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춘성군지역이었는데, 거두리, 학곡리같은 남부권은 논밭을 뒤엎고 상가에, 아파트가 들어서 옛모습은 이제 완전 사라졌어요. 그런데 우리 동네는 개발은커녕 기피 시설만 짓겠다니.”
춘천의 유일한 읍인 신북읍에서 나고 자란 이모(64)씨는 긴 한숨부터 내뱉었다. 춘천 도시개발 과정에서 오랜 기간 소외된 북부권 주민들의 설움을 드러낸 것이다.
이른바 춘천 남부권과 북부권의 개발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다. 퇴계동·강남동·동내면 등 남부권은 각종 개발 계획으로 상권 등이 계속 팽창하고 있다. 반면, 신북읍 사북면 등 강북권은 개발 정체가 지속되면서 인구마저 줄어들고 있다. 더욱이 강원자치도가 오는 2028년 새청사를 동내면 고은리에 짓고, 100만㎡ 규모의 행정복합타운을 만들기로 했다. 여기에 인근 다원·학곡지구 도시개발구역을 연결해 춘천 동남권 신도시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미 춘천지법·춘천지검은 고은리 이전을 공식화했고, 도교육청·농협중앙회 강원지역본부·일부 금융기관·언론사 등도 입주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신사우동에 신청사를 지으려고 했던 도소방본부도 합세할 것으로 전해진다
▶남쪽엔 행정복합타운, 북쪽엔 기피시설
도청이 동남권 신도시로 떠날 것으로 보이면서 북부권 주민만 아니라 전통적인 도심인 중앙로 일대의 주민들마저 혼란에 빠져 있다. 특히 명동과 중앙로 일대가 도심의 상업, 업무중심 기능을 수행했는데 도청이 떠나면 '속빈 강정'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지금은 도청의 1700명, 시청의 1400명의 공무원이 버티고 있어 명동 일대가 살아 있지만 도청을 옮기면 도청 직원만 아니라 관련 기관도 떠나 쇠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강원도는 도청 이전에 따른 대안으로 현 청사에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부를 복원하고 미술관과 아트갤러리 등 기록관을 조성해 역사·문화·관광 기능의 복합공간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조치만으로는 도청 직원 1700여명이 빠진 공백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민들은 지적한다. 중앙로에서 사업을 하는 김모씨는 "개발시대에는 땅값이 싼 곳으로 옮겨가 도시를 확대하는 게 맞지만, 인구감소시대에는 도심을 알차게 재개발하는 게 우선 순위"라며 "도청을 옮기면서 그만한 인원을 보충할 대체안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은 도청의 직무유기"라고 암울해했다. 결국 명동을 중심으로 한 중앙로의 도심 역할은 마침표를 찍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권 분석 시스템에 따르면 조운동을 오가는 하루평균 유동인구는 4만5462명, 소양동은 4만5983명이다. 반면, 퇴계동과 강남동의 유동인구는 각각 20만5857명, 20만9688명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 도청과 각종 기관마저 떠나면 현 도심은 황폐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도심 황폐화 지표는 출생아 수로도 가늠할 수 있다. 올들어 7월까지 출생아 수를 보면 6개동에서 겨우 60명이 태어났다. 효자1동(3명), 조운동(5명), 교동(7명), 효자3동(7명), 후평1동(16명), 효자2동(22명)이었다. 미래가 암담한 동네라는 위기 신호다.
강북지역 주민들의 위기감은 절박하다. 출생아 수를 보면 올들어 7월까지 신북면은 15명이지만, 사북면은 한명도 없고, 북산면은 한명만 태어났다. 후계 세대가 없으니 지역소멸은 막을 길이 없는 셈이다.
