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예술인들이 모여 장기간 여는 A 전시회는 지난 50년간 매 춘천의 대표 전시회 역할을 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전시 일정이 오락가락해졌다. 주로 전시회를 열었던 10월에 지역 최대 전시 공간인 춘천문화예술회관 대관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급히 원주에서 전시를 열었다. 성수기인 봄, 가을 대관이 어려워 여름이나 겨울에 전시를 열면 대관료를 훌쩍 뛰어넘는 냉난방비 부담에 시달린다. 빠듯한 재정 상황에 사업비와 운영비가 부족하기 일쑤다.
지역 예술인들 사이에서 춘천문화재단이 춘천시의 주요 전시 기회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불만이 높다.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춘천문화예술회관 공간 대관을 자체 기획전 등으로 선점해 여타 다른 단체가 대관 신청을 할 수 없어서다. 일부 단체들은 재단의 이 같은 운영 방식이 ‘횡포’에 가깝다고 토로한다. 전시장을 찾지 못한 예술단체는 춘천을 떠나 원주나 인제 등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옮긴다. 문화도시 조성 사업 마지막 해를 달려가는 춘천이 정작 지역 예술인에게 소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규모 전시장 유일한데⋯기획전 성수기 집중
춘천문화예술회관은 춘천 효자동에 위치한 문화시설로 전시장과 공연장 등으로 나뉘어 있다. 문화예술회관 전시장은 지역 최대 규모(756㎡)로 미술, 서예, 사진, 조각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이 전시되는 사실상 춘천 시내 유일한 대형 전시장이다. 최대 동시 관람 인원이 200명에 달해 춘천은 물론 도 단위의 대규모 전시가 열리기도 한다. 지역 내 대규모 전시장이 부족한 만큼 매년 예술단체와 예술인 간 대관 경쟁이 치열하다. 대관 신청단체 간 경합이 있으면 심의위원회가 심의하는데 먼저 신청해 조금이라도 우선순위를 점하기 위한 ‘대관 오픈런’까지 펼쳐진다.
지난달 18~29일은 2025년 춘천문화예술회관 정기 대관 신청 기간이었다. 2011년부터 춘천문화재단이 춘천시 위탁을 받아 문화예술회관 관리와 대관 업무 등을 맡는다. 하지만 과거 문화예술 단체들의 대관 신청이 가능했던 날짜 상당수가 대관 신청이 불가능했다. 대관 불가한 일정은 명절 연휴를 제외하고 모두 4건. 이중 전시장 공사를 제외하면 3건이 재단 기획전 일정으로 미리 고정돼 있었다. 한 미술단체는 접수가 시작되는 날 오전 일찍 대관을 신청하기 위해 꼬박 밤을 새웠다가 희망하는 대관일이 모두 신청이 불가능한 상황을 겪었다.
문화재단이 공개한 대관 일정을 보면 5월과 8월, 9월은 대부분의 일자가 대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6월, 10월에도 일주일가량씩 대관이 불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단은 내부 대관 일정을 공고하며 춘천시 문화시설 설치 및 운영조례 9조~12조와 춘천문화재단 문화시설 대관 규정에 따라 국경일 행사, 보수 점검, 재단·예술단 공연, 행사 기간을 제외한 잔여 일에 온라인 접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단 측은 9월과 10월에는 재단이 주최하는 전시가 예정됐고 4~6월과 8월에는 기획전 개최 예정으로 기간만 정해졌을 뿐 구체적인 전시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올해 특히 예술인들의 불만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재단 기획전이 문화예술계 극성수기인 봄과 가을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내년 첫 재단 기획전으로 열릴 전시는 극성수기인 4월 29일부터 6월 4일까지 석 달에 걸쳐 진행된다. 과거에는 기획전 일정이 일주일 남짓으로 짧은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한 달 단위로 길게 잡혀있었다. 미술단체 관계자는 “지역 단체들은 일주일 이상 전시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데 기획전을 한 달씩이나 해야 하나”라며 “10여 년간 대관 신청을 해왔는데 올해는 최악으로, 기관의 횡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예술인들은 실질적으로 1~4월, 12월 말도 전시가 불가능해 전시가 가능한 5~11월 중 대다수를 재단이 선점했다고 토로한다. 대다수 예술인이나 단체는 강원문화재단이나 춘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 결정이 2월 전후에 나오는 만큼 연초에는 전시가 어렵다. 12월 말도 정산용 서류를 제출해야 해 이전에 전시가 마무리되어야 한다. 결국 실제로 사용 가능한 5~12월 총 32주에서 대관이 가능한 주는 14주에 불과했다.
▶설 자리 잃은 예술인 “재단 역할 의문”
재단은 “재단 자체 기획전에도 대부분 지역 작가가 참여하기 때문에 지역 예술인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은 옳지 않다”고 반박한다. 거기에 “가장 더워서 냉방비가 많이 들고 휴가도 많이 가는 한여름 등 안 좋은 시기를 재단이 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역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재단 기획전에 포함돼야만 대형 전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공평하지 않다는 불만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예계다. 서예계는 과거부터 회관 전시장을 적극 이용해 왔다. 전시뿐 아니라 현장 휘호와 심사가 필요해 모두 가능한 규모가 이외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관이 어려워지자 한 서예단체는 수년 전부터 신청을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눈길을 돌렸다. 서예단체 관계자는 “매년 전시를 열던 기간에 문화재단 기획전이 있어 이제는 접수창을 열어보지도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예술인과 단체들도 모두 불만을 갖고 있다”며 “춘천에서 열던 전시를 원주나 인제 등에서 연다”라고 말했다.
문화재단의 전시 공간 독점은 예술가들의 생업 유지에 피해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예술가들은 장기간 작업한 결과물을 단 한 번의 전시를 통해 내놓는 만큼 보다 많은 관람객과 작품세계를 공유하는 기회로 삼는다. 전업 예술가들은 작품을 팔아야 생계가 가능하므로 작품 판매나 홍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전시를 한 번 열기 위해서도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된다.

재단이 문화 활동이 위축되는 혹서기나 혹한기를 지역 예술인에게 떠넘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재단에 따르면 동절기 냉난방 사용료는 시간당 12만원 정도다. 이용자들은 적게는 2~5시간, 많게는 하루종일 냉난방기를 사용한다. 전시장 1일 사용료가 12만원으로 보통 지역 예술가는 지역 할인을 받아 6만원 가량 지출한다. 일주일을 대관한다고 가정하면 전시장 사용료는 24만원이지만 냉난방비는 2시간만 켜도 약 168만원으로 전시장 사용료의 4배를 내게 되는 셈이다.
춘천에서 적당한 전시장을 찾지 못해 다른 지역으로 이탈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춘천시민 입장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볼 기회가 사라진 셈이다. 한 예술인은 “문화재단이 문화예술인을 지원하라고 존재하는 것이지 자체 행사를 열라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재단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