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 공무원 24명은 지난 2018년 11월 시민이 낸 세금으로 베트남 호치민과 달랏을 다녀왔다. ‘모범공무원 5기 해외견학(벤치마킹) 기회 제공’이 명분이었다. 하지만 5일간 일정의 대부분은 관광으로 채웠다. 첫째날은 달랏 야시장 관람, 달랏시청 방문, 달랏 꽃의 정원, 커피농장, 달랏 기차역, 자수박물관을 방문했다. 다음 날에도 바오다이 황제의 여름 별장, 죽림사원, 알파인코스터 및 다딴라 폭포, 크레이지 하우스, 랑비엔 지프차 트래킹으로 이어지는 코스. 셋째날 호치민으로 이동해서도 관광지 위주로 방문한 뒤 선상 디너 크루즈에서 저녁 식사를 즐겼다.
연수기간 동안 기관 교류는 달랏시청 방문 단 한 번뿐, 대부분 유명관광지에서 시간을 보냈다. 출장 결과보고서도 엉망이었다. 관광지를 소개하는 여행책자나 다름 없는 수준이다. 방문지 사진 옆에 관광정보를 설명하는가 하면, 알파인 코스터 방문 소감으로는 "수동 브레이크를 잡으며 내려가는데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며 출장 목적과 동떨어진 내용을 적기도 했다.
보고서의 핵심인 출장 결과는 전체 17쪽 중 달랑 4줄, 92자에 그쳤다. 이 중 한 줄은 “자기 발전의 기회 및 사기 진작으로 시정발전의 원동력 승화”라는 민망한 자화자찬이었다. 게다가 이들이 제출한 국외출장보고서는 5개월 앞서 모범공무원 1기 23명이 베트남으로 다녀온 보고서를 그대로 베꼈다. 내용 구성과 일정, 사진, 방문소감마저 똑같았다.
이렇게 다녀온 출장만 2018년 6~11월 5개월간 총 6차례다. 베트남 4회(호치민, 달랏), 중국 2회(남경, 상주, 소주, 상해)로 2개 국가에 시 공무원 118명이 ‘격려’ 차원의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이들의 해외여행에 들어간 비용은 1억3280만원이다.
MS투데이가 춘천시청 대외협력담당관에 등록된 ‘공무국외 여행결과 보고서’ 최근 4~5년치 100건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공무원들의 외유성 출장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로 필요해서 간 출장인지 의심스러운 사례가 숱하게 발견됐다.
선진지 견학이나 벤치마킹, 우수공무원 격려 차원의 해외연수도 적지 않았다. 할 일을 했을 뿐인데 ‘포상’이라는 명분을 달아 해외로 나갔다. 사실상 수십 명의 ‘공무원 단체관광’에 시민 혈세가 쓰인 셈이다. 아무리 포상이라지만, 시민 혈세를 들여 간 일정이 관광으로만 짜여져 있다는 건 국민 눈높이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자기주도형 해외연수, 기관 방문 없는 ‘자체 견학’ 위주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해 떠나는 ‘자기주도 해외연수’ 제도도 해외 출장 방법으로 활용됐다. 시에 따르면 자기주도 해외연수는 공무원 3~4명이 팀을 만들어 스스로 기획하는 방식이다. 각 부서마다 맡은 업무와 연관된 해외 사례를 살펴보기 위한 목적이다. 시는 지난 2017년부터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 2019년까지 이런 형태의 해외출장을 총 16차례 승인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2018년 10월 면사무소(행정복지센터), 시 교통과, 도시계획과 공무원 3명으로 구성된 해외연수팀은 ‘전기자전거 쉐어링 벤치마킹’이라는 주제로 일본 도쿄를 4박 5일간 방문했다. 춘천시 전기자전거 활성화를 위한 우수 사례 수집이 목적이었다. 연수내용은 도쿄도청 방문과 도내 9개구의 전기자전거 쉐어링 체험이다.
