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업 실패 책임지라” 퇴사 종용⋯ ‘직장 내 괴롭힘’ 첫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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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사업 실패 책임지라” 퇴사 종용⋯ ‘직장 내 괴롭힘’ 첫 인정   

    노동부, 정보문화진흥원장에 과태료 처분
    직원 A씨 “시·기관장 실패를 나에게 돌려”
    업무 배제·사직 종용에 정신과 진료까지
    “악덕기업 해고 방식⋯춘천시도 책임져야”

    • 입력 2024.11.14 00:08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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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시 출연기관인 강원정보문화진흥원의 원장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사진=한승미 기자)
    춘천시 출연기관인 강원정보문화진흥원의 원장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사진=한승미 기자)

    춘천시의 대표 공공기관의 기관장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용노동부로부터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2019년 7월 이후 시 출자·출연 기관 가운데 이 법에 따른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건은 특히 공공기관이 특정 사업 실패 책임을 물어 직원을 징계하고 사퇴를 종용하는 행위가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며 노동계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처분이 공공기관에 팽배한 구시대적 ‘갑질 문화’에 대한 경고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고용노동부 강원지청은 강원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 직원 A씨가 서병조 진흥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 진정 사건에 대해 지난 8일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고 과태료 300만원 및 운영 기관에 대한 재발 방지 개선지도 처분을 내렸다. 강원정보문화산업진흥원은 매년 시 출연금 28억원이 투입되는 춘천 대표 출연기관 중 하나다. 

    이 사건의 쟁점은 춘천시가 진흥원에 위탁한 원도심 르네상스사업단 부실 운영의 책임을 묻겠다며 지난해 7월부터 A씨를 업무 배제(직위 해제)하고, 퇴사를 종용한 것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에 있었다. 진흥원 측은 당시 경영기획본부장이었던 A씨에게 사업의 총괄책임자로 실패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직위 해제 등의 인사 조처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A씨는 춘천시가 직접 사업을 진행하고 기관장 직속으로 운영한 만큼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왔다. 

    ▶직위해제 이어 정직, 평사원 발령까지

    진흥원이 추진한 원도심 르네상스 사업은 지난해 5월부터 ‘스마트상권 통합시스템 구축 및 운영관리 용역사업’ 선정 과정에서 특혜가 있다는 의혹에 따라 특정감사를 받았다. 관련 책임을 묻기 위해 A씨와 사업단장 B씨에 대한 수사가 있었지만 강원경찰청은 ‘범죄 혐의 없음이 명확하다’라며 입건 전 조사를 종결했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범죄 혐의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고, 사업 실패와도 직접적 연관이 없는데도 시와 진흥원이 자신에게 실패 책임을 뒤집어씌웠다고 주장한다. A씨는 이후 3개월간 세 차례의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직위해제 기간에는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 2개월, 정직 1개월 처분이 연이어 내려졌다. 이 기간에도 진흥원은 계속해서 A씨에게 사표를 내라고 강요하고 보직을 주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A씨는 “사업에 대한 책임은 기관장과 춘천시에 있었음에도 책임을 지고 사직하도록 강요하고, 사표를 내지 않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일관한 것”이라고 했다. 

    진흥원이 A씨에 대해 내린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정은 이미 내려졌다. 강원지방노동위원회가 A씨에 대한 중징계 2건이 모두 부당하고 양형기준이 지나쳤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진흥원은 오히려 더 강도 높은 사실상 해고에 해당하는 직권면직의 중징계를 내렸다. 이 역시 노동위로부터 부당해고라는 판정이 나왔지만, A씨의 원직 복귀가 이뤄지지 않자 노동위는 지난 10월 진흥원장을 형사고발했다. 현재 A씨는 본부장이 아닌 평사원으로 복직해 계속 출근하다가 최근 ICT벤처센터장으로 발령 받았다. 이에 대해 진흥원 측은 “본부장직에 최대한 유사한 자리로 원직복직 명령을 수행했다”며 “원직복직은 복직 시점의 기관 상황을 고려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그래픽=박지영 기자)

    ▶“1년 4개월간 힘든 싸움⋯목소리 내야 했다”  

    A씨는 직권면직(해고)을 비롯해 평사원 발령, 직위 해제 등의 징계가 지속되자 지난 3월 서 원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본지가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A씨가 원장, C본부장(A씨 직위해제로 인한 후임) 등이 대화한 녹취록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명예를 지킬 마지막 기회” “험한 일 당하기 전에 사표” “사표 쓰면 경찰 수사 막아보겠다” “정직 끝나도 어떻게 더 일하냐”는 등 퇴사를 종용하며 압박하는 듯한 발언들이 확인됐다. 또 직무교육을 명분으로 248시간의 온라인 교육을 받고 이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장기간 괴롭힘을 받았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업무 배제와 고립 등으로 대인기피와 우울증으로 정신과 병원 진료까지 받았다고 호소했다.

    강원고용노동지청은 지난 3월부터 8개월에 걸쳐 이 사건을 조사한 끝에 근로기준법 76조에 따라 서 원장이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진흥원이 사업 실패의 책임을 묻겠다며 A씨를 직무 배제하고 사직을 압박한 것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근로기준 조항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 범위 넘는 행위일 것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켰을 것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강원지청 관계자는 “제시된 자료와 다른 판단 사례 등을 살핀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을 구성하는 모든 요건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A씨는 이번 고용노동청의 처분과 관련 “기관장의 괴롭힘과 조직적인 폭력 자행, 지역사회로부터의 따가운 시선의 사회적 폭력까지 1년 4개월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직장 내 괴롭힘 처분은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끝까지 퇴직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 데 대해서는 “근로자의 한 사람이자 직장에서는 선배로서 올곧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누군가는 부당한 권력에 대항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동계와 지역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건의 진짜 문제는 단순히 괴롭힘을 넘어 근로자에게 실패 책임을 전가하는 ‘꼬리 자르기’ 문화에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계 관계자는 “특정인에게 밉보인 한 사람을 쳐내기 위한 표적감사 식의 감사와 사퇴 종용식의 괴롭힘이 이뤄졌다”라고 지적했다. 윤민섭(정의당) 춘천시의원은 “노동청의 원직복직 판정에 따르지 않아 소위 ‘생 돈’이 나가고 공적기금으로 벌금이나 변호사 자문비용 등이 투입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라며 “서 원장은 사퇴해야 하고 춘천시도 관리·감독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흥원 측은 과태료 부과 처분 등이 부당하다며 법적 다툼을 예고했다. 서 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지방노동청 결정에 대해 인정할 수 없고 민사상의 비송 절차 등 다음 단계를 갈 것”이라며 “본부장(A씨)과 정무적 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조직의 입장이나 본인을 위한 방안을 권유한 것이라 업무를 수행하는 적정 범위 내에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춘천시 전략산업과 관계자는 “법적으로 최종 결론이 나온 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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