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오랫동안 군사독재 정권 시절을 겪은 대한민국에서 군대는 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의 대상으로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이후 수평적 정권교체가 몇 번에 걸쳐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군대 역시 다양한 루트를 통해 민주화됐다. 최근엔 특수부대 군인들이 예능에 나와 대중의 인기를 끌기도 하고, 한국 군대 전력의 우수함이 ‘국뽕’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하는 등 군에 대한 이미지 역시 굉장히 좋아졌다.
- 군인도 부당한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
그러나 2024년 12월 3일,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에 헬기를 타고 입법부에 진입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넘도록 조금씩 불식됐던 군대와 한국 민주주의의 긴장 관계가 다시 드러나게 됐다. ‘군대’는 본질적으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만, ‘조직화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12.3 비상계엄’을 겪으면서 군대가 민주주의의 통제를 벗어날 경우 얼마든지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다시 느꼈다. 게다가 일부 군인은 수개월 전부터 계엄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수사 내용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더 하고 있다. 민주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명령을 따르면 안 된다는 사회적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 민주주의는 개인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부당한 압력과 명령에 거부하는 것을 오롯이 ‘개인의 양심’에만 맡겨두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며 현실에서 효과를 발휘하기도 어렵다. 상식을 가진 수많은 군인이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라 국회에 진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는 문제 해결을 개인의 양심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제도와 구조를 만들어 개인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문제의 원인을 사전에 제어하도록 한다. 건국 이래 가장 거센 비판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된 대한민국 군대에 필요한 것은 개별 군인의 ‘양심 제고’가 아니라, 군 조직이 스스로 통제하고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구조“여야 한다.
- 노동조합은 기업의 내부 견제 조직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헌법에서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권은 시민들이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 할 ‘표현의 자유’와 시민 스스로 목소리를 조직할 수 있는 ‘결사’의 자유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체제를 혼합한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조직하는 대표적인 조직은 바로 ‘노동조합’이다. 흔히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경제적 요구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거대 관료조직과 권력구조 내부에서 스스로를 견제하는 역할을 함께 한다. 실제 기업에서 노동조합은 내부의 ‘휘슬블로어(Whistle Blower, 내부고발자)’의 역할을 한다.
- 유럽,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엔 군대·경찰도 노조가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군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군인들이 조직 내부에서 부당한 권력의 개입에 맞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것은 ‘노동조합’이라는 형식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혹자들은 군대조직의 특수성을 들어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국,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양한 국가들에 이미 군인노동조합이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22개 국가의 32개의 군인노조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 군인노동조합은 군인들의 복지 증진 활동과 함께 군대 내부의 부당한 명령이나 관행들을 견제하는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 국가들 상당수에 존재하는 ‘경찰노동조합’들 역시 마피아 등과 결탁한 부패 경찰을 내부에서 견제하는 역할을 하면서 성장하기도 했다.
- 한국도 경찰·소방관의 결사 권리를 일부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방관, 경찰 역시 노동조합 설립 권리가 오랫동안 부정됐었다. 하지만, 소방관은 문재인 정부 때 노동조합 설립과 활동이 가능해졌고 경찰도 노동조합과 유사한 조직인 ‘직장협의회’를 설립해 다양한 내부 견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군대도 마찬가지로 ‘파업권’을 완전히 보장하지 않더라도 경찰과 소방관만큼의 결사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군인이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군 조직을 스스로 견제하면서 작금의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계엄 이후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까지 어렵고 복잡한 시간이 지속되고 있다. 계엄의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징계한다고 해서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잘 못 된 것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그동안 부족했던 제도적 문제점 무엇인지 더 나은 구조로의 개혁이 가능한지도 다양하게 토론하고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
국내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을 창립했고 서울시 노동협력관, 경기도 노동정책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는 사단법인 정치발전소에서 민주주의와 현실 정치에 대한 교육과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 <청춘일기>, <대한민국 20대 절망의 트라이앵글을 넘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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