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해외출장 심사⋯사후 검증도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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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술한 해외출장 심사⋯사후 검증도 부실

    [공무원 해외출장 백태]
    (하) 공무원끼리 심사, 선발⋯객관성·투명성 의문
    춘천시 올해 해외출장 예산 9.1억⋯예년比 2배↑
    전문가 “출장심사 기준 강화, 정부 차원 관리 필요”
    안산시 '심사위원 절반 외부인 위촉' 조례 개정

    • 입력 2022.10.17 00:02
    • 수정 2022.11.11 15:22
    • 기자명 김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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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지영 기자)
    (그래픽=박지영 기자)

     

    공무원들의 외유성 해외출장 논란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정부가 선진국의 정책이나 행정 사례를 국내에 벤치마킹하고 국제적 감각을 갖추기 위한 훈련의 취지로 운영하고 있지만, 관례적으로 해외 여행을 다녀오고 사후 검증도 부실한 행태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공무원들이 직접 이런 방식의 연수를 노골적으로 바라고, 여행사에 요구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 최근 전라북도가 여행사를 입찰하기 위해 조달청 나라장터(국가종합 전자조달 시스템)에 올린 국외연수 입찰공고의 과업지시서에는 기관 섭외부터 거의 모든 과정을 여행사에 일임하고 있다.

    과업지시서를 보면 전북도는 싱가포르로 3박 5일간 연수를 계획하며 여행사 계약 조건으로 ▲숙박은 4~5성급 이상으로 한다 ▲국외항공이나 저가항공 제외 ▲식사는 호텔급, 특식 3회 제공 ▲연수기간 중 차량은 최근 3년 이내 출고된 차량 등 최상급 대우를 요구하는 내용을 명시했다.

    또 “계약대상자(여행사)는 연수에 필요한 예약, 방문지(기관) 수배 확보 등을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고 적었다. 해당 지자체가 짜놓은 일정표에는 3박 5일간의 일정 중 기관 방문은 단 2차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관광일정이다.

    전라북도가 국외연수 여행사 입찰을 위해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린 과업지시서. 여행사에 연수결과보고 제출, 항공이나 숙소 조건을 명시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전라북도가 국외연수 여행사 입찰을 위해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린 과업지시서. 여행사에 연수결과보고 제출, 항공이나 숙소 조건을 명시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 출장심사 관리 소홀⋯외유성 논란 자초

    이런 행태가 되풀이되는 배경은 느슨한 출장 심사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공무원들은 국외 출장 시 적격성 검증에 대한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한다. ‘춘천시 공무국외출장 심사 및 허가기준’에 따르면 ▲이전에 동일 목적으로 방문한 사례가 없는지 ▲방문 국가 및 기관의 섭외 완료 여부 ▲1일 최소 1개 기관 이상 방문 계획 ▲여러 국가 방문시 불필요한 이동은 없는지 여부 등을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출장자의 적합성과 출장시기의 적시성도 점검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출장결과보고서를 보면 이를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문이 드는 사례가 적지 않게 나온다. 실제 본보가 분석한 춘천시 공무원 출장보고서 중 출장의 타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사전검토 체크리스트’가 허술하게 작성된 보고서가 다수 발견됐다.

    사전검토 체크리스트는 ‘정책 현안에 대해 현황과 실태를 검토하였습니까?’, ‘정책의 영향 및 효과성을 분석하였습니까?’ 등 해외연수 목적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보고서 100여건에서 리스트를 첨부한 보고서는 총 11건 불과했는데, 이 중 6건이 기타 항목을 빼고는 모두 ‘해당사항 없음’으로 무성의하게 작성했다.

    2019년 4월 춘천시 공무원이 뉴질랜드로 6박 8일간 출장을 다녀온 뒤 제출한 출장결과 보고서에 첨부한 사전검토 체크리스트. 사전검토 사항 12개 항목 중 기타 항목만 제외하고는 모두 해당없음으로 표시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2019년 4월 춘천시 공무원이 뉴질랜드로 6박 8일간 출장을 다녀온 뒤 제출한 출장결과 보고서에 첨부한 사전검토 체크리스트. 사전검토 사항 12개 항목 중 기타 항목만 제외하고는 모두 해당없음으로 표시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무원들의 해외출장 심사위원 구성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공무원 국외출장이 적절한지 판단하는 공무국외여행심사위원회는 부시장, 기획행정국장 등 7명 모두 공무원으로만 구성됐다. 시민단체나 대학교수 등 외부인사 없이 내부 인원으로만 꾸려지니 이처럼 허술한 계획서에 부실한 보고서가 올라와도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공무원 외유성 출장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자 일부 지자체에서는 자발적으로 공무국외 출장 규정을 강화하고 있다. 효율적이고 투명한 국외 출장이 이뤄지도록 심사위 구성 시 의무적으로 외부인원을 위촉하거나, 심사 전에 외유성 출장을 막기 위한 사전 평가도 이뤄진다.

