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의 상큼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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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파리의 상큼한 맛

    [도문대작] 60. 해파리[海䑋]. 인천(仁川)과 남양(南陽) 등지에서 잡힌다

    • 입력 2025.01.11 00:03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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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도문대작(屠門大嚼)’은 푸줏간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쩍쩍 크게 다신다는 뜻이다. 이 책은 허균의 방대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저술된 일종의 음식 관련 저술이다. 다시 분류하자면 음식문화를 기록한 책으로 보아야 한다. 허균의 고단한 유배지 식탁은 과거 풍성한 식탁 귀퉁이조차도 구경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를 극복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었다. 그런 궁핍한 현실 속에서 허균의 미각적 상상력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풍기 교수와 함께 걸작 도문대작을 탐닉한다. <편집자 주>

    해파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여름이 지나간다는 신호였다. 내리꽂히는 여름 햇살 아래 매일 바다에 몸을 맡기고 한철을 보내던 우리에게, 파도를 따라 하나둘 해파리의 희끗희끗한 모습이 언뜻 보이기 시작하면 검게 그을린 몸뚱이를 갈무리하면서 이제는 가을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해파리는 갓 둘레로 아주 작은 촉수들이 촘촘히 달려있고 그 촉수 끝에는 쏘기 세포가 있다고 한다. 어쩌다 해파리에 쏘이면 따끔한 느낌과 함께 피부가 붉게 변하거나 부풀어 오르는 것은 그것이 머금고 있는 독 때문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해파리에 쏘여서 생명을 잃는 때도 있으니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강원도 동해안에 8월이 밀려오면 어디선가 해파리도 해안으로 밀려오곤 했다. 제법 커다란 둥근 갓을 달고 있는 해파리는 푸른 바닷물 위에 둥둥 떠 있으면 희게 보였고, 그것을 들어서 햇빛에 비춰보면 투명한 것처럼 보였다. 친구들은 이런 해파리를 들고 백사장으로 나와서 모래 위에 던져두곤 했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흐물흐물해 지면서 물처럼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글 중에 최유해(崔有海, 1587~1641)가 금강산을 유람한 기록에 남긴 제발이 있다. 거기에는 천도(穿島)라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 바다에는 공처럼 둥근 해파리가 많이 떠 있다는 점, 투명해서 겉과 속이 환히 보인다는 점, 물결을 따라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언급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내가 어릴 적 보았던 동해의 해파리와 비슷해 보인다. 어떻든 나는 이때 까지만 해도 해파리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중에서 어떤 종은 식용이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해파리냉채 방식으로 접한 이 음식은 주로 잔칫집에서 발견되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해파리냉채 방식으로 접한 이 음식은 주로 잔칫집에서 발견되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해파리를 먹어본 사람들은 사정이 달랐겠지만, 내 경우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해파리를 식탁에서 맛볼 기회가 있었다. 식재료에 대한 경험은 나이뿐 아니라 지역이나 경제 수준, 식문화의 경향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해파리를 저 당시에 처음 만났다고 해서 식재료로서의 해파리 역사가 짧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해파리냉채 방식으로 접한 이 음식은 주로 잔칫집에서 발견되었다.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톡 내는 겨자 소스에 버무려진 해파리냉채는 특히 입맛을 돋우는 데에 탁월한 음식이었다.

    중국에서는 해파리를 식용으로 사용한 것이 1700년 이상이나 될 정도로 고대부터 애용되었다. 염장 상태로 처리되어 가느다란 국숫발 형태로 유통되어 양장피와 같은 중국요리 풍의 음식에서 해파리를 사용하는 것 역시 오랜 중국요리의 역사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근구해파리 종이 식용으로 주로 사용되었으며, 사육된 지가 제법 되었다.

    조선 시대에도 해파리는 식재료로 사용되었다.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소비가 많이 되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궁중의 공물 목록에 이따금 등장한다. 정조의 ‘일성록(日省錄)’에는 각종 물건의 값을 적어놓은 목록이 있는데 해파리는 일정한 값을 가진다기보다는 시기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고 했다.

