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간식 ‘오가는정과’의 자존심⋯‘당일 생산, 당일 판매”만 고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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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간식 ‘오가는정과’의 자존심⋯‘당일 생산, 당일 판매”만 고집하는 이유

    [동네 사장님] 3. K-디저트, 오가는정과
    3일간 조청에 당침, 일주일 건조 과정
    쫄깃하고 기관지에 좋은 '도라지정과'
    정성스런 간식, 고급 포장 답례품 인기

    • 입력 2023.12.16 00:04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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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S투데이는 지역 경제의 뿌리인 소상공인을 집중 조명합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우리 이웃의 가게를 발굴하고 ‘동네 사장님’이 가진 철학을 지면으로 전합니다. <편집자 주>

    비 오는 우중충한 날씨에도 화사한 외관의 가게가 육림고개를 찾은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춘천의 봄을 닮은 연보랏빛으로 존재감을 뽐내는 수제 전통 간식 전문점 ‘오가는정과’다. 한림성심대에서 조리학을 전공한 후, 한식과 저장발효, 약선요리에 관심을 갖고 전통 디저트의 현대화를 연구해 온 김은혜(34) 대표의 지향점이 온전히 묻어나는 공간이다.

    오가는정과의 주력 제품은 도라지정과와 견과류정과다. 정과(正果)는 각종 과일이나 식물의 뿌리를 꿀이나 조청, 설탕에 넣어 조린 한국 고유의 간식이다. 가공 과정에서 원재료의 시거나 쓰린 맛이 사라진 ‘말갛고 정갈한 과자’다.

    오가는정과는 주로 답례품을 구매하려는 손님들이 찾는다. 김은혜 대표는 생산 과정에서 손이 많이 가는, 흔치 않은 전통 디저트 메뉴와 고급스러운 포장으로 단골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김 대표가 만든 정과를 마주하면 가게 이름 그대로 ‘오가는 정’을 느낄 수 있다. 그와 정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은혜 오가는정과 대표는 대학에서 조리를 전공한 후 전통 간식에 관심을 두고 사업을 이어왔다. 최근 ‘할매니얼’ 트렌드가 유행하면서 정과도 주목받고 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김은혜 오가는정과 대표는 대학에서 조리를 전공한 후 전통 간식에 관심을 두고 사업을 이어왔다. 최근 ‘할매니얼’ 트렌드가 유행하면서 정과도 주목받고 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Q. 정과 제품은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고요.

    정과는 시간과 정성으로 만드는 음식이에요. 얼마나 귀하면 결혼할 때 폐백 음식으로 쓰이겠어요. 오가는정과를 찾은 손님들은, 선물 받는 분께 표현하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맡겨주신 거잖아요.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게 저의 일이고요.

    요즘은 연말 답례품 수요가 많은 성수기입니다. 정과가 습기에 취약해 여름철만 비수기이지, 명절이나 겨울철에는 주문량이 꾸준해요. 선물로 받은 정과를 맛보시고 포장에 있는 연락처로 직접 주문하시는 분들도 많죠.

    Q. 사실 ‘정과’가 젊은 세대에겐 익숙한 음식은 아니에요.

    첫째 아이가 기관지염을 심하게 앓았어요. 친정이 있는 홍천에서 기관지에 좋다는 도라지를 받아다가 아이가 잘 먹을 수 있도록 정과를 만들어봤어요. 그게 정과 사업의 시작이었습니다.

    전 어릴 때부터 특히 한식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 때 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오면서 음식으로 몸을 회복하는 ‘약선음식’을 알게 됐고요. 그러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음식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10여 년 전엔 KBS ‘강원도가 좋다’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일했는데요. 이때 강원지역 곳곳의 식재료를 경험하고 어르신들과 전통 음식을 만들어보면서, 정성을 들인 음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도 배웠어요. 이런 경험이 새로운 도전을 하게 했습니다.

