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춘천 시내에서 양구로 이어진 46번 국도를 차로 30여분 달려 북산면 추곡리로 들어섰다. 인적은 거의 끊겼고, 집 지키는 개들만 지나가는 차를 보고 시끄럽게 짖었다.
낡은 집들이 많았고, 그중 몇몇은 오래 방치된 듯했다. 이 마을은 인구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 북산면의 10개 법정리 가운데 유일한 학교인 추곡초등학교와 병설유치원이 있는 곳이다. 추곡초는 올해 졸업생이 1명도 없었다. 유치원에서만 한 원생이 지난 3일 쓸쓸하게 ‘나 홀로 졸업’을 했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6학년 학생 1명이 추곡초에 다녔다. 그러나 하반기에 그 학생이 중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전학을 가면서 졸업생을 배출하지 못했다. 김성회 추곡초 교장은 “그 학생은 4학년 때 엄마와 함께 서울에서 잠시 ‘시골 유학’을 왔던 아이였고 동네 토박이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제 추곡초 재학생은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김 교장은 “시내와 뚝 떨어진 외딴곳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곳 학령인구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산면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를 다니기 위해 매일 차로 춘천 시내까지 통학해야 한다. 등교 때는 그나마 시에서 지원하는 ‘희망택시’라도 탈 수 있지만, 하굣길은 버스를 타면 꼬박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춘천시가 조사한 인구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 북산면 중·고교생인 만 12세부터 17세 아이들은 19명에 불과했다.
이날 찾아간 추곡초의 학생들은 겨울방학 ‘방과후학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람 발길이 적은 탓인지 실내 마룻바닥은 유난히 반들거렸다. 학생들은 각 교실로 나뉘어서 영어를 배우거나 악기를 연습했다. 얼마 전 병설유치원에서 1인 졸업식을 갖고 초등학교에 진학하게 될 A군은 유치원에서 교사와 단 둘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A군은 지난해 말 하나뿐이던 한 살 아래 학급 친구와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추곡초에 근무하는 친구의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면서다. 김 교장은 “작은 규모로 지내면 모두가 한 가족처럼 대하지만 동년배 친구를 구하기 힘들고, 각자 사는 곳이 멀어서 학교 밖에서는 못 만나 외롭다는 문제가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학생들은 오후 4시가 되면 방과후학교 활동을 끝내고 집으로 간다.
김 교장은 학교 사정상 교내 방과후활동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도 아쉬워했다. 전체 학생 수가 적은데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방과후활동 종류도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교장은 “멀리서 강사를 모셔와야 하는데, 강사 입장에서는 이곳을 왔다갔다 할 시간이면 다른 곳에서 한 시간을 더 일할 수 있어 굳이 이곳에 올 이유가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곳 아이들 중 일부는 그나마 가까운 추곡초와 병설유치원을 두고 멀리 시내까지 나가기도 한다. 학부모들이 아이를 보다 큰 학교에 진학시키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시내 유치원으로 보내거나, 어린이집이 없는 북산면 사정상 작은아이를 시내 어린이집에 홀로 보낼 수 없어 큰아이도 함께 보내는 것이다.
“아무래도 마을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초등학교가 하나 있어야 마을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추곡초 16회 졸업생인 안영우(56) 추곡1리 이장은 혹시나 모교가 면내의 다른 학교들처럼 폐교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다. 안 이장은 “올해 전교생 중 4명이 6학년으로 올라갔는데, 이들이 졸업하면 재학생은 5명으로 줄어든다. 총동문회에서는 외지 학생을 유치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털어놨다.
북산면 인구가 2011년 888명에서 지난해 967명으로 늘었지만 단기 효과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마냥 반길 순 없다. 젊은 층의 유입이 없는 탓이다. 안 이장은 “노후를 보내려고 들어오는 분들이 있고 아직까지 빈집도 나가는 편”이라면서도 “마을에 나이 든 어르신뿐이라 아이 낳을 사람이 없고, 아이는 계속 줄고 있다. 농사 외에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젊은 사람은 이곳에 올 엄두를 못낼 것”이라고 말했다.
북산면의 소멸 위험은 매우 높다. 취재진이 지난해 북산면의 20~39살 여성 인구(26명)를 65세 이상 인구(453명)로 나눠 ‘소멸위험지수’를 계산해 보니 0.057이 나왔다. 이는 ‘소멸 위험’ 기준 0.5나 ‘소멸 고위험’ 기준 0.2보다도 4배에서 10배 가까이 낮은 수치다.
소멸위험지수는 마스다 히로야 일본 동경대 교수가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소멸 위험’은 큰 전환의 계기가 없다면 지역의 인구가 점차 소멸할 것으로 보고, ‘소멸 고위험’은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기반이 붕괴돼 소멸이 현실화한 것으로 본다.
지난 11일 사북면 지촌리에 있는 지촌초등학교로 향했다. 춘천 시내를 벗어나자 주변에 산과 호수가 길게 이어졌다. 마을이 시작되면서 군데군데 민가와 논밭이 보였다. 사북면은 지난해 인구가 2496명으로 북산면보다 2.5배 많지만, 소멸 고위험 판정을 피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3곳, 병설유치원 2곳, 중학교가 1곳이어서 사정은 다소 나은 편이다.
호수 가까이에 위치한 지촌초는 지난해 6학년 학생이 2명이었는데, 그중 1명이 원하는 중학교를 배정받기 위해 춘천 시내로 전학을 가면서 졸업생이 1명밖에 남지 않았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어려움 속에서도 안정원 지촌초 교사에겐 분명한 생각이 있다. 학생이 적더라도 학교 문을 닫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한다. 이번 방학 방과후활동에도 1명을 뺀 나머지 전원이 참석하고 있다. 한 달마다 한 번씩 학생자치회를 열어 스스로 어떤 방과후활동을 할지 정한다. 작은 규모이다 보니 아이들 간에도 유별난 정이 있다.
이날 오전 잠시 학교 건물 밖으로 나온 아이들은 안 교사가 무언가를 이야기하자 까르르 웃으며 어딘가로 열심히 뛰어갔다. 안 교사는 “만약 학교가 사라지면 지금도 먼 거리에서 통학하는 아이들이 더욱 곤란해질 것”이라며 “작은 학교이기는 하지만 지역사회의 구심점이고 아이들에겐 마음의 고향”이라고 했다.
강원도교육청이 지난해 4월 발표한 2021학년도 학급편성 현황에 따르면 젊은 층 유출로 학령인구가 줄면서 강원도에서 6학년 학생이 없거나 단 1명인 초등학교는 전체 학교 374곳 중 6.15%인 23곳에 이른다.
도내 초등학생 수는 2011년 9만4442명에서 지난해 7만2373명으로 10년 만에 23.37% 줄었다. 같은 기간 도내 초등학교 5곳은 학생 수 감소로 폐교됐다. 넋 놓고 있을 수 없는 위기 상황이다.
[김범진 기자 jin@ms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