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근현대 춘천 이야기] 영원한 일본제국을 꿈꾸던 「춘천풍토기」와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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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근현대 춘천 이야기] 영원한 일본제국을 꿈꾸던 「춘천풍토기」와 춘천

    • 입력 2023.06.15 00:00
    • 수정 2023.06.15 08:06
    • 기자명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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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1935년 조선일일신문(朝鮮日日新聞) 기자 고노반세이(河野萬世)는 춘천에 관한 역사와 제반 현황을 여러 문헌과 글을 참조하고 정리한 「춘천풍토기」를 출간했다. 고노반세이는 춘천에 여러 해 거주하였던 인물로 일제 식민사관에 기반하여 신라를 정벌하고 단군을 왕위에 앉힌 일본 신(神) 스사노 오노미코토(素盞嗚尊)가 우두산에 강림하였다는 날조된 역사를 근거로 이곳에 조선의 영원한 통치를 위해 일본 신궁을 지어야 한다는 망상을 설계했다.

    이 책은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935년 당시 강원도의 역사와 행정조직 교육기관 등을 1~4장에 기술하고, 5~16장에는 춘천에 관한 행정 연혁을 비롯해 교통기관, 51곳의 명승고적, 날조된 역사를 동원해 우두산에 스사노 오노미코토 신궁을 건립해야 한다는 당위성, 경찰서, 소방조(지금 소방서), 우편국, 교육기관, 관공서, 금융기관, 민간 회사와 민간단체에 관해 기술했다. 마지막 16장은 전·현직 관료의 글을 인용해 춘천의 과거를 회고하고 우두산에 신궁이 지어진 미래를 전망하며 마무리했다.

    「춘천풍토기」는 정치·경제·사회 측면에서 조선을 근대화했다는 관점을 유지하며 일본 서적이나 논문을 인용하며 일본이 조선 근대화에 시혜(施惠)를 베풀었다는 식민사관을 담고 있다. 

     

    춘천(자동차)역 전경과 내선자동차 경성본사. (사진=「춘천풍토기」)
    춘천(자동차)역 전경과 내선자동차 경성본사. (사진=「춘천풍토기」)

    “20년 전 3일 2야(夜)가 걸렸고, 또 10년 전에 자동차로 20여 시간이 필요하던 경성 춘천 간 교통이 현재(1935년: 필자 주)는 4시간이 걸린다. 또 2년 후에는 불과 2시간 반이나 3시간으로 빠르게 향상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것은 30년 전의 여행자에게 있어서는 몽상(夢想)일 수밖에 없다.” (P. 83 제7장 제2절, 춘천을 중심으로 한 자동차 교통의 연혁과 합리화 부분) 

    또 맥국 관련 자료를 최대한 싣고 이를 단군과 연결해 우두산에 단군을 임금 자리에 오르게 한 오노미코토를 모신 신궁을 건축해야 하는 자료로 일관되게 활용하고 있다.

    “주민에게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맥국시대 석전(石戰)의 군비로 각종의 전쟁기구를 감추어 두는 곳이라는 설이 있다. 혹은 고대 왕 또는 추장의 무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도 근처 너른 들에는 크고 작은 돌무덤 48기가 산재해 있다.” (p.119 춘천군 신북면 천전리 )

    “학곡리 지석동 마을의 남방 500m쯤 밭 가운데 7기가 있는데 모두 직경(直徑) 2m 정도의 반석 위에 작은 돌을 쌓아 올렸는데⋯ 석사리, 지석마을 안에 1기가 있는데⋯ 혹은 고대왕의 자손 묘라고 말한다. 또는 옛날 맥국왕의 자손 묘라고 말하는데” (p.122 춘천읍 학곡리 및 석사리 ) 

     

     

    시사노 오노미코토 신사건립지 시찰단 일행. (사진=「춘천풍토기」)
    시사노 오노미코토 신사건립지 시찰단 일행. (사진=「춘천풍토기」)

    전직 고위 관료의 상상으로 꾸미는 16장 ‘20년 후의 춘천’ 이야기에서는 20년 후(1955년)에 봉의산에 3층 전망대를 세우고 동서남북으로 케이블카를 연결, 우두산과 우두 벌판에 일본 신궁 세상을 조성해 일본제국의 영원함을 꿈꾸었다.

    “봉의산 정상에는⋯ 8각형의 건물이 있는데⋯ 3층은⋯ 창문의 전부 유리로 되어 있어 완전한 수정궁(水晶宮)이다. <중략> 북쪽은 우두리(牛頭里)다. 유명한 스사노 오노미코토 신궁을 건축하였다. <중략> 신궁을 장엄하게 영조한 것은, 인연이 그러하거니와 시세(時勢)도 그렇다.” (p. 275 16장 3절 20년 후의 춘천 )

    「춘천풍토기」편찬 의도는 영원한 일본제국을 춘천에 건설하고자 했던 일제의 욕망에서 출발했다. 이 책은 조선 식민지배 정당성과 내선일체(內鮮一體) 사상을 합리화하며 치밀하게 구성한 소설 같기도 하지만, 일제의 교묘한 침탈과 정복 야욕이 얼마나 집요하고 무서운지를 실증하는 죽음의 묵시록 같기도 하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가깝고도 먼 일본에 협력하거나 맡길 수 없는 분명한 까닭, 여기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허준구 필진 소개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 소장
    -춘천시 문화도시 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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