     

    3일간의 당침과 일주일의 건조 기간을 거쳐 완성되는 도라지정과. (사진=오가는정과 제공)
    3일간의 당침과 일주일의 건조 기간을 거쳐 완성되는 도라지정과. (사진=오가는정과 제공)

     

    Q. 카페를 겸하는 형태가 아니라 ‘정과’만 전문으로 하신다고요.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게도 꾸려야 하니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어요. 도라지정과를 만들기 위해선 3일 내내 조청에 당침(糖浸) 작업을 해야 해요. 세심한 불 조절이 필요한 사골국 끓이기와 비슷하죠. 그 후 다시 일주일을 말려야 말랭이 같은 쫄깃한 식감을 얻을 수 있어요. 여기에 국내산 콩고물을 버무려 완성하죠. 혼자 제품을 생산하면서 카페 음료까지 다루려면 기본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선보이고 싶어요. 누군가에겐 답답하게 보일지라도, 모든 공정을 수제로 합니다. 방부제나 인공색소, 화학 첨가물을 쓰지 않고 당일 생산, 당일 판매 원칙을 세운 건 ‘음식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고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오가는정과의 제품은 도라지꽃을 상징하는 연보랏빛 포장을 입고 손님을 만난다. (사진=오가는정과 제공) 
    오가는정과의 제품은 도라지꽃을 상징하는 연보랏빛 포장을 입고 손님을 만난다. (사진=오가는정과 제공) 

     

    Q. 포장이 고급스러워서 눈길이 가네요.

    전통 먹거리를 주력으로 하고 있지만, 그 정성을 담아내는 포장만큼은 현대적으로 변용을 주고 싶었습니다. 요즘 ‘할매니얼’이 트렌드이기도 하잖아요.(할매니얼은 할머니와 밀레니얼의 합성어로, 할머니들이 선호하는 음식이나 패션을 재연출해 즐기는 문화를 말한다.)

    2014년 서울에서 처음 이 사업을 시작했을 땐 투박한 크래프트지로 포장했는데요. 2020년 12월 춘천에 새롭게 가게를 열면서 브랜딩 작업을 다시 했습니다. 도라지꽃을 연상시키는 연보라색을 핵심 색상으로 두고, 로고의 글자를 길게 늘이는 형태로 만들어 상자가 리본으로 묶인 것처럼 보이게 했어요. 여기에 명품 가방 포장에 쓰이는 더스트백(dust bag)을 한 겹 덧대니 받는 분들이 고급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기뻐하시더라고요.

    오랫동안 특급 호텔에서 일했던 셰프 출신 남편의 미적 감각이 발휘된 결과물이에요. 지난해엔 남편이 6개월 동안 육아휴직 하면서 제 사업을 도와주기도 했으니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죠.

     

    로고의 글자를 길게 늘여 리본 모양을 형상화한 오가는정과의 로고. (사진=오가는정과 제공)
    로고의 글자를 길게 늘여 리본 모양을 형상화한 오가는정과의 로고. (사진=오가는정과 제공)

     

    Q. 공간 곳곳도 화사한 연보랏빛으로 꾸며져 있네요.

    사실 가게 공간에 손님이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아요. 온라인 주문이 들어오면 택배 배송으로 나가는 물량이 절반이거든요. 또 100% 예약제이니, 미리 주문해 둔 상품을 포장하러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니까요.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쾌적하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해 드리고 싶었어요.

    저는 이곳을 ‘디저트 스튜디오’라고 부릅니다. 도라지 모양의 인형과 조명, 보라색 소품을 두고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사진도 찍고 가실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육림고개의 이웃 조명 공방에서 네온사인을 의뢰해 가게 안에 전시해 두기도 했고요.

    지역의 단골들과 좋은 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우동착’을 통해 주문하시는 분들에겐 10%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있어요. 오가는정과가 춘천의 ‘K-디저트 대표’로 자리매김할 때까지 끊임없이 연구해 나가겠습니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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