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이토록 맛난 음식과 역사의 행복한 만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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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의 뒤적뒤적] 이토록 맛난 음식과 역사의 행복한 만남이라니

    • 입력 2022.05.30 00:00
    • 수정 2022.05.30 11:41
    • 기자명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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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음식에 관한 이야기는 실패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소재 자체가 친숙한 덕이 큽니다. 요리법, 맛집, 관련 에피소드를 다룬 책들은 물론, 어쩌면 엽기적일 수도 있는 유튜브의 ‘먹방’들이 호응을 받는 것이 그런 현상을 보여줍니다. 하물며 중국 요리와 더불어 세계 미식문화의 양대 산맥이라는 프랑스 요리에 관한 책이라면 일단 호기심을 자아낼 것이 분명합니다.

    『한 입 크기의 프랑스 역사』(스테판 에노·제니 미첼 지음, 북스힐)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한데 음식문화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제목에서 짐작이 가듯 음식에 프랑스 역사를 녹여냈거든요. 프랑스인의 조상이라 할 골족의 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 진주까지의 프랑스사를 51편의 음식 이야기로 정리했으니 알차고도 흥미롭습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때 제분기에 손가락이 끼면 손을 자른다. 그리고 도망치다 걸리면 다리를 자른다. 이 두 경우 모두 내게 일어났다. 이것이 당신들이 유럽에서 설탕을 먹는 대가이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가 전하는 손 하나와 다리 하나를 잃은 사탕수수 농장의 노예 이야기입니다. ‘설탕의 씁쓸한 뿌리’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프랑스는 17세기에야 카리브해 일대에 식민지를 건설한 설탕 무역의 후발주자였다는 것, 프랑스 남부의 항구 낭트가 설탕과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는 사실, 낭트 특산 케이크인 ‘가토 낭테’에 들어가는 럼주가 팍팍한 식민지 생활을 달래기 위해 사탕수수 정제 과정에서 생긴 당밀시럽을 증류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죠.

    프랑스 혁명기를 다룬 ‘평등한 빵’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당시 혁명파를 두려워한 루이 16세 일행은 1791년 6월 파리 탈출을 꾀했으나 실패합니다. 그런데 여기 정사에선 만날 수 없는 일화가 나오네요. 식탐이 많은 루이 16세가 생트므누의 유명한 돼지족발을 먹으러 들르는 바람에 탈출 계획에 차질이 빚어져 국왕 일가가 도로 잡혔다나요. 그 후 루이 16세는 처형되었고 이를 계기로 프랑스 혁명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으니 어쩌면 돼지족발이 세계사의 흐름을 바꿨다면 지나친 이야기일까요.

    밀 4분의 3, 호밀 4분의 1로 만든 ‘평등 빵’은 어떻고요. 혁명 전에는 부자와 귀족들은 고운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고 노동자 등 가난한 이들은 겨로 만든 빵을 먹었답니다. 그러나 혁명 이후 영국의 금수 조치로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지자 혁명 정부가 때맞춰 ‘평등한 빵’을 만들도록 하고 다른 빵을 만들면 징역형을 부여했다죠. 하지만 사회적 평등이란 귀족들이 먹는 하얀 빵을 다 같이 먹는 것으로 생각했던 민중은 큰 실망을 했답니다.

    프랑스는 미식으로 인류의 입맛을 높였을 뿐 아니라 인류의 식문화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통조림의 발명과 그 영향을 다룬 ‘계절을 없앤 사나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전성기 나폴레옹은 50만명이 넘는 군인을 거느렸는데 이들은 식량을 자체 조달해야 했기에 애를 먹었습니다. 이에 총재 정부는 1795년 막대한 상금을 걸고 식품 보존 방법을 개발하려 했습니다. 한동안 성과가 없었는데 파리에서 제과점을 하던 니콜라 아페르가 음식을 병에 넣고 밀봉한 후 중탕하여 살균하는 방법을 개발해서 1802년 공장을 차렸습니다. 이 방식의 병조림이 효과가 있음이 입증된 뒤 아페르는 1810년 보존법 특허를 내는 대신 설명서를 내는 조건으로 정부에서 상금을 받아 챙기기로 했다죠.

    병조림의 발명은, 아페르 본인은 물론 정부도 예상 못 한 인류사의 혁명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부분 요리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철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한데 거리와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식재료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세계 경제의 양상이 달라지고 결과적으로 인류의 식생활이 혁신적으로 바뀌었거든요.

    이 맛깔스러운 책이 쓰인 데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랑스 치즈 장수가 런던에서 만난 미국 여성과 사랑에 빠져 프랑스에서 결혼합니다. 그 프랑스인 남편이 아내에게 치즈 등 프랑스 음식을 설명해주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답니다.

    그러니 이 책은 지식으로 머리를 채워주면서 식탁에선 구미를 돋우는 멋진 ‘사랑의 결실’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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