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계엄은 대통령에 의한 쿠데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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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계엄은 대통령에 의한 쿠데타였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는 13가지 요점

    • 입력 2024.12.05 00:05
    • 기자명 박상훈(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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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이 급할 때는 요점만 말해야 한다. 지금이 그럴 때다.

    첫째, 사실상 대통령에 의한 쿠데타였다. 사회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아닌, 국회와 정당을 공격하고 지배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둘째, 영국 명예혁명의 사상가 로크는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권리를 뺏는 것을 ‘권력 찬탈’이라 정의했다. 국회와 정당의 권리를 박탈하려 했던 이번 사태가 정확히 그랬다. 찬탈이고 쿠데타인데, 다행인 것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셋째, 이번 사태로 대통령의 일방적 계엄선포권은 폐지되었다. 사실상 개헌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로써 계엄은 국회가 동의해야만 선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봐야 한다. 윤석열의 경솔한 행동이 역설적으로 한국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하게 했다.

    넷째, 입헌 민주주의의 보루는 국회가 되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입헌주의의 지위는 애매했는데, 이번 사태로써 분명해졌다. 비상대권조차 헌법보다 국회의 동의 여부가 더 결정적이 되었다. 마치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당시 의회가 절대 군주제를 폐지하고 입헌 군주제 시대를 연 것과 다름없는 대단한 일을 우리 국회가 해냈다.

    다섯째, 대통령 중심제는 폐지되었다. 반(反) 의회적이고 대통령 개인 중심의 정부 형태는 폐지된 것으로 봐야 한다. 대통령 개인의 알 수 없는 개성과 인격에 과도한 영향을 받는, 사인화된 대통령제는 이제 정당화될 수 없다.

    여섯째,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최소한 정치를 모르는 아웃사이더에게 대통령직을 맡길 수 없다. 국회에서 정치를 익혀 온 정치인이 대통령을 해야 한다. 향후 한국 민주주의는 정당 책임 정치의 방법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일곱째,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서나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나 윤석열은 사퇴해야 한다. 사퇴 역시 일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국회 그리고 여야와 조기에 합의해야 한다. 이는 혼란 없이 정부를 운영하고 안정적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윤석열이 해야 할 마지막 책임이다.

    여덟째, 국회와 여야는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 계엄을 신속하고도 하자 없이 해체시킨 것은 잘했다. 국회와 여야 정당이 있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도 잘해야 한다. 길게 보면 이번 사태에 여야나 국회 또한 책임이 없는 게 아니라는 점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아홉째, 정치의 복원이 우리의 미래다. 지난 2016년 촛불집회 이후 ‘정치 없는 민주주의’를 너무 오래 계속해 왔다. 국회는 우리를 실망시켰고, 여야는 권력 투쟁만 했다. 증오와 적대가 지배하는 주말의 거리를 벌써 몇 년째 지켜봐야 했는지 모른다. 정치는 없고 적폐 싸움, 사법 전쟁만 있었다. 이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열째, 윤석열이 가장 싫어한 이재명의 민주당과 한동훈의 국민의힘은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이 이 두 사람 가운데 하나일지는 아직 모른다. 대통령의 빠른 사퇴와 조기 대선은 이들을 앞서 나가게 할지는 몰라도 결국 모든 것은, 향후 이 사태를 평화적으로 마무리하는 실력을 누가 보여주느냐에 달려있다.

    열한째, 이재명, 한동훈은 지금까지 당내 권력 투쟁에서 승리했을 뿐, 한국 사회를 이끌 지도자다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누군가가 망해서 얻는 기회는 독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두 사람도 정치 경험은 풍부하지 못하다. 그들이 윤석열보다 나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열두째, 지금 우리사회의 불행은 존경할 만한 정치 지도자감이 너무 없다는 데 있다. 다들 싸움과 쟁취에는 능하나, 공동체를 통합적으로 이끌 자질은 보여주지 못했다. 우리가 윤석열 대통령을 만난 것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도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른다. 이재명, 한동훈 못지않은 야심가가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열셋째, 국민의힘은 또 분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보수 쪽이 망할 수도 있다. 민주당을 위시한 진보 쪽이 확실한 도덕적 우위를 가진 것도 아니다. 한국의 정당체계는 불안정하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권력 추구자만 있지, 무엇을 책임지려는 정당인지 알 수 없다. 가치나 신념의 힘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정치에서 좋은 변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사람이라면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정치의 오랜 퇴행을, 이번을 기회 삼아 달라지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시민들이 다시 정치와 정치인을 신뢰하게 할 수 있을까? 차기 대통령은 이 질문에 답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나는 본다. 

    박상훈 정치학자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한국 지역 정당 체제의 합리적 기초에 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정치적 말의 힘>, <청와대 정부>, <민주주의의 시간>,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정당의 발견>, <만들어진 현실>, <정치의 발견>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소명으로서의 정치>, <경제 이론으로 본 민주주의>(공역),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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