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연예쉼터] 영화 ‘미나리’, 세계인의 공감을 얻게 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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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의 연예쉼터] 영화 ‘미나리’, 세계인의 공감을 얻게 한 비결

    • 입력 2021.05.20 00:00
    • 수정 2021.05.22 06:21
    • 기자명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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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영화 ‘미나리’는 윤여정이 지난 4월 25일(현지시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이후 세계적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사회계층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에 이어 올해는 ‘미나리’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

    신한류시대, 콘텐츠 산업이 급변하면서 나타나는 두 가지 현상은 글로벌화와 디지털화다. 글로벌 시대에는 지역성과 보편성을 아울러 갖춘 콘텐츠들이 크게 부각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미나리’는 어떻게 아카데미를 비롯한 세계인의 공감을 얻게됐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 아칸소주로 이주한 한국 가족의 정착해가는 과정을 다룬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내적인 부분 이전에 환경적 요인도 서양인의 주목을 받기에 좋았다. 첫째는 코로나19라는 환경으로 인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주류 상업영화들이 헐리웃 등 세계적으로도 별로 제작되지 못했다. 제작이 된다 해도 극장에 걸릴 수가 없어 넷플릭스 등 OTT로 편성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저예산 영화이면서 작품성과 완성도를 갖춘 작품이 주목받기에 좋았다. 제작비 200만 달러(22억원) 정도의 ‘미나리’는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미국내 인종주의에 대한 반대정서가 그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하게 형성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인종주의에 대한 반작용은 더욱더 다문화와 인권, 젠더 이슈를 부각시키기에 좋았다.
     
    미국에서 타자인 한인의 미주 적응기를 다룬 ‘미나리’로 이런 분위기의 수혜를 조금은 봤다고 할 수 있다. 이건 환경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말이다. 작품이 좋지 않았다면 환경의 운도 더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나리’에는 미국 아칸소의 외딴 곳으로 이주해 농장을 꾸미려는 의지가 강한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과 ‘바퀴 달린 집’이라고 불평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아내 모니카(한예리), 의젓한 큰 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이 등장한다. 여기에 어린 손자를 돌보기 위해 함께 살게 된 외할머니 순자(윤여정)는 ‘미나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로, 순자를 유머러스하며 쿨하게 연기했다.

     

    이렇게 다섯 식구가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하고 갈등하며, 결국 가족의 연대감을 이뤄가는 방식은 세계인의 공감을 얻을만하다. 이들의 삶과 정착기는 서양과는 다른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정서에 기반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서양인들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내용이다.

    이 가족은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미나리는 어디에 있어도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건강하게 해줘”라는 순자의 대사처럼 이 가족도 결국 낯선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만다.

    마지막 장면에서 제이콥이 아들 데이빗과 함께 순자 할머니가 뿌린 미나리가 확 살아난 것을 보며 “할머니가 자리를 참 잘 고르셨다”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주제 문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정덕현 평론가는 ‘미나리’는 여성서사로도 읽힐 수 있다고 말한다. 제이콥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남성서사와 순자가 보여주는 여성서사의 대비를 통해 삶의 지혜를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제이콥은 불모지를 개척하려한다. 프론티어다. 물이 안나오면 끝까지 파내려간다. 그렇게 해서 농장을 일궈 큰 돈을 벌려고 한다. 전형적인 아버지 세대의 방식이다. 그런 제이콥은 가부장적이면서 자본주의적이다.

     

    반면, 순자는 물을 파는 게 아니라 물이 있는 곳으로 가 미나리를 심는다. 또한 돈이 아니라 사람을 우선시한다.

    LA에서 병아리감별사로 10년간 일했던 제이콥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수컷이 바로 분쇄기로 보내지는 걸 두고 어린 아들 데이빗에게 “우리는 꼭 쓸모가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순자는 어릴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마음껏 뛰어 놀지도 못하고 계속 병원에 다녀야 하는 데이빗에게 “프리티 보이(Pretty boy)”라고 말하자, 데이빗이 큰 소리로 정색을 하면서 “I‘m not pretty, I’m good looking!”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로부터 가부장적인 교육을 받은 티가 난다. 하지만 순자는 점점 건강을 되찾아가는 손자 데이빗에게 “스트롱 보이(Strong boy)”라고 부른다.

    순자는 미국의 딸에게 오면서 고춧가루와 참기름, 멸치를 싸오고 손자와 화투도 치고 욕도 하는 할머니다. 전형성을 벗어난 할머니 캐릭터지만 공감할만한 요소는 충분히 있다.

    하지만 순자는 “미나리는 원더풀이란다”라고 말한다. 순자는 미나리요 원더풀이며 지혜이자 대안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이것이 전지구적 위기 상황을 맞이한 세계인들이 ‘미나리’에 공감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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