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센터장의 작은 도시] 커먼즈필드의 사람들 : 강원피스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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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급 센터장의 작은 도시] 커먼즈필드의 사람들 : 강원피스투어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 입력 2024.01.29 00:00
    • 기자명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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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초등학교 6학년 때였는지 중학교를 입학하고 나서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몇백명쯤 되는 학생들이 수십대의 버스를 나눠타고 한참을 달려가 도착한 곳은 땅굴이었다. 북한이 우리를 기습 공격하기 위해 비무장지대 밑으로 파내려 온 여러 지하 통로중 하나였다. 같이 갔던 어릴적 동창들에게 물었더니 누구는 철원의 땅굴이었다고 하고 누구는 파주의 땅굴이라고 우겨대면서 말싸움이 벌어진다. 감퇴하는 중년의 뇌세포 때문에 옥신각신 하던 끝에 화해에 이른 것은 엄중하고 비장한 사람들의 얼굴을 같이 기억해 냈을 때였다. 얼룩덜룩 위장하고 총을 멘 군인이 앞에 나와 이 땅굴로 얼마나 많은 북한군들이 얼마나 빨리 우리를 죽이러 올 수 있는지 설명하던 장면은 나도 기억이 또렷하다. 돌아와서 미술 과제로 제출하는 반공 포스터에 나는 탱크를 타고 진격하는 무서운 두더지를 그렸다.

    철원인지, 파주였는지 가물한 땅굴여행을 다녀오고 떠난 평창 여행의 목적지는 이승복 어린이 기념관이었고, 처음 김포로 떠난 여행은 청소년 해병대 캠프 체험이였다. 고성에 가서는 통일전망대와 김일성 별장을 들른 다음에 맑은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내가 경험했던 여행은 대부분 학교에서 단체로 나서는 안보관광이었다. 나는 평화를 위협하는 적화 무리에 맞설 힘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이제는 안보관광 대신 평화관광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2018년 남과 북의 정상이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이 걸려있는 판문점으로 여행을 다녀온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내가 그렸던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이제는 남침용 땅굴이나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 사람을 구경하는 안보관광이 아니라 사람들의 갈등과 욕심이 다다르지 않았던 비무장지대의 생태와 역사, 문화와 삶을 체험하는 평화관광의 시대이다. 같은 여행지라도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과 가치가 다르게 구성된다.

    강원특별자치도의 철원군, 화천군, 인제군, 고성군이 국경으로서 비무장지대를 접하고 있다. ‘협동조합 강원피스투어’는 접경지역인 강원도의 특수성을 평화관광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이기찬 대표는 인권과 평화를 위한 NGO(비정부기구)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2020년 강원피스투어를 설립했다.

    사람의 출입이 오랫동안 통제되었던 양구의 비무장지대 산길을 걸으며 생태와 평화를 연결하는 ‘양구, DMZ 평화여행’ 코스를 개발했다. 전쟁을 거치면서 북한이었던 지역이 이제는 남한에 속하게 된 동해안 접경지역을 둘러보고 역사와 평화를 같이 배우는 ‘고성, 동해안 접경지역 여행’도 상품으로 내놓고 있다.

    강원피스투어는 평화가 사람들을 지역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고 믿는다. 새로운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찾는 사람들을 지역으로 초대하는 ‘영월, 관계인구를 위한 여행’도 기획하고 운영한다. 평화와 지역재생은 여행 비즈니스의 방향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의 노력은 한국관광공사의 지역관광 혁신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평화는 누군가의 간섭이나 갈등이 없고, 해결해야 할 고민이나 문제도 없이 평온한 상태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고민 끝에 정의하니 너무 이상적인 개념이다. 간섭도 갈등도 고민도 문제도 없는 상태라는 것이 우리에게 가능할 것일까?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거나 운이 좋아도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순간에 불과할 것이다.

    어쩌면 평화는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일지 모른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을 때 다른 일방을 몰아내는 전쟁이 시작된다. 어느 한쪽이 주도하려 할 때 우월과 열등이 시작된다. 강원피스투어는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태도를 평화관광을 통해 만들고 있다. 이제는 나도 태도를 바꾸려고 한다. 평화는 힘에 기반하기보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대화에서 시작한다.

     

    ■ 박정환 필진 소개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전) 행정안전부 정부혁신추진협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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