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감언이설] 이성규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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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의 감언이설] 이성규를 아십니까

    • 입력 2023.12.13 15:06
    • 기자명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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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한 해를 돌아보며 개인적으로 2023년에 가장 인상적인 일을 꼽는다면, 당연히 춘천영화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망설임도 있었지만 뛰어들었고,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무사히 마쳤다. 올해 10회라곤 하지만, 사실 춘천영화제를 알고 있는 춘천 시민은 많지 않았다. 가장 큰 부담이었다. 과연 ‘10년’이라는 세월에 걸맞는, 시민들과 함께 하는 대중적인 영화제를 치를 수 있을까? 다행히 약 5000명 정도의 적잖은 관객이 영화제를 찾았고, 상영관에서 공연장에서 야외 상영장에서 각자의 축제를 즐겼다. 내년엔 좀 더 ‘춘천 친화적’ 영화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과 희망도 생겼다.

    성공적인 영화제를 치르는 것만큼이나 중요했던 건, 이 영화제가 춘천의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춘천‘영화제’이지만 ‘춘천’영화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뿌듯한 건, ‘이성규 영화상’을 만든 것이다. 춘천 시민에게도 ‘이성규’는 낯선 이름이다. 춘천과 이렇다 할 연고가 없는 나에겐, 더욱 그랬다. 영화제 일을 맡기 전에 난 그를 몰랐다. 그러다 영화제의 시작을 더듬게 되었고, 이성규라는 이름을 만나게 되었으며, 춘천영화제는 5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 명의 영화감독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춘천에서 태어났고 한림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이성규 감독은 1990년부터 다큐멘터리 제작과 연출자로 활동했다. 독립 제작 PD로서 그는 전세계의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그는 인도나 몽골 같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들의 친구가 됐다. 그의 첫 극장용 다큐멘터리인 ‘오래된 인력거’(2011)는 그 결과이다. 인도 캘커타에서 인력거를 끄는 샬림이라는 남자. 만약 그가 휴먼 다큐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면, 이 영화엔 한 도시 빈민에 대한 연민과 미담이 담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규 감독의 다큐멘터리 철학은 “연출자가 고통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체험하고 그 고통을 느끼며 소통하는 것”이었다. 이런 마음은 소박하지만 지니기 힘든 희귀한 심성이었다. 

     

    고 이성규 감독. (사진=춘천영화제)

     

    그의 실천은 작품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함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동료들의 현실로 확산되었고, 한국독립PD협회 초대 회장으로서 힘겨운 현장에서 카메라를 돌리는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운명은 많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첫 극영화인 ‘시바, 인생을 던져’(2013)의 편집 작업을 하던 중 간암 판정을 받은 그는 투병 중에 분투하며 영화를 완성했고, 2013년 12월 11일엔 춘천에서 특별 상영회가 열렸다. 이때 휠체어에 의지해 무대에 오른 그는 관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유언처럼 “한국의 독립예술영화를 사랑해주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이틀 후 세상을 떠났다.

    2023년 12월 13일은 고 이성규 감독(1964~2013)의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의 뜻을 기리는 지인들이 2014년 12월에 ‘한 사람으로 시작된 춘천다큐영화제’라는 이름으로 조촐한 상영전을 연 것이 씨앗이 되어 지금의 ‘춘천영화제’가 되었고, 올해 10회를 맞은 영화제와 함께 그의 10주기가 찾아왔다. 내년 영화제를 준비하며, 다시 한 번 그의 당부를 초심으로 일깨운다. 그리고 소개하려 한다. 춘천에 이성규라는, 헌신적이고 진심이었으며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예술인이 있었다는 걸.

     

    ■김형석 필진 소개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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