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①) 사용처 못 찾은 '고향 사랑 기부금', 53억원 중 47억원 은행서 잠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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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①) 사용처 못 찾은 '고향 사랑 기부금', 53억원 중 47억원 은행서 잠잔다

    [고향 사랑 기부제] 깜깜이 행정 현주소
    시행 2년 차, 고작 기부금 10%만 사용
    국민 57% “기금 사용 내역 모른다”
    출향 도민 의존 높고 10만원 기부만 양산

    • 입력 2024.09.19 00:07
    • 수정 2024.09.19 06:39
    • 기자명 진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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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 2년차를 맞은 가운데 각종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MS투데이 DB)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 2년차를 맞은 가운데 각종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MS투데이 DB)

    서울에 사는 회사원 이모(58)씨는 작년에 고향인 강원도 A군에 고향사랑기부금 100만원을 냈다. 그가 서울에서 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내고 있지만, 그를 키워준 고향에 대해선 별도로 보답한 적이 큰 맘먹고 기부했다. 기부금을 내고 받은 소득공제혜택은 24만8500원, 답례품으로 30만원어치 상품권을 받았다. 100만원을 내고 54만8500원 혜택을 받았으니 결국 45만1500원을 기부한 셈이었다. 애향심에 기반을 둔 기부라고 생각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그는 올초 재경 향우회에서 “올해도 내겠느냐”는 연락을 받았지만 무시했다. 낸 돈을 어디에 썼는지, 몇 명에게 얼마를 거둬 어떻게 썼는 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알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땅히 쓸 데를 찾지 못했다며 은행에 돈을 그냥 묵혀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기대가 실망으로 변해버린 탓이었다.

    고향 사랑 기부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고향에 기부를 하면 세액공제 혜택에 답례품까지 받는다는 홍보로 시행 첫해인 작년에 전국에서 52만명이 참여해 650여억원을 모았다. 그러나 올들어 기부하려는 이들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어디에 얼마를 어떻게 썼는 지’를 투명하게 알리기는커녕 모은 돈을 은행에 쌓아 놓기만 하는 깜깜이 행정 탓이다. 기부를 하지 않는 이유로 국민들이 한 여론조사에서 꼽은 게 '모금단체를 믿을 수 없다'(60%), '기부사용 내역을 모른다'(56.8%)순이었다.

    올들어 5월까지 강원도내 고향사랑기부금 모금액은 11억9232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6억426만원)보다 25.7%나 줄었다. 모금 건수도 883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1611건)에 비해 23.9% 감소했다. 시행 2년만에 기부하는 사람도, 기부액도 모두 주는 이례적인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이같은 사정은 전국이 마찬가지다. 모금 건수는 7.9%, 모금 액수는 16.6%나 쪼그라들었다. 17개 시도 중 세종과 경남만 모금 건수와 액수가 모두 늘었을 뿐이다. 모금액 감소는 강원도가 두 번째로 컸다. 대구(-38.9%)가 감소폭이 가장 컸고, 강원(-25.7%)에 이어 경북(-25.1%), 충남(-23.8%), 충북(-23.1%) 순이었다.

     

    지난해 강원도와 도내 시군 고향사랑기부제 모금 실적. (그래픽=박지영 기자)
    지난해 강원도와 도내 시군 고향사랑기부제 모금 실적. (그래픽=박지영 기자)

    ▶고향 사랑 기부금 전국 5위

    고향사랑 기부금은 강원도가 전국 18개 시도 중 5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과가 좋았다. 전남(143억원), 경북(90억원), 전북(85억원), 경남(62억원), 강원(53억원)순이다. 고향을 떠나 외지에 사는 출향민이 많은 전라, 경상지역은 기부금도 넘친다.  기부액 전국 순위를 봐도 10억원을 넘은 3총사가 모두 전남 담양(22억원), 고흥(12억원), 나주(10억원)이다. 전남을 떠나 사는 전남 출신이 가장 많은 현실을 반영한다. 