     

    해파리[海䑋]. 인천(仁川)과 남양(南陽) 등지에서 잡힌다. 맛은 소의 지라와 비슷한데 상큼하다. 오직 두 지방 사람만이 요리해 먹을 수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해파리[海䑋]. 인천(仁川)과 남양(南陽) 등지에서 잡힌다. 맛은 소의 지라와 비슷한데 상큼하다. 오직 두 지방 사람만이 요리해 먹을 수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해파리는 해양(海䑋), 해장(海腸), 수모(水母), 수모소(水母蔬), 해타(海駝), 해차(海鰂), 저포어(樗蒲魚), 석경(石鏡) 등으로 표기된다. 우리말로는 ‘ᄒᆡ파리’로 표기하고, 그것을 한자로 음차하여 해파리(海玻璃) 혹은 해팔어(海八魚)로 쓴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이렇게 서술하였다. “해파리[海䑋]. 인천(仁川)과 남양(南陽) 등지에서 잡힌다. 맛은 소의 지라와 비슷한데 상큼하다. 오직 두 지방 사람만이 요리해 먹을 수 있다.”

    소의 지라와 비슷하다고 한 것은 아마도 그것이 가지는 식감 때문으로 추정된다. 해파리는 약간 쫄깃한 식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나름의 향을 살짝 풍기는데, 이런 점이 아마도 소의 지라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를 도축하면 지라는 소금만 찍어서 바로 먹을 정도로 마니아층이 있기는 하지만, 조금은 강한 쫄깃함이나 특유의 냄새가 있어서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예 먹지 않는 예도 있다. 어떻든 허균은 해파리의 맛과 향을 소의 지라에 비유하면서 그보다는 더 상큼한 느낌이 나는 음식이라고 했다. 조선 시대에는 해파리를 어떤 방식으로 조리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허균의 서술에서 ‘팽임(烹飪)’이라는 단어를 쓴 것에서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물론 이것은 요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단어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이 단어를 쓴 데에는 해파리를 끓이거나 삶아서 조리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19세기의 인문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은 해파리에 대해 변증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우리나라 호서, 호남, 해서, 관서, 동북해(東北海)에는 토속어로 해파리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물거품처럼 생긴 모습으로 파도 위를 떠다닌다고 했다. 그것을 잡아서 찔러보면 피를 흘리는데 그 용도는 알 수가 없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먹지 않기 때문에 모두 버린다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그것을 모두 수거해 가는데 백반 같은 것에 담가놓으면 오랜 시간이 되어도 없어지지 않으며, 비단에 풀을 먹일 때 사용한다고 들었다고 기록해 놓았다. 이런 기록을 보아도 민간에서는 해파리를 식용으로 삼는 일이 흔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궁중에서는 식용이나 약용으로 사용했을 것인데, 이는 조선 시대 편찬된 지리지에 서해안 여러 지역의 토산물로 기록되어 있다든지 '본초강목(本草綱目)'과 같은 의학서에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확인되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해파리의 사용이 민간으로 확대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한반도 근해에서 서식하는 해파리의 종류 중에 보관성이 높은 종이 없어서 그런 것을 아닐까 싶다.

     

    해파리의 출몰에서 기후 변화와 위기를 읽어내는 것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해파리의 출몰에서 기후 변화와 위기를 읽어내는 것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이제 해파리는 환경적 상징으로 이따금 언론에 등장한다. 해파리의 출몰에서 기후 변화와 위기를 읽어내는 것이다. 요즘은 수온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시기만 되면 7월에도 동해안에 해파리 떼가 기승을 부린다. 수영하다가 해파리에 발이 닿기라도 하면 따끔하면서 아프므로 위험하다. 인간의 욕망이 짧은 시간 동안 지구 환경을 급변하게 했다면 해파리 떼의 출몰에서도 인간의 업보를 읽어낼 수 있다. 아무리 작은 변화라도 그것은 우리 주변, 나아가서 지구를 구성하는 삼라만상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아무리 작은 음식이라도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우주를 삼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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