그러나 연수 결과보고서에는 기관(도청) 방문이나 도쿄도 담당자에 대한 질의 내용은 없고, 쉐어링 체험이 전부였다. 보고서도 표지를 제외하면 고작 4장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2장은 사진으로 채워졌다.
또 다른 연수팀은 2019년 4월 6박 8일 일정으로 미국을 다녀왔다. 선진 수상안전제도를 견학이 목적이었다. 출장자들은 주요 방문지인 허드슨강, 나이아가라폭포, 워싱턴 포토맥강 외에 UN본부, 자유의여신상, 백악관 관람, 미국항공우주박물관 전시회 견학 등 관광으로 시간을 보냈다.
연수 목적인 수상안전제도와 관련해선 “우리나라는 유선 및 도선사업법에 따라 안전관리규정을 준수하고 있으며, 미국과 비교하였을 경우, 이용객을 위한 안전이 강화되어 있었음”이라는 내용 두줄에 불과했다. 우리나라가 더 안전하다면 왜 많은 세금을 들여 미국까지 견학을 갔는지 설명조차 없다.
▶ 7급 임용 동기랑 해외출장 기획⋯업무 연관성도 의문
업무 연관성이 의심되는 사례도 있었다. 2019년 5월 친환경 정책 사례를 벤치마킹 하겠다며 독일과 네덜란드에 8박 10일간 다녀온 공무원 3명은 시 민원담당관, 신동면, 강남동 행정복지센터 등 친환경 정책과 거리가 먼 직책이었다.
시에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해 받은 자료를 확인한 결과 이들은 직책과 근무지는 다르지만, 임용 날짜까지 똑같은 ‘행정7급 동기’였다. 사실상 공무원 임용 동기 해외여행을 나랏돈으로 다녀온 셈이다. 이들은 출장비용으로 750만원을 썼다. 비슷한 시기 독일과 덴마크를 ‘자기주도’로 다녀온 공무원 3명도 모두 임용시기가 비슷한 7급 공무원으로 안심농식품과 2명, 민원담당관실 1명으로 구성됐다.
자기주도 해외연수로 다녀온 팀들 대부분은 기관 방문이 한 두차례에 불과하거나 아예 없는 ‘자체 견학’이었다.
이런 식으로 춘천시 공무원들이 다녀온 해외연수는 주로 유럽에 쏠렸다.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등 유럽 전역이다. 덴마크-스웨덴-핀란드 3개국을 한 번에 다녀온 연수팀도 있었다. 연수 기간은 아시아의 경우 3~5일, 유럽은 비행 시간을 포함해 평균 7~10일의 일정이었다. 16번의 출장에 들어간 혈세는 총 1억1643만원이다.
춘천 소재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문모씨(32)는 “일반 직장인들은 유럽 여행 한 번 가려면 큰 마음 먹고 월급 모아서 계획한다”며 “친한 근기수 공무원끼리 연수를 기획해 마치 여행처럼 간다는 건 혈세를 개인 돈처럼 마음대로 쓴 거 아니냐”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강원도 내 2개 부서가 별개 주제로 각각 연수를 떠났지만 실제로는 같은 일정으로 같은 나라를 다녀온 사례도 발견됐다. 2017년 5월 강원도청 건설교통국과 감사담당 부서는 7박 9일의 일정으로 일본과 호주를 다녀왔다.
연수 주제는 각각 ‘강원도형 도로계획과 건설시스템 구축을 위한 해외사례 벤치마킹’과 ‘선진외국 감사제도 벤치마킹 국외연수’였다. 건설교통국은 도와 시·군에서 17명, 감사담당도 도와 시·군 공무원 20명이 함께했다.
그런데 일본을 경유해 호주로 이동하는 일정을 비롯해 호주 내 도시간 이동 동선, 퀸즈랜드 주정부와 블랙타운 시청 방문 일정까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겹쳤다. 동일한 여행사를 이용하거나 자체적으로 준비한 출장인지 확인되진 않았지만, 일정만 보면 연수 주제만 달랐을 뿐 2개 부서가 ‘한 팀’으로 움직인 셈이다.
