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은 산들로 둘러쳐져 있으며 마치 둥그런 화채 그릇 모양이다. 여기에 도시 한 가운데에 봉의산이 솟아올라 이곳에 오르면 춘천을 빙 둘러친 산들을 볼 수 있다. 둘러친 산들은 높낮이를 달리하며 도심에서 차로 20~30분이면 도달할 거리에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자연에 이를 수 있다.
자연은 다름 아닌 춘천을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이 안에는 골짜기와 숲이 있어 휴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골짜기 안에 우리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세상의 묵은 때나 잡념을 한 번에 날려 보내며 신의 섭리를 생각나게 하는 광경으로 폭포가 으뜸일 것이다.
춘천 인근의 계곡에는 사계절 그 특색을 간직하고 제 나름의 멋을 한껏 부리고 있는 폭포가 여럿 있다. 그중 북산면 청평산 계곡의 구송폭포(일명 형제폭포), 신북읍 삼한골의 구층대폭포, 남산면 강촌리 봉화산의 구곡폭포, 서면 삼악산의 등선폭포를 손꼽을 수 있다.
네 곳의 폭포 가운데 청평산 구송폭포가 기록으로 보았을 때 가장 앞자리에 놓인다. 구송폭포는 폭포 주위에 아홉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폭포 주변의 너럭바위를 정자 삼아 구송정이라 부르고 폭포 이름도 그것에 따라 붙였다. 구송폭포는 용담(龍潭)으로 떨어지는 위쪽 폭포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문헌에는 용담에서 구송정이 있는 너럭바위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까지를 함께 일컫고 형제폭포 또는 쌍폭(쌍둥이 폭포)으로 불렀다. 구송폭포는 떨어지는 물줄기가 가장 크면서 웅장하여 장쾌한 느낌을 준다. 특히 선동계곡의 단풍과 어우러지는 가을철 청평 8경 중 최고의 경치를 자랑한다. 이러한 까닭에 조선시대 문인들은 이곳을 지나며 예외 없이 한시를 남겼다.
신북읍 삼한골은 삼회동으로도 불리며, 고려 왕건에게 철원에서 패한 궁예가 삼악산성으로 도망가기 직전에 이곳을 지나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삼한골은 2015년 무렵까지 특수부대 훈련장으로 사용한 민간인 통제구역이었기에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지금은 국립춘천숲체원이 들어서면서 개방되어 운영되고 있으나, 구층대폭포까지는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삼한골은 배후령이 뚫리기 이전에 화천 간동이나 청평사로 넘어가는 길이었기에 조선시대 문인들은 삼한골을 지나며 글을 지었다. 구층대폭포는 물 떨어지는 곁에 큰 바위가 층층이 쌓여 있는데 이를 구층대라 부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랜 시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온전하게 보존되었고, 그 물빛과 어우러지는 폭포는 규모가 작기는 하나 보는 이로 하여금 찬탄을 쏟아내기에 충분하다.
남산면 봉화산 구곡폭포의 다른 이름은 문장폭포(약칭 문폭)로 높이가 50m에 이르며 춘천에서 가장 큰 폭포다. 1895년 을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춘천의병장을 지낸 습재 이소응과 직헌 이진응의 문집에 문장폭포로 기록되어 있다. 구곡폭포가 있는 이곳은 시끄러운 세상을 피해 살기에 적합하여 마치 무릉도원과 같은 이상향으로 그려지고 있다. 구곡폭포를 찾아갈 때면 마치 세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며 충전시키기에 좋은 승경이다. 겨울이면 빙벽등반으로 많은 사람이 찾기도 하지만, 문장폭포 위에 있는 문배마을은 6·25전쟁 중에도 전쟁이 일어났는지 모를 정도로 세상과 떨어져 있었던 춘천판 무릉도원이었다.
삼악산 등선폭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백년 전이다. 일제강점기 춘천 서울 간 신작로를 뚫으며 1920년경 발견되었고, 발견 당시 삼학폭포(일명 경천롱)로 기록되었다. 등선폭포란 이름은 1926년경에 처음 사용되었다. 등선계곡에는 등선폭포 외에 5개의 폭포와 하나의 못이 있어 6폭 1담으로 구성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일반인에게 알려졌고, 등선폭포의 백미는 계곡 입구의 금강굴과 여섯 개의 폭포다. 등선계곡은 수억 년 동안의 기괴하고 오묘한 자연 비경을 잘 간직하고 있어, 나뭇잎이 지는 가을 끝자락의 경치로는 최고라 할 만하다.
■ 허준구 필진 소개
-전 춘천학연구소장
-강원도 지명위원회 위원
-춘천시 교육도시위원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