    대전시의 경우 지난해부터 공무국외출장 심의 전 사전 심사를 거치고 있다. 출장심사위 보고에 앞서 실무선에서 먼저 서류를 검토해 출장지 중복이나 불필요한 출장자는 제외시켜 외유성 출장을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이영란 대전시 운영지원과 주무관은 “출장 심사 강화 후 출장자 중 팀장이 굳이 나갈 필요가 없어 실무자로 교체한 경우도 있고, 다른 부서와 출장지가 중복돼 배제하기도 했다”며 “사전 심사가 워낙 까다롭게 이뤄지다보니 쓸데없는 출장은 지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또 안산시는 2020년 5월부터 공무국외출장 심사위원 절반을 외부인으로 위촉하기로 조례를 개정했다. 외유성 여행을 배제해 예산 낭비를 막고, 투명한 공무국외 출장을 운영하기 위한 차원에서다.

    권오덕 춘천시민연대 공동대표는 “공무원 내부 인원으로만 출장 심사를 하면 절차상 투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객관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춘천시도 민간 외부위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선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의 지도·감독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자체마다 제각각인 출장 규정을 연수자 선정부터 업무연관성, 연수 성과 측정, 심사위원 구성 시 의무조항까지 촘촘하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효과적인 규제가 이뤄지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정부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 국외 출장은 지자체의 가용 재원 내에서 최대한 자제해야 하지만, 단체장이 관리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없지 않다”며 “지자체보다는 행정안전부 등 정부 차원에서 출장계획과 사후 검토까지 꼼꼼히 살필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해줄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 코로나19 풀리자 해외출장 예산↑⋯1년짜리 장기연수도 신설

    춘천시는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자 올해 4월부터 공무원 국외출장을 재개했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지 2년여 만이다. 시 공무원들은 재개 직후인 4월부터 5월까지 2개월간 프랑스, 네덜란드, 태국, 독일, 캄보디아 등 해외 6곳을 다녀왔다.

    올해부터는 그동안 없었던 1년짜리 장기해외연수도 생겼다. 이미 지난 8월 미국(6명)과 캐나다(1명)로 공무원 7명이 떠났다. 얼마전 도에서 보고서 표절 논란을 일으켰던 국외장기교육훈련과 같은 성격의 해외연수다.

    단기 해외 출장 예산도 지난해 1억원에서 올해 3억5000만원으로 2억5000만원 증가했다. 해외 출장이 중단돼 줄었던 예산 규모가 다시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반영된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과 2019년 각각 4억원, 5억원과 비교하면 줄어든 금액이지만,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출장을 나갈 경우 해외 출장 예산은 올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현혜 춘천시청 자치행정과 주무관은 “올해 상반기까지 코로나가 심각해 단순 견학이라든지, 외유성이 될 공무 출장 같은 건 자제하고, 꼭 필요한 공무국외출장만 가도록 강화된 심사계획이 담긴 공문을 각 부서에 보냈다”면서도 “모범공무원 포상이나 자기주도 해외연수 제도는 없어진 게 아니라 코로나19 상황을 보고 재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새로 생긴 장기해외연수는 1인당 8000만원으로 총 5억6000만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단기로 떠나는 공무국외출장과는 별도 예산이다. 단기로 떠나는 공무국외출장과 장기 해외연수 비용까지 합치면 올해 총 해외연수 예산은 9억1000만원으로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도 4억~5억원 늘었다.

    하지만, 지역 사회에서는 코로나19 대응으로 지방 재정여건이 어려워진 마당에 최근 강원도 공무원의 해외연수 보고서 표절 논란까지 겹치다보니 단순시찰이나 견학 등 무분별한 출장은 엄격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최근 춘천시의회도 당초 예산에 편성됐던 시의원 21명의 국외연수 비용 1인당 350만원, 총 7350만원을 전액 반납하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지역 경기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해외연수는 적절치 않다는 의원들의 의견이 모아지면서다.

    앞서 강원도도 해외연수보고서 표절 논란 이후 국외 연수 개선 방향을 마련한 바 있다. 연수 희망자가 계획을 수립하면 전문가의 컨설팅과 평가를 거쳐야 하고, 결과 보고서 제출 시 표절 검사도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다. 성과가 미흡할 경우 월 체재비의 2배인 400만~600만원을 환수하거나 보고서를 재작성해야한다. 춘천시는 올해 처음 진행하는 장기해외연수와 관련해서는 도의 지침을 따르기로 했다.

    윤민섭 춘천시의원은 “그동안 외유성 해외출장에 대한 공무원들의 경각심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고, 하던대로 하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며 “앞으로는 꼭 필요한 해외연수는 가되, 목적이나 방향성을 신중하고 명확하게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권 기자·이종혁 인턴기자 ksk@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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