    강원도를 고향으로 둔 인구중 외지에 나가 있는 이들은 120만명으로 추산된다.  주로 서울과 경기, 인천같은 수도권에 몰려있다. 그래서 이들은 '강원도의 힘'이 된다. 홍천같은 경우, 기부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들은 재경, 재부천, 재안산같은 향우회 간부들이 많다. 영동지역은 재포항, 재울산향우회가 한몫 톡톡히 한다. 

    도내에서 기부금은 속초시가 4억423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강릉(4억1251만원), 평창(4억 588만원), 춘천(3억9060만원) 순이었다. 전국 순위로 봐도 속초가 36위, 강릉 40위, 평창 44위, 춘천 48위를 기록했다. 기부액이 적은 순위로는 양양, 양구, 화천, 정선, 태백 순이었다. 대부분 지역이 1건당 평균 기부액이 10만원이다. 양구는 기부 건수는 적지만 18만원, 태백 16만원, 화천, 원주는 15만원을 기록했다. 이 지역들은 그만큼 고액 기부자들이 많았던 셈이다.  

     출향도민들에게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각 시군마다 주력하는 것은 교차 기부다. 고향만 아니라 자신이 지원하고 싶은 지역에 돈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춘천은 전남 고흥과, 평창은 인천연수구와 교차 기부를 추진하거나 추진중이다. 도내 시군끼리의 성행한다. 원주는 횡성, 인제·평창·속초의 공무원이나 농협직원들도 설악권이라는 소속감 아래 교차 기부를 한다. 10만원을 하면 전액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을 살려 모금은 12월에 집중된다.

    여기에 한발 더 나가 친구 추천 이벤트를 하는 지역도 있다. 전남 곡성은 친구를 추천하면 추천인에게도 상품권이나 곡성몰 쿠폰을 지급한다. 기부액은 최소 2만원이고, 기부금의 10%를 준다. 기부 릴레이가 이어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행 2년차인데 사용액은 기부액의 10% 불과 

    기부금으로 1억원을 모으면 답례품비(30%)와 홍보비 등을 빼면 대략 60%를 활용할 수 있다. 웬만한 시군에서는 1억원이 있으면 자체 복지사업을 할 수 있어 실제 효용도가 높다. 하지만 올들어 모금액이 줄어든 주된 원인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깜깜이 행정이다. 강원도내 18개 시군 대부분은 고향 사랑 기금의 사용처에 대해 “기금을 사업비 확보를 위해 적립, 예치했고 기금 사업을 발굴해 2024년에 추진 예정”이라는 설명만 내놓고 있다.

    그나마 올해 도내에서 추진하고 있는 기금 사업은 6개 시군의 11개에 불과하다. 사업비는 총 5억7000여만원으로 작년 도내 모금액의 10.7%에 불과하다. 90%에 해당되는 돈이 활용처를 찾지 못해 은행에서 잠자고 있다.   

    도내에서 추진하는 규모가 가장 큰 사업은 강릉시 ‘아동용 보행보조 웨어러블 로봇 지원(1억6000만원)’과 경로당 좌식사업(1억원)이다. 걷기에 어려움을 겪는 18세미만의 어린이들의 재활 치료를 돕기 위해 웨어러블과 보행분석 트레드밀 1대씩을 구매했다. 100여 경로당에도 의자와 소파를 지원한다. 4300여명이 1년간 모은 기금의 63%를 사용한다. 

    삼척시는 기금 사용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뽑힌 ‘고향사랑 버스승강장(6000만원)’을 지난 6월 교동 굴다리 인근에 만들었다. 냉난방기, 온열벤치, 핸드폰충전기 등을 설치해 휴식공간 역할을 한다.  

    영월군은 ‘여성1인 점포 비상벨 설치(1800만원)’ 희망자를 지원받고 있는 중이다. 여성 1인 자영업자나 범죄 우려가 큰 지역에 속한 점포에 CCTV와 비상벨, 출동서비스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진광찬 기자 lightchan@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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