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은 불공평하다] 2. 춘천의 폭염이 낳은 재난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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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염은 불공평하다] 2. 춘천의 폭염이 낳은 재난불평등

    무더위 전통시장 발길 뚝...대형마트 '폭염 특수'
    고령자 농업인 생계 유지 위해 폭염에 노출
    촘촘한 제도적 안전망과 사각지대 해소 시급

    • 입력 2021.07.15 00:01
    • 수정 2021.07.23 18:05
    • 기자명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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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는 같은 공간에 있는 모두에게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지 않는다. 폭염 속에서 시원한 냉방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과 달리, 더위와의 싸움에 내몰리는 구성원들도 분명 존재한다. 폭염이란 재난이 왜 약자에게 더 가혹한가에 대한 물음에 우리사회가 응답해야 하는 이유다.

    ■가마솥 더위 전통시장 한숨···"빈 손으로 돌아갈 때 많아"
    전통시장은 폭염에 그대로 노출되는 대표적인 장소다. 기자가 찾은 춘천중앙시장의 평일 상권은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태였다. 바로 옆의 명동 거리와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매출보다 폭염 속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일 자체가 고역이다. 온종일 야외에 앉아 있는 상인들에게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다. 작은 부채와 미니 선풍기로 폭염을 버티고 있는 상인들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춘천중앙시장 인근 과일가게 상인들이 그늘막에 의존해 폭염을 피하고 있다.(사진=정원일 기자)
    춘천중앙시장 인근 과일가게 상인들이 그늘막에 의존해 폭염을 피하고 있다.(사진=정원일 기자)

    하지만 손님들의 발길은 뜸하다. 시장 상인들은 폭염으로 발길이 끊긴 손님들의 빈공간을 주시할 뿐 대책이 없다. 중앙시장에서 채소를 판매하는 한 상인은 “안 그래도 코로나19 때문에 손님의 발길이 줄었는데, 폭염까지 덮쳐 손님이 아예 끊겼다”며 “요즘은 온종일 한 푼도 못 버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토로했다.

    MS투데이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전통시장 경기동향(BSI)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통시장 상인들의 매출 체감은 1년 중 여름철(7~8월)에 가장 저조한 경향을 보였다. BSI는 상인들의 현장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통계로 100 이상이면 경기가 개선됐음을, 100 미만이면 경기 악화를 의미한다.

    지난 2017년 7월 전통시장 상인들의 매출 체감 BSI는 41.7로 1년 중 가장 낮았다. 기록적인 폭염이 있었던 지난 2018년 8월의 경우 매출 체감 BSI도 38.5로 2017~2019년 중 최저 수준이었다.

    반면 9~10월의 경우 전통시장 상인들이 체감하는 매출은 여름철과 대비해 상승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 재해가 전통시장 상인들의 ‘밥줄’과 밀접한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폭염으로 춘천중앙시장 내부 상가는 개점휴업 상태다. (사진=정원일 기자)
    최근 폭염으로 춘천중앙시장 내부 상가는 개점휴업 상태다. (사진=정원일 기자)

    대형 마트는 ‘폭염 특수’ 기대
    대형마트의 상황은 전통시장과 전혀 다르다. 대형 유통업계에서는 폭염 ‘반사이익’에 따른 매출 상승 기대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MS투데이가 통계청의 대형마트 매출 동향 자료를 조회한 결과, 여름철 대형마트의 매출은 대부분 상승세를 보여왔던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7월 대형마트의 매출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임에도 불구, 전월 대비 4% 증가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여름철 매출 상승세가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 2018년과 2019년 7월 기준 대형마트의 매출은 전월 대비 각각 16.1%, 14.4%씩 급증했다.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전통시장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무더위가 예고되면서 유통업계에서는 ‘폭염 특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가전 코너에는 폭염에 대비하기 위한 에어컨이나 선풍기 등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몰렸다. 실제로 지난 5월 기준 대형마트의 가전·문화 매출은 전월 대비 27.5% 증가하며, 올해 들어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였다. 춘천 A대형 가전 매장에서 근무하는 이모(34·퇴계동) 씨는 “체감상 여름철 선풍기와 에어컨 등의 가전 판매량이 기존보다 3배가 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날이 더워지며 냉방 시설이 완벽한 장소에 시민들이 몰리는 점도 대형마트의 매출 상승의 한 원인이다. 춘천 B대형마트 관계자는 “최근 무더위로 매장에 사람들이 점점 몰리는 추세”라고 전했다.

    ■늘어나는 춘천의 고령자·농업인...폭염 피해 우려

    모든 구성원이 폭염이란 재난 탈출의 비상구를 찾지 못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냉방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고령자들이 대표적인 ‘에너지 빈곤층’ 이다. 에너지 전문 NGO인 에너지시민연대의 ‘2020년 여름철 에너지 빈곤층 실태조사’(에너지 취약가구 298가구 대상)에 따르면 지난해 에너지 취약가구의 85%는 노인가구로 평균 연령의 경우 75.3세로 보고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온열 질환 사망자 중 고령자들의 비중이 압도적인 것은 당연하다. 본지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2년간 65세 이상의 온열 질환 사망자 발생 비율(63.5%)은 65세 미만(36.5%)보다 1.7배 높았다.

    춘천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지난 5월 기준 18.2%로 초고령화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폭염 피해에 대한 우려는 당연하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일하는 춘천의 농업인들도 폭염의 위험에 노출된 구성원들이다. 본지가 강원통계정보 자료를 확인한 결과, 2019년 기준 대부분의 지역에서 농업 종사자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춘천시의 농가 인구 증가율은 4%로, 강원지역 내에서 압도적인 1위였다. 농가 인구수는 1만3017명으로 도내에서 3번째로 많다.

    국민재난안전포털은 폭염 발생 시 햇볕이 강한 오후 2~5시에는 휴식을 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야외 활동이 생계와 직결되는 농민들에게 이 같은 지침은 따르기 어려운 권장사항에 불과한 현실이다.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9일 농업현장에서 만난 길모(70) 씨는 “오늘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밭일을 했다”며 “자식들이 날이 더울 때는 위험하다며 밭일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농업인들은 날씨와 상관없이 생계를 위해 농업현장을 지켜야 한다. (사진=MS투데이DB)
    대부분의 농업인들은 날씨와 상관없이 생계를 위해 농업현장을 지켜야 한다. (사진=MS투데이DB)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농민들은 흘린 땀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농업인 이모(73) 씨는 “날씨가 과거에 비해 너무 더워지면서 배추를 심는 족족 다 타 죽는다”고 호소했다. 이어 “기온은 높아지고 단발적인 집중호우가 지속되면서 감자 씨가 작아져 기존 가격의 절반 정도 밖에 받지 못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팔고 있다”고 덧붙였다.

    춘천지역은 농민과 고령자 등 폭염 취약계층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피해 예방을 위한 촘촘한 제도적 안전망과 사각지대 해소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원일 기자 one1@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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