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헌법불합치 5년 헛바퀴…"정부·국회 입법공백 핑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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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죄 헌법불합치 5년 헛바퀴…"정부·국회 입법공백 핑계만"

    '임신 중지 국제행동의 날' 여성단체 대표 인터뷰…"개인서 정부로 책임 옮겨야"
    "비범죄화했지만 개선노력 방기"…가이드라인·건보 적용·유산유도제 도입 촉구

    • 입력 2024.09.28 12:08
    • 수정 2024.09.28 12:09
    • 기자명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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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그래픽=연합뉴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그래픽=연합뉴스)

    "임신 중지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임신·출산·양육 같은 사회적 문제와 맞물려 일어납니다. 국가는 지금까지 개인을 처벌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을 뿐이죠."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27일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의 나영 대표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임신중지 책임 영역은 개인에서 정부로 옮겨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과거 임신중지를 한 임신부나 수술을 한 의사 모두 형법상 처벌을 받을 수 있었지만, 관련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져 낙태죄는 현재 처벌 규정이 없는 상태다.

    헌법불합치는 사실상 위헌 취지의 결정이지만 즉시 해당 법률을 무효화하면 입법 미비로 큰 혼란이 야기돼 한시적으로 존속시키는 조치다. 원칙적으로 법률의 위헌성을 확인하면서도 입법자에게 이를 개선하도록 맡기고 국가기관에는 위헌적 법 적용을 중단시키는 형태다.

    그러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지 5년 넘게 지난 지금도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는 모자보건법 제14조 '인공임신 중절 수술 허용 한계' 등의 조항은 유지되고 있다.

    나영 대표는 처벌 규정이 없는 현 상황을 낙태죄에 대한 '비범죄화'로 규정하면서도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나영 대표는 "세계 많은 나라가 임신 중지 방식·의료인의 처치 방법 등에 대한 임상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과 달리 한국 정부는 의료 현장에서 참고할 수 있을 만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복지부는 가이드라인 마련을 포함해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건강보험 적용·유산유도제 도입 등의 조처를 해야 했다"며 "할 수 있는 조처가 있음에도 '입법 공백' 핑계를 대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유랑 활동가도 "헌재 결정 이후 주무 부처인 복지부와 식약처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여성들은 방치됐다"며 "관련 체계 부재로 여성들은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 약물은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자보건법은 여성의 몸을 임신·출산을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며 "'여성은 임신·출산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상정을 없애려면 모자보건법에 대한 전부 개정이 필요하다"라고도 했다.

    임신 중지 논의에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대립하는 것에 대해 이들은 둘 사이의 대결 구도를 만드는 논리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나영 대표는 "생명권 vs 결정권 구도는 '낙태를 처벌할 것이냐, 허용할 것이냐' 논리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처벌한다고 생명권이 지켜지지 않는다. 오히려 '음지의 임신 중지'가 늘어날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태아의) 생명을 정말 귀하게 여기려면 성교육·피임약 접근성 강화, 성평등, 양육 지원 체계 보장 등이 이뤄져야 한다"며 "실질적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막아야 하는 것이지, 여성을 처벌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최근 경찰은 36주 태아를 임신중지한 경험을 유튜브에 올린 20대 유튜버와 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살인 혐의로 입건했다. 36주 태아는 자궁 밖으로 나와 독립생활이 가능할 정도라 일반적인 낙태와 다르게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나영 대표는 수사 의뢰를 한 복지부와 경찰에 대해 "헌재 헌법불합치 판결 이전 시기처럼 개인과 의료인에게 처벌로써 죄를 전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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