고은리와 마지막까지 신청사 부지 경쟁을 벌이다 탈락한 강북 주민들은 지역발전 최후의 수단마저 물거품이 되면서 희망고문만 당했다고 호소한다. 신사우동은 그나마 최근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강북 중심지로 떠올랐지만, 인구 증가속도에 비해 인프라 개발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양숙희(춘천) 국민의힘 도의원은 “우두동 도시개발사업은 신북·사북·북산면 등 강북지역의 인구 돌려막기로 인구 소멸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며 “주민들조차 아무런 기대하지 않고, 소외된 지역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이 강남, 강북권이 균형있는 발전을 꾀하지 못한 것은 도시가 제멋대로 개발된 탓이다. 춘천이 개발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춘성군과 합쳐 인구 20만명이 넘는 도시로 탄생하고, 농업용지에 일반 주택을 짓도록 한 '준 농림지 지역제도'가 본격 운영되면서다. 1994년 퇴계동에 금호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춘천에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를 열었다. 도시계획에 따라 질서있게 이뤄진 도시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다. 토지공사 등이 준농림지역에 구획정리를 해서 땅을 팔면 민간 업자들이 아파트를 지었다. 중앙고속도로와 양양고속도로가 잇따라 개통하면서 개발은 주로 이 주변 지역들로 몰렸다.
그 사이 강북지역은 소위 주민 기피시설만 유입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신사우동의 강원도새마을회관을 장례식장으로 임대하는 방안과 추곡리에 장례시설인 수목장 추진이 대표적 사례다.
30년 넘게 춘천 사농동에서 거주한 강모(51)씨는 “기피시설을 거부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장례식장이나 수목장이 퇴계동이나 석사동, 거두리에 생긴다는 상상이나 할 수 있냐”며 “지역에 필요한 시설을 짓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강북지역만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도지사 공약 우선 순위에서도 뒷전
시장·도지사 공약사업도 북부권 발전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꼽힌다. 민선 8기 들어서도 행정복합타운, 기업혁신파크, 신규 산업단지 등 굵직한 현안 사업지는 남부권에 치중돼 있다.예산권을 쥐고 있는 지자체장의 개발 우선 순위에서 뒷전으로 밀려 홀대받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강북은 인구가 빠져나가고 활력을 잃고, 다시 젊은 인구가 빠져나가 노인만 남는 지역소멸 악순환 고리에 갇혀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를 보면 지난달 기준 최근 5년간 춘천 전체 인구는 5000명 이상 늘어났지만, 강북지역인 신북읍(9.2%), 북산면 2.2%, 사북면 8.6%은 감소했다. 반면 강남동과 퇴계동 인구는 같은 기간 각각 45.1%, 7.4% 늘었다. 고령 인구 비율(65세 이상 인구)을 봐도 강북지역은 모두 춘천 평균(21%)을 크게 웃돈다. 북산면(45.8%)과 사북면(52.5%)은 65세 이상 인구가 인구 절반에 달해 앞으로 20년뒤에는 자연히 소멸의 길로 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다.
박제철 춘천시의원은 “현재 강북지역으로 분류되는 곳 대부분은 이전 춘성군인데, 1995년 통합 때부터 균형 발전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얘기한 적 없었다”며 “최근에도 춘천시에서 지역 사업 국비를 많이 확보했다고 하는데, 모두 관에서 주도한 남부권 쪽 사업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지역균형 발전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유명무실’ 춘천시 지역균형발전 조례
춘천시는 지난해 11월 발전이 뒤떨어진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역균형발전 지원 기본 조례’를 만들었다. 조례안에 따르면 시장은 춘천시균형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선정된 대상 지역에 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 정비해야 한다. 위원회는 춘천시의원, 대학교수, 연구원 등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정작 조례 제정 10개월 동안 위원회 구성과 계획수립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조명호 강원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거지나 산업단지나 모두 고속도로 주변으로 몰려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아예 시민의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지역으로 추락했다는 얘기다.
진광찬 기자 lightchan@mstoday.co.kr
(확인=김동섭 데스크)
중심인 명동의 상권도 모두 죽이며 강남외각으로먼 벌전 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