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누구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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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누구신지

    • 입력 2021.11.10 00:00
    • 수정 2021.11.10 11:11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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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신지

                                    황상순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평촌리
    오래된 집 앞에서 기웃거린다
    이 처마 저 서까래 낯익은 모양들을 살피다가
    기둥에 달린 낯선 문패를 읽다가
    아직도 방문 앞에 앉아 있는 닳아진 댓돌이며
    종내는 없어진 흙담장 모서리까지
    사라진 길까지

    그러나 인기척을 내며 함부로 마당에 발길을 들이다간
    누구세요? 경계의 눈총을 받아야 하는 
    낯선 객, 나는 너무 늦게 돌아왔구나

    오래전 북극성처럼 까마득히 먼 오래오래 전부터
    우리는 낯선 떠돌이별 아니었던가
    나그네 아니었던가

    풀도 나무도, 강물도 바위도 바람도 구름도
    곧 스러질 해거름의 긴 그림자에게
    초저녁 어스름에 혼령처럼 찾아든 
    달에게도 별에게도 묻는다

    누구세요, 정말 누구신지!

    *황상순: 봉평출생. 1999년 월간 「시문학」 등단. 전 수원세무서 서장.
    **시집 「사과벌레의 여행」 「오래된 약속」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자신의 존재를 찾아 나선 ‘나그네’의 심상이 언뜻언뜻 엿보인다.
    우리는 누구나 ‘나그네’ 아닌가? 탯줄에서 끊겨져 나온 그 후로부터 우리 모두는 개체다. 
    개체는 늘 본향을 동경한다. 그 동경은 이 세상에 나와 터트린 최초의 울음소리다. 
    들숨 날숨으로 살고 있는 그리움이다. 그러므로 그 본향에는 나그네의 천진한 울음소리가 항상 옆구리에서 들린다. 그래서 인간의 감정 속에는 늘 그리움이란 동경이 살고 있다. 
    이 그리움의 바탕은 정(情)이다. 정은 인간의 순수하고 어진 인(仁)에서 출발한다.  

    이 시의 화자는 그리움의  본향을 찾아 간다. 나를 찾아 간다.
    그런데 어린 시절 살던 그 집에는 웬 낯선 얼굴이 정지문 밖에서 어른거린다. 
    내가 뛰어놀던 마당에도 웬 낯선 사람이 “누구신지”라고 묻는다. 그 낯선 사람은 곧 자기 자신이다. “떠돌이별”처럼 지구를 떠돌다 “너무 늦게 돌아온 낯선 객,” 그 나그네다.
    객은 기둥에 독백처럼 걸려 있는 ‘문패’를 읽다가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돌아보니 주위는 온통 낯선 것뿐이다. “사라진 길” 앞마당을 거쳐 옆집으로 마실가던 길까지. “종내는 흙 담장 모서리까지”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저마다 본향을 잃고 산다. 집이 아니라 우리들이 태어난 본향, 그 탯줄의 본향을. “누구세요, 정말 누구신지!” 
    나 자신을 잊고 사는 오늘의 나는 아닌지 자문한다. 누구세요? 정말 누구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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