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세한