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몸 사용설명서] 암과의 싸움 30년⋯올리비아 뉴튼 존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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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몸 사용설명서] 암과의 싸움 30년⋯올리비아 뉴튼 존을 추모하며

    • 입력 2022.08.19 00:00
    • 수정 2022.08.20 00:09
    • 기자명 보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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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관 보건학박사·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고종관 보건학박사·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

    지난 8일 올리비아 뉴튼 존이 73세의 나이로 타계했지요. 팝 음악에 소양이 없는 필자 같은 사람도 ‘Let Me Be There’나 ‘Physical’의 한 소절쯤 흥얼거릴 줄 아는 걸 보면 그녀가 한 시대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임에는 틀림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에겐 그녀의 유명세보다 30년간 암 투병을 하며 벌인 인도주의적 활동이나 환경운동 같은 선한 영향력이 더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지요. 독일의 유대계 외할아버지 막스 보른은 양자물리학의 대가로 1954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나치당의 독일 집권 이후 폭정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세인트존스대학에서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의 아버지는 호주 뉴캐슬대학 부총장까지 지낸 브린리 뉴튼 존입니다. 언어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정보부에 발탁됩니다. 그는 이곳에서 암호해독을 통한 정보전으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지요. 그 뒤 교직에 복귀한 뒤 1954년 호주로 가족과 함께 이주합니다.

    그녀가 유방암을 진단받은 해는 1992년 7월로, 당시 78세인 아버지를 간암으로 떠나보낸 직후라고 알려집니다. 이후 부분 유방절제술과 9개월간의 항암제 투여, 그리고 유방 재건 수술을 받은 뒤 재기했습니다.

    전이암이 발견된 해는 2013년으로 암 치료 후 무려 21년 뒤입니다. 일반적으로 위암과 같은 고형암은 치료 후 5년 뒤까지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됐다는 의미의 ‘완전 관해’라는 판정을 내립니다. 항암치료를 졸업했다고 해서 ‘축하합니다’라는 말도 듣지요.

    그런데 유방암은 다릅니다. 유방 주위에 발생하는 국소재발일 때는 보통 5년 이내에 나타난다고 해요. 하지만 뼈나 폐, 간 등 다른 장기로 전이됐을 때는 10년 후는 물론 길게는 20년 뒤에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유에 대해선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다만 치료 종료 시 암 조직이 발견되지 않더라도 잔존 암세포가 숨어 있다가 휴면기간을 거쳐 다른 부위에서 증식을 시작한다고 해요.

    지난해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분석한 덴마크의 한 연구팀은 암의 크기, 암세포가 침범한 림프절의 개수, 에스트로겐 수용체 양성 여부가 전이에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어요. 이 팀은 논문에서 최장 32년 후 재발한 사례를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유방암 진단 후 앨범판매 수익금 등 많은 돈을 유방암 관련 연구단체에 기부해 왔지요. 또 2012년엔 호주 멜버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올리비아 뉴튼 존 암연구소’(ONJCC)를 설립했습니다. 이후 연구소는 2015년 지역 병원과 연계한 올리비아 뉴튼 존 웰리스&연구센터(www.onjcancercentre.org)로 확대됐습니다. 현재 이 연구센터에선 대학과 협력해 역학조사 및 교육은 물론 제약회사와 연계된 200여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은 암 환자의 삶의 질에도 관심이 컸죠. 그래서 센터에선 음악치료나 마사지요법, 명상, 요가 등 암 환자를 위한 웰니스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녀는 의학계가 대마초를 약용으로 받아들이도록 애를 많이 썼어요. 자신의 통증 관리에 대마초를 사용하고, 연구센터에서 임상실험을 진행토록 해서 대마에 대한 일반인의 부정적 인식을 바꿔놓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2018년 의료용 대마초가 합법화돼 환자들에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올리비아 뉴튼 존을 쓰러뜨린 건 2018년 5월 발견된 전이성 유방암입니다. 척추로 번져 암이 허리 아래쪽까지 침범했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수천만명에 이르는 전 세계 유방암 투병 환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4년을 더 버텼죠.

    국내에서도 매년 2만5000여명의 유방암 환자가 새로 발생합니다. 2000년엔 신규 환자가 6237명에 불과했으니 20년 만에 4배 이상 늘어난 셈이죠. 현재 유방암은 여성 암 발생 1위입니다.

    유방암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호르몬이 유관 상피세포를 과다증식시켜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져서이지요. 그 때문에 초경이 빠를수록, 아이를 적게 낳거나 늦게 임신할수록, 폐경이 늦을수록 여성호르몬 노출 기간이 길어져 유방암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답니다. 여기에다 높은 비만도, 여성 음주 인구의 증가도 한몫한다는군요.

    우리나라는 유방암 발생빈도가 아시아권에선 최상위입니다. 게다가 서구와 달리 40~50대에 환자가 급증하다 폐경 이후 줄어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조기진단에 대한 정부 권고는 40세부터지만 30대부터라도 2년에 한 번꼴로 유방 촬영술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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