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선의 예감] 웰다잉, 존엄한 죽음을 누릴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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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선의 예감] 웰다잉, 존엄한 죽음을 누릴 권리

    • 입력 2023.03.08 00:00
    • 수정 2023.03.08 11:23
    • 기자명 엠에스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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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실종, 징조가 불길했다. 결국 부고(訃告)였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의 면면에서 공무원으로 살아온 망자의 생이 얼마나 진실했는지를 가늠했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세간에 알려진 그의 죽음 선택 정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남은 것은 그를 죽음으로 이끈 판단의 해석, 그에 따른 평판이다. 

    또다시 머리가 복잡해진다. 허허로운 심정이 발길을 고물상으로 향하게 했다. 필자가 고물상을 찾는 이유는 단순하다. 버려진 책(冊)들의 집하장이라서다. 유기견 보호소보다 더한 막장, 이른바 ‘책들의 사형장’이다. 여기서 출하되는 것은 폐지로 취급될 뿐이다. 아직은 가치를 연명해야 할, 쓸만한 녀석들은 ‘되살려 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그날 폐지더미에서 집어든 것은 필연으로 해석해야 했다. 흠결 없는, 새것이나 다름없는 문고판 크기의 작은 책이었다. 허공을 향해 날갯짓하는 비둘기가 사각형 관문을 통과하는 이미지, 그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표제는 「어둠이 오기 전에」, 그 앞에 붙여진 ‘죽음 앞에서 더 눈부셨던 한 예술가 이야기’가 시선을 잡아챘다. 저자이자 주인공은 아일랜드인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사이먼 피츠모리스(1973~2017년). 그는 병원·의사에게서 루게릭병 진단과 함께 4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시곗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죽음이 다가옴을 감지한다. 그의 삶의 언저리에는 절망과 두려움, 상실감과 슬픔이 점점 더 짙어진다. 대개의 인간들에게는 그렇다. 가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는 동공의 상태를 추적하는 기능이 내재 된 아이게이즈(Eyegaze) 컴퓨터를 이용해 생의 의미를 적었다. 

    죽음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죽음은 우리 안에 있지 않다. 우리는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의 끝 죽음은 공포를 넘어서는 것이다. 죽음은 이치를 따르지 않으며, 우리는 죽음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보편적인 질문을 던진다. - “죽음이 두려운가?” p.198

    삶에 대한 사랑과 의지다. 자신에게 드리워진 두려움을 거둬내며 마주하는 순간마다 감지하는 기쁨과 행복감에 감사해한다..

    그럼에도 질문하게 되는 것은 ‘죽음’이다. 하지만 이는 공자님도 난감해 한 우문이다. 자로가 스승인 공자에게 죽음에 관해 물었다. 골몰하던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미지생언지사(未知生焉知死)이니라. ‘이생의 일도 모르는데 어떻게 저승 일(죽음)을 알겠느냐?’는 말이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무수한 현자들의 고견과 명언이 전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죽음’은 영원한 화두다. 영생을 운운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시인 토머스 그레이의 말처럼 영광의 길도 결국은 무덤으로 이어질 뿐이다. 

    ‘인류사의 네 번째 사과’로 지목되는 애플(Apple)사를 이끈 스티브 잡스(1955~2011년)의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는 죽음을 전제로 한 고언이었다. 그 자신이 췌장암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그는 ‘죽음 앞에서 비로소 자신의 삶과 온전히 마주했다’라고 고백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제게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었습니다. (⋯)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무엇인가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혹자는 ‘죽기 위해 산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가볍지 않은 철학적 성찰이다. 그래서 웰빙(Well Being)을 딛고 웰다잉(Well Dying)이 과제로 부각됐다. 대세다. (재)춘천지혜의숲에서 ‘의미 있는 삶,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을 전제로 진행한 ‘웰다잉 전문가 과정’에 수강생이 몰렸던 게 입증한다. 한림대 철학과 교수인 오진탁 한국생사학(生死學)협회장은 지난 2일 종강에서 ‘죽음의 질’을 강조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2010년 발표한 ‘죽음의 질 지수’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10점 만점 중에 3.7점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를 포함한 40개국 중 32위이고 보면 딱하기만 하다. 이른바 존엄사법,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조력 존엄사법’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자’라는 것이 취지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정부나 지자체 공히 웰다잉에 관심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이청준은 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한 소설의 표제를 ‘축제(문학과지성사 간)’라 했다. 그 이미지는 ‘활짝 핀 꽃’이다. 거역할 수 없는 숙명, 궁극은 호상(好喪)이다. 봄이 완연해졌고 보면 곧 ‘피안(彼岸)의 계절’이다. 불가에서는 춘분(3월 21일) 전후 7일간을 ‘봄의 피안’이라 하니 말이다. 아름다운 임종, 생의 마감에도 감동이 물씬한 품위가 깃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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