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는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리고 살아 올라오는 녀석만 키운다는 얘기를 흔한 상식처럼 듣는다. 험한 세상에서 아이를 내보내야 하는 현실때문에 부모들이 고개를 끄덕일만 하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다. 자기가 낳고 젖물려 키우는 새끼에게 그렇게 비정한 포유류는 ‘거의’ 없다. 의심된다면 AI에게 묻든지 유투브에 검색해 보라. 절벽에 아슬하게 걸려있는 새끼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내리는 어미 사자의 사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자는 다정한 양육자이다.
인간은 예외적 포유류이다. 고대에는 생산적이지 못한 신체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을 절벽이나 들판에서 폐기하는 영아 살해가 일반화되어 있었고 부모들도 자기 아이들에게 애착을 갖지 않으려 했다. 중세 시대 서양에서는 아동을 ‘작은 성인(little adult)’으로 이해했고 아이들은 어른다움을 강요하는 훈육과 고된 육체 노동을 가정과 일터에서 감당해야 했다. 사람은 비정한 양육자였다.
아동이 성인과 차별되는 주체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현대에 들어와서였다. 1989년 채택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을 18세 미만의 모든 사람으로 정의하고 부모의 소유나 미래를 준비하는 미숙한 존재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존엄한 권리의 주체로 천명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폭력과 차별로부터 보호받고 아동의 참여와 의사를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다. 현재 196개국이 협약의 당사자로 참가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1991년에 비준했다.
우리나라의 아동정책은 협약의 가입 이후 30년 동안 많은 변화를 만들어왔다. 아동에 대한 체벌이 학교와 가정에서 법적으로 금지되었고 아동대상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되었다. 최근에는 선거권이 18세 미만으로 하향되는 등 법과 제도들이 아동 중심으로 개선되는 중이다. 그렇지만 아직 부족하다. 아동들이 출입할 수 없는 ‘노키즈존(NO Kids Zone)’과 노동처럼 종일 공부하는 ‘학원(Hagwon)’은 한국만의 고유명사로 외국 언론에 오르내린다. 아동을 보호나 교육의 대상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로 인정하는 ‘아동기본법’ 제정을 위해 큰 노력을 하고 있지만 지난 10년동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지역소멸과 인구절벽에 대응하기 위해 어린이에게 친화적인 지역사회를 만들겠다는 도시들이 많다. 아동이 사회적 주체로 존중받고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받을 수 있고 스스로의 문제에 의견을 제시하고 해결해 나가는 아동친화도시 춘천을 만드는 최전선에 지역아동센터들이 있다.
커먼즈필드에는 ‘춘천시지역아동센터협의회’가 입주해 활동하고 있다. 춘천시는 2009년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지역아동센터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했고 현재는 31개 센터에서 850여명의 아이들을 길러내고 있다. 민간이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는 공공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종사자들의 처우가 열악하고 제공하는 서비스가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춘천시지역아동센터협의회는 개별 센터들의 특색있는 활동을 지원하고 후원을 연계한다. 관내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75명 ‘쌤’들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육과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개발한다. 지역사회와 함께 공공성을 높이는 아동 정책을 제안하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다.
■ 박정환 필진 소개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전) 행정안전부 정부혁신추진협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