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모바일 메타버스 앱 ‘버추얼강원’에 접속하니 “2024 강원 동계 청소년 올림픽 메타버스는 성공적으로 운영을 종료했다”는 안내 문구가 표시됐다. 안내에는 2024년 5월 중 ‘재오픈’을 예고했지만, 6개월이 지난 이날 앱스토어에서 ‘버추얼강원’을 검색해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기존에 앱을 설치한 사용자도 메타버스를 실행할 수 없는 상태다. 출시 이후 이 앱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약 2만5000건이다. 강원특별자치도가 세금 65억원을 투입해 만들어낸 올림픽 메타버스의 실태다.
강원특별자치도가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을 맞아 개발한 메타버스 플랫폼 ‘버추얼강원’이 세금 낭비 논란에 휩싸였다. 이 플랫폼은 세계 최초로 올림픽을 가상공간에 구현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로 개발했으나 초기부터 기술적 문제와 저조한 사용자 참여로 논란을 빚어 왔다. 현재는 아무런 활용 방안도, 발전시키기 위한 구상도 없이 사실상 폐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정부와 지자체 주도 공공 메타버스 사업은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정부 주도 혁신이란 시도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출발부터 삐걱거린 ‘버추얼강원’
동계 청소년 올림픽을 위해 지난 1월 출시된 버추얼강원은 올림픽 최초의 메타버스다. 사용자가 메타버스 내 가상 경기장에서 경기를 관람하거나 스포츠 체험을 통해 올림픽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전 세계 청소년이 가상공간에서 올림픽의 열기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강원 메타버스 거점도시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배정된 사업비 540억9000만원(국비 50%, 지방비 50%) 중 65억원이 버추얼강원에 투입됐다. 동계 청소년 올림픽 전체 예산(약 700억원)의 10% 수준이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출시 직후 아이폰을 사용하는 만 17세 미만 청소년이 앱을 다운로드할 수 없는 기술적 문제가 발생했다. 이 문제는 MS TODAY 보도 후에야 해결됐다. 참여율 또한 부진했다. 강원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총 다운로드 수는 2만5068회, 로그인 수는 7만6450회로 나타났다. 총 체류 시간은 2만4000시간에 그쳤다. 사용자 1인당 약 26만원이 투입됐지만, 1인당 평균 접속 횟수는 3회, 체류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
버추얼강원은 애초부터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플랫폼이었다. 오륜기 엠블럼 등 올림픽 IP 사용권 만료로 지난 3월 서비스가 종료됐다. 서비스 시작 단 두 달여 만이다.
▶이름 바꿔서 다시 오픈했지만 ‘손님 없어요’
강원특별자치도는 올림픽 종료 이후 버추얼강원을 관광 플랫폼으로 전환해 지속적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다. 버추얼강원은 3월부터 서비스 종료 상태로 방치되다 지난 9월부터 메타버스 플랫폼인 ‘맥스버스(MAXVERSE)’에서 ‘관광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재출시됐다. 맥스버스는 정부가 전국 지자체가 제작한 메타버스를 한 곳에 모으기 위해 만든 플랫폼이다. 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취재진이 직접 장시간 플랫폼을 체험했지만, 메타버스 내에서 다른 이용자를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본지는 강원도에 ‘관광 메타버스’의 이용자 현황을 요구했으나 자료를 받을 수 없었다.
기술적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아이폰 등 IOS 사용자들은 사용조차 할 수 없다. 강원특별자치도는 추가 개발비용 문제를 이유로 아이폰 지원 계획을 보류하고 있다. 갤럭시 등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도 메타버스 apk(스마트폰 프로그램 파일)를 따로 설치해야 한다.
‘관광 메타버스’라는 앱의 존재 가치 자체가 모호하다. 우선 ‘관광 메타버스’라는 이름부터 강원지역과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정작 메타버스 안에서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도 강릉지역에 한정돼 있다. 강원특별자치도는 “플랫폼은 도가 만들었지만 실제 탑재되는 지역 관광 콘텐츠는 강원 18개 시군이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대현 강원특별자치도의회 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18개 시군이 관광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며 “도와 각 시군 실무자들이 모여 협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지자체 주도 공공 메타버스의 예정된 실패
올림픽 메타버스가 기획된 2020년 당시 메타버스 열풍은 전 세계적이었다. 다양한 가상 세계를 온라인에 구축하는 메타버스가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한창이었을 때 큰 기대를 받았다. 당시 정부에서도 메타버스 활성화를 위해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많은 지자체가 지역 홍보를 목적으로 메타버스 콘텐츠 제작에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가 주도한 메타버스 사업은 전부 실패했다. 서울시의 ‘메타버스 서울’은 하루 평균 접속자가 500명 수준으로, 참여율이 서울시 인구의 0.05%에 불과하다.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메타버스 서울은 지난 10월 16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경상북도의 ‘메타포트’, 울산시의 ‘안전체험 메타버스‘, 경상남도의 ‘범죄예방 아일랜드’ 등도 월평균 이용자가 100~500명에 그친다.
강원특별자치도 역시 당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메타버스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유망하다니까 거액을 쏟아부어 일단 해보는’ 전형적인 실패 수순을 넘어서지 못했다. 메타버스의 유행이 시들어가면서 강원특별자치도의 메타버스 사업도 2025년까지 종료될 것으로 전망된다. 강원특별자치도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강릉 메타버스 전시관에 내년 20억원을 투입하는 것을 끝으로 메타버스 사업은 사실상 종료할 것”이라며 “메타버스 대신 자율제조 시스템 등 산업체에서 활용 가능한 AI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지자체 역시 민간 기업처럼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관계자는 “메타버스 콘텐츠를 보강하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콘텐츠 보강이나 사용자 가치 증대를 통한 서비스 확장에 대해 뾰족한 대책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민간 부문의 혁신이 필요한 신사업에 정부가 무턱대고 뛰어드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위정현 중앙대학교 가상융합대학장(한국게임학회장)은 “공공 메타버스 사업은 이용자들이 메타버스에서 어떤 활동과 경험을 통해 어떤 즐거움을 느낄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이 현실 공간을 단순히 가상으로 옮겨놓는 수준이라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지자체의 접근 방식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추진하는 사업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MS투데이는 강원특별자치도가 추진한 ‘올림픽 메타버스’에 대한 시민의 의견을 묻습니다. 온라인 기사(mstoday.co.kr) 본문 하단 설문조사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설문 결과와 기사에 달아주신 의견(댓글)은 후속 기사에 반영할 예정입니다.
이정욱 기자 cam2@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