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리그에서 춘천으로⋯“건축가 시선으로 지역소멸 막아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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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비리그에서 춘천으로⋯“건축가 시선으로 지역소멸 막아볼래요”

    [춘천&피플] 신정엽 신디자인랩건축사무소 대표
    고려대, 미국 예일대 석사 후 서울서 운영하다 춘천에 문 열어
    아르케이프 등 갤러리 운영과 지역 학생 후원 등 행보 눈길

    • 입력 2024.06.29 00:05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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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춘천 출신 건축가가 지역 소멸에 맞서겠다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건축가이자 도시전문가로서 또 근현대사에서 혜택을 본 세대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춘천 서면에 아름다운 건물을 짓고, 그 건물만큼이나 아름다운 행보를 펼치고 있다. 신정엽 신디자인랩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건축 외의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나 봐요. 그런데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의 일들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19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신 소장의 나이는 올해로 39세다. 대도시로 전출한 지역 인재들이 노년이 되어서야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과 비교하면 꽤 이른 나이다. 더군다나 그는 고려대와 세계 최고 대학 중 하나인 미국 예일대 석사를 졸업한 인재다. 해외에서도 다양한 제안이 있었던 만큼 그의 귀향은 꽤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신정엽 신디자인랩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한승미 기자)
    신정엽 신디자인랩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한승미 기자)

    2013년 서울에서 건축사무소를 창업한 그는 곧 회사를 안정권에 올려놨다. 신 소장은 “업계를 망치지 않겠다는 원칙을 갖고 저가 수주를 지양했다”며 “입소문을 타면서 꼭 서울이 아니어도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주변을 돌아볼 기회가 생긴 그는 새로운 사옥을 고민하다 지역으로의 이전을 결정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그의 꿈과는 다른 결정이었다.

    새 사옥 후보지는 춘천과 경기 남양주 두 곳이었는데 고민 끝에 춘천을 선택했다. 남양주는 서울에 인접해 좋은 인력을 구하기 쉬웠지만 자연과의 접점이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반면 춘천은 인력이 부족한 점이 걸림돌이었는데 현재 전 직원이 타지역 출신일 정도로 잘 운영되고 있다. 최근 채용에도 부산, 전주 등 대도시 출신의 지원자가 잇따랐다. 지역의 인구 유입에도 실질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카페테리아 등으로 구성된 신디자인랩 건축사사무소에서는 전시회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사진=한승미 기자)
    카페테리아 등으로 구성된 신디자인랩 건축사사무소에서는 전시회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사진=한승미 기자)

    사옥은 5년에 걸쳐 완성됐다. 공간은 크게 사무소와 카페테리아로 나뉜다. 카페테리아에서는 '아르케이프 커피' 커피숍과 함께 갤러리가 운영되며 사무소에는 신디자인랩건축사사무소와 오디토리움(강당)이 있다. 공간 곳곳에서 각종 전시와 팝업 스토어가 열리고 지역 기관단체와 협업한 행사도 펼쳐진다. SNS상에서는 “성수동인 줄 알았다” “용산에 온 것 같다”는 후기와 함께 '빨간 벽돌 건물'로 유명하다.

    공간을 조성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안정감'이다. 신 소장은 “건물에 들어오는 분들의 표정이 보이는데 들어오면서 환한 표정을 짓는다”며 “공간을 잘 만들었다는 생각에 만족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회사 입장에서도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공간 운영이 가능해졌다. 타인과 공유했던 과거 사무실과 달리 마음대로 사용하는 등 다양한 행사가 가능해졌다.

    그는 사옥을 춘천으로 정한 까닭이 꼭 고향이라서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의 행보에서는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사옥 곳곳에서는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문화예술 행사가 진행된다. 갤러리에서는 전시가 진행되고 각 분야 전문가를 초빙한 강의도 열린다.

     

    신정엽 소장은 건축사 업무 외에도 지역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신정엽 소장은 건축사 업무 외에도 지역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사실 지역을 위한 고민은 춘천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시작됐다. 신 소장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쯤부터 '여행 장학금'을 만들어 지역 학생들을 지원했다. 지난해부터 강원특별자치도와 매칭 펀드로 진행하게 됐다. 신 소장은 “여행만큼 교육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장학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장학금의 독특한 점은 기존의 학생 지원 프로그램처럼 '성적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부를 잘해야만 장학금을 받거나 해외여행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행에서 어떤 비전을 갖고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오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가 이러한 활동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 소장은 “조부모와 부모님 세대가 독립운동과 민주화·산업화로 일군 근현대사에서 수혜를 받은 세대라 제 역할을 고민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고민한 지역의 당면 과제는 ‘지역 소멸’이었고 그는 건축과 도시 전문가로서 일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도시재생 전문가로도 활약한 그는 인구를 늘리는 것보다 지역 소멸을 지연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앞으로는 인구를 늘리는 것보다 현재 30만 명이 어떻게 머무르게 하느냐에 주목해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30만 명이 어떻게 행복하게 사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춘천이 수도권처럼 다양한 문화생활을 누리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와 강연 등의 활동을 펼치는 이유다.

     

    춘천 서면에 위치한 공간은 빨간 벽돌 건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춘천 서면에 위치한 공간은 빨간 벽돌 건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좋은 아파트에 살려면 뭐 하러 춘천에 살러 오겠어요?”

    그는 앞으로의 춘천이 외부에서 지역에 기대하는 점을 채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또 현재 춘천은 서울보다도 공원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15분이면 볼 수 있는 생활권 도시림들이 춘천에 조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소장은 “외지인이 옛 캠프페이지에 왔을 때 춘천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보다 공원이길 바랄 것 같다”며 “춘천에 계속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은 지역의 매력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교통이 불편한 점도 개선점으로 꼽았다. 그는 “교통이 편하면 다양한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만큼 여러 시설을 짓는 것보다 근본적인 시스템을 해결해야 한다”며 “교통과 공원이 잘 가꿔지면 수도권에서 춘천으로 많이 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춘천이 가진 휴식과 자연친화적 이미지, 편안함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지역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문화예술 사업 외에도 장기적으로 지역 청소년을 위한 활동도 고민하고 있다. 신 소장은 “건축 외의 일들은 무조건 마이너스인데 엄청나게 손해를 볼 정도는 아니다”라며 “도내 기업인들도 관심이 있다면 조금씩만 투자하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화예술 행사를 비롯해 공간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협업에 얼마든지 열려있다”며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한재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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