주겠다”는 식이었다.

    조직 개편이나 인사에 따라 담당자가 변경될 수 있지만, 기존 업무가 제대로 인수인계 되지 않아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용역보고서를 총괄 담당하는 서정은 기획예산과 주무관은 “최근 3년치(2020~2022년 10월)는 정리해놓은 게 있지만, 2018~2019년도까지 자료는 오래되기도 했고, 워낙 방대해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답했다.

    한 해 수십억의 세금을 들인 공들인 지적(知的) 연구용역 자료가 정책에 활용되지도 못한 채 캐비넷에 방치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금액으로 따지면 수십억의 혈세를 어디에 썼는지 정리조차 하지 않는 셈이다.

    시는 정보공개청구 답변 기한인 최초 10일도 모자라 추가로 답변 기한을 10일 연장하기도 했다. 조례에 따라 의무적으로 프리즘에 등록했다면 정보공개청구조차 필요 없고, 담당 주무관이 굳이 또 하지 않아도 될 업무라 애꿎은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여일 넘은 끝에 받은 자료에도 오류 투성이었다. 올해 시 자치행정과가 ‘청년정책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맡기면서 5100만원을 썼는데 수의계약으로 기록돼 직접 담당 주무관에 확인해보니 “1800만원인데 잘못 기재된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과업 수행 연구기관 명을 한국재정경제연구원인데 한국경제행정연구원으로 잘못 적기도 했다.

    ▶ “툭하면 용역 주는 버릇부터 버려야”⋯발주기관 성의에 달려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학술용역과 관리 부실은 지자체 업무의 ‘책임성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기본적으로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업무를 떠넘기듯 버릇처럼 용역을 주거나, 행정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2020년 지자체의 연구용역 투명성 제고를 위해 과제 선정단계의 유사·중복 검증, 연구용역 실명제, 부정행위 검증 및 제재방안 마련 등 제도를 강화했는데도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주창범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건 발주기관이 얼마나 성의를 갖느냐의 문제”라며 “발주에만 그치지 말고 담당공무원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연구비를 준 만큼 품질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쪼개기 발주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행정편의상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는 소규모 용역은 현황파악에만 그칠 수 있기 때문에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측면에서다.

    유홍규 시의원은 춘천시에서 발주하는 학술연구용역에 대한 개선점으로 ▲쪼개기 발주 금지 ▲중간보고서 제출 의무화 ▲사전·사후 검증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제시했다. 또 계약이나 연구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제적으로라도 용역결과에 책임지는 제도를 도입해 발주 남발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유 의원은 “학술연구용역이 요식행위나 통과절차에 불과하다보니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특정인이나 단체에 혜택을 줄 목적으로 발주한다는 의심도 든다”며 “내년 예산심의 과정에서 학술용역으로 낭비되는 예산이 있는지 눈여겨볼 것”이라고 말했다. <끝>

    [김성권 기자·이종혁 기자 ks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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