▶ 외유성 의도 다분⋯공무보단 '관광을 위한 출장'
외유성 출장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세금 낭비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례들 때문이다. 공무를 위해 꼭 필요한 출장이 아닌 해외 관광을 위한 출장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연수 명분이 구체적이지 않고, 선진제도 견학이나 벤치마킹 등 단순 목적으로 떠나다보니 천편일률적인 제안이 도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출장결과보고서 내용 부실이 이러한 공무 수행 의식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강하다. 보고서 대부분은 국가의 개요나 방문지 설명에 절반을 쓰거나, 사진으로 채우는 식이다. 인터넷 검색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 수준의 정보다. 보고서의 핵심이 되는 연수성과나 정책제안은 전체의 10~20%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관광활성화 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식의 추상적이고 무성의한 제안이 대다수였다. 예전에 제출된 출장보고서의 여러 문장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넣기도 했다.
인터넷 블로그 내용을 조합하기도 했고, 여행사의 관광지 안내가 들어간 경우도 허다했다. 2019년 춘천시 읍면동 공무원 10명이 도시재생사업, 복지정책 선진사례 수집을 목적으로 체코와 스페인을 다녀온 결과보고서를 보면 주요 내용 중 스페인 마드리드를 설명하며, 카카오의 브런치에 올라온 ‘마드리드 리오의 추억’이라는 여행기를 교묘하게 짜깁기 했다.
이외에도 상급기관인 도가 주관해 시·군 공무원이 함께 다녀온 보고서의 경우 도청 공무원이 먼저 작성한 보고서를 표지의 기관명만 바꾸거나 아예 뺀 뒤 그대로 제출했다. 내용은 도청 공무원의 보고서 그대로다. 실제 정부가 운용하는 공무원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 검색하면 같은 보고서가 제목만 바뀌어 중복돼 올라와 있다.
도내 다른 지자체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주시 공무원 4명이 지난 2019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8박 10일 일정으로 다녀온 결과보고서에는 “대형쓰레기통을 설치한 시스템이 무지하게 부러웠다”라든지, “TV속에서만 만나봤던 스페인 여행길에 올랐다”, “초콜릿에 츄러스를 찍어먹었다”, “나는 다음 여행을 꿈꾸며, 이 여행을 마친다”는 등 기행문 수준의 소감이 적혀 있었다. 출장자들 역시 임용시기가 같은 6, 7급 각각 2명씩으로 구성됐다.
▶ 여행사 대행 의존⋯기관 섭외, 일정까지 일임
공무원 해외연수의 부실은 연수 일정과 프로그램을 대행하는 여행사와 무관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정 조율부터 기관 섭외까지 공무 연관성이 낮은 여행사가 작지 않게 관여하는 관행 때문이다. 애초에 공무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국제 감각을 넓혀 주자는 해외 연수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춘천 소재 여행사 관계자는 “출장 기간과 방문 국가 정도만 알려주면 여행 일정과 함께 이에 맞는 기관 한 두 곳을 찾아 섭외해준다”며 “요즘 코로나가 잦아들면서 일본, 아시아나 유럽 쪽 출장 문의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눈에 띈 서울의 한 여행사는 자사의 블로그에 대놓고 공무원 해외출장 준비를 도와주겠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 여행사 블로그에는 ‘공무 연수를 준비하는 담당자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올려 ‘① 연수 취지 및 목적 세우기’, ‘② 연수 준비에 필요한 것’, ‘③ 연수 체크사항’까지 소개한다. 사실상 공무원들에게 연수를 승인받는 요령까지 교육해주는 수준이다. 심지어 공무원 스스로 준비해야 할 연수 주제까지 제안한다.
권오덕 춘천시민연대 공동대표는 “해외를 가는 목적이 단순히 관행처럼 어디 사례를 탐방한다는 인식은 위험하다”며 “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정책을 중심으로 고민하되, 다녀온 뒤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건지 명문화하는 등 시민 세금이 쓰이는 만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권 기자·이종혁 인턴기자 ksk@ms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