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와 춘천시민, 기형 선거구가 만든 ‘잘못된 만남’
  • 스크롤 이동 상태바

    한기호와 춘천시민, 기형 선거구가 만든 ‘잘못된 만남’

    지난 총선, 기형적인 선거구 탄생
    주민들, 게리맨더링 논란 희생양
    코로나19, 거리 등 지역구 소홀
    일부 춘천시의원, 소통 부재 지적

    • 입력 2023.02.09 00:00
    • 수정 2024.01.02 13:46
    • 기자명 특별취재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기호(춘천·철원·화천·양구을) 국회의원이 지난 3일 춘천시 우두동에 있는 의원 사무실에서 강북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청취하고 있다. (사진=허찬영 기자)
    한기호(춘천·철원·화천·양구을) 국회의원이 지난 3일 춘천시 우두동에 있는 의원 사무실에서 강북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청취하고 있다. (사진=허찬영 기자)

     

    춘천시민과 한기호 의원의 ‘잘못된 만남’은 21대 국회의원 선거구의 기형적 획정이 만들어낸 부작용이라는 지적이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 당시 선거구 재획정으로 강원도 ‘정치1번지’ 춘천 지역구는 인접 지역과 묶인 기형적인 구조로 탄생했다. 춘천의 선거구 누더기 획정안은 2020년 4·15 총선에서 만들어진 기형적 구조로 지방자치를 우롱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춘천분할 기형 선거구는 현행 8석을 그대로 끼워 맞추려다 보니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자의적 선거구 획정) 논란에 휩싸였다.

    한 의원의 지역구인 춘천·철원·화천·양구을은 신사우동, 동면 등 춘천시 내 6개 읍·면·동과 철원, 화천, 양구 전역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선거구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허영 국회의원의 지역구인 춘천·철원·화천·양구갑은 춘천시 내 19개 동과 면 만으로 구성됐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이 같은 기형 선거구가 탄생하자 지역 정치권에서는 거부와 반발이 거셌다. 당시 총선 주자들은 “춘천이 최대 피해자가 됐다. 도민을 무시한 역대 최악의 선거구 획정”이라며 재획정 등 국회의 합리적인 판단을 촉구했다. 그런데도 국회에서는 지역 정치권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지난 제21대 총선 당시 춘천시의 경우 기준이 됐던 2019년 1월 말 인구는 28만574명으로, 인구 상한 기준인 27만3130명보다 많아 단독 분구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8석이던 강원도 국회의원 의석수를 9석으로 늘리려는 여야 협의가 불발되며, 춘천·철원·화천·양구을이라는 기형 선거구가 탄생했다. 당시부터 당선자의 소홀한 지역구 관리는 물론 지역 주민과의 소통 부재 우려가 지적됐다.

     

    제21대 총선 당시 선거구 재획정안에 따라 책정된 춘천·철원·화천·양구을 선거구는 인구가 적은 춘천 북부 지역과 철원·화천·양구를 한 데 묶은 기형적 형태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제21대 총선 당시 선거구 재획정안에 따른 춘천·철원·화천·양구 을 선거구는 인구가 적은 춘천 북부 지역만 떼어내 철원·화천·양구와 묶은 기형적 형태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21대 총선에서 한 의원은 총 4만3084표를 얻어 정만호(3만8352표)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하지만 춘천 시민의 표만 따져 보면 정만호 후보가 1만5389표로 한 의원(1만4998표)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았다. 그러나 한 의원은 철원에서 정 후보보다 3874표, 화천에서 1085표, 양구에서 163표를 더 얻어 춘천에서의 열세를 이겨내고 당선됐다. 춘천과 이 지역들이 한 선거구로 묶이는 바람에 춘천 국회의원 타이틀을 달았지만, 실제 춘천 시민들의 선택은 받지 못한 셈이다.

    지역 정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에서 한 의원이 춘천 지역에 소홀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선거와 마찬가지로 다음 선거에서도 표를 얻기 위해서는 춘천을 챙기는 것보다 철원·화천·양구를 챙기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리적 위치상으로도 춘천을 챙기기 어렵다. 한 의원의 지역구 중 춘천으로부터 가장 거리가 먼 철원 가단리부터 춘천시 동면 품걸리까지 차량 이동 시 3시간 안팎이 걸린다. 최대 왕복 6시간(130~174㎞) 거리다.

    반면 춘천시 내 19개 동과 면을 지역구로 둔 허 의원은 춘천시의 최동단인 북산면 대곡리와 최서단인 남면 관천리까지의 차량 이동 소요시간은 1시간 15분 정도에 불과했다. 한 의원은 단순 수치상으로 3배에 가까운 거리를 오가며 지역구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같은 기형 선거구에 대해 노승만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을 생각하는 지역 선거구가 아닌 국회의원 본인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지역구가 쪼개진 것”이라며 “지역구 국회의원도 생활권이 존중돼야 하는데 선거구가 생활권의 기준이 아닌 인구 기준으로 나뉘다 보니 같은 생활권 안에서 선거구가 쪼개지는 현상이 나왔다”고 밝혔다. 주민은 물론 지역구 의원 모두 리스크 발생이 불가피한 실정이란 설명이다. 노 선임연구위원은 “올바르게 선거구가 분할되기 위해서는 인구 기준이 아닌 국가에서 수립하는 도시기본계획의 생활권과 연계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의원과 같은 지역구를 둔 춘천시의원들도 소통의 부재로 인한 어려움을 지적하고 있다. A 시의원은 “소통이나 의견 교환이 거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의사소통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며 “총선이 다가오니 이제 춘천지역을 챙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B 시의원은 “아무래도 소통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지역에 숙원 사업이 있는데 지역 국회의원과 소통이 안 되다 보니 대신해 당의 지역위원장과 국회를 방문하는 등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한 의원 측은 "기형적인 선거구임에도 한 의원은 지역 주민과 만나는 자리를 지속하려 했지만,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라 어려움이 있었다"며 "이 밖에도 거대 선거구였던 점 역시 한 의원이 일부 지역구에 소홀할 수밖에 없던 이유"라고 말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인 허영 의원은 춘천 단독 분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며 국회는 다가오는 총선 선거일 1년 전인 오는 4월 10일까지 국회의원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

    특별취재팀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