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최고의 비경은 ‘삼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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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최고의 비경은 ‘삼한골‘

    [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춘천이야기]

    • 입력 2024.11.07 00:00
    • 수정 2024.11.19 14:51
    • 기자명 허준구 강원문화예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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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구 강원문화예술연구소장
    허준구 강원문화예술연구소장

    삼한골은 춘천에서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청정 자연 계곡이다.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군부대가 오랜 기간 점령해서 훈련 장소로 쓰면서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그런대로 잘 보존될 수 있었다. 삼한골은 배후령 도로가 나기가 전까지는 화천 간동 방면과 청평산 청평사로 가는 길목이긴 하였지만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골이 깊어 청평사로 갈 경우에도 소양강 길을 이용하였기에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삼한골에 관한 문헌 기록으로는 춘천부사를 지낸 송광연이 쓴 「삼한동기(三韓洞記)」가 가장 이른 시기 기록이자 유일해 보인다. 송광연은 1686년 4월(양력 5월) 당시 춘천 관아의 객사였던 문소각(후에 춘천이궁)에서 지는 꽃을 바라보다가 훌쩍 삼한동을 찾아 나섰다.

    송광연은 지금의 사북면 고성리로 들어와 앞선 시기에 이곳에 머물던 출옹(朮翁)의 살던 터를 찾아보고 선현에 대한 예를 표하였다. 고성리 용연에서 휴식을 취하고 양통고개 너머 맥국의 옛 도읍지에 관해서도 관심을 표했다. 용화산으로 돌아들어 계곡의 물과 연꽃을 깎아 세운 듯한 바위 봉우리를 바라보며 할 말을 잃고는 그 당시에 불렸을 법한 문바위 봉우리, 갓바위 봉우리, 호랑이바위 봉우리, 말바위 봉우리 등의 이름으로 기록하여 놓았다.

    용화산 대곡사와 법화사 터부터 신선이 사는 선경으로 설정하고, 이곳에서 십 리 떨어진 곳에 삼한동이 있다며, ‘옛날에는 골짜기 가운데 큰 사찰이 있었고 삼한 시대에 창건하였기에 ‘삼한사’라 부르게 되었다’라고 하여 삼한동의 유래를 적었다.

    송광연은 삼한동 풍경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구층대와 그 주변 경치를 청평산 계곡과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구층대(九層臺)에 올라 보니 폭포는 청평산 구송정(九松亭) 폭포와 비슷하고, 너럭바위는 청평산 서천(西川) 바위 비슷하며, 바위 봉우리는 청평산 부용봉(芙蓉峰)과 비슷하나 구층대(九層臺)는 청평산에 없는 곳이다. 바위틈의 꽃은 시들지 않았으며 나무에 잎은 막 돋아나고 있었고, 흘러 도는 물은 맑고 얕아서 술잔 띄우고 시 읊조리며 시원스레 가슴을 풀어내기에 알맞아 날이 저무는지도 몰랐다.

    구층대와 구층대폭포의 모습. (사진=허준구 강원문화예술연구소장)
    구층대와 구층대폭포의 모습. (사진=허준구 강원문화예술연구소장)

    구층대에서 십여 분을 올라가면 삼한동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삼한사 터가 나온다. 현재 삼한사터는 이층 기단부만 남아 있으며 당시의 영화를 추정할 수 있는 사금파리와 기와 조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다. 이 삼한사 터에서 계곡을 오르면 청평산 정상에 다다를 수 있고, 청평거사 이자현이 머물던 식암이며 하늘에 제사하던 천단과 신선들이 거닐던 소요대에도 갈 수 있다.

    날이 저물자 송광연은 삼한동의 또 하나의 비경인 구담(臼潭)을 기록하였다. 구담은 구층대에서 삼한동 입구 쪽으로 십여 분 내려오다가 좌측의 작은 골짜기 안쪽에 있어서 지나치기 십상이다. 구담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이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0여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은 영락없는 돌절구 모양처럼 생긴 못을 돌아나간다. 이 돌절구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마치 절구질하는 모습과 같아서 구담폭포로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

    송광연이 아니었다면 구층대폭포와 구담폭포는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을까? 현재까지 삼한골 관련 조선시대 글로는 「삼한동기」가 유일해 보인다. 송광연을 만나 용화산과 삼한골의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났고, 청평산과 청평사는 이자현을 만나 그 가치가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 삼한동은 춘천숲체원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통제 지역이다. 삼한동 골짜기에는 삼한사터를 비롯한 구층대와 구담폭포, 조선시대 매화시의 달인이었던 남옥의 묘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하루빨리 이 삼한동 골짜기의 역사·문화콘텐츠가 발굴 보완되어 춘천의 소중한 문화자원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 허준구 필진 소개
    -전 춘천학연구소장
    -강원도 지명위원회 위원
    -춘천시 교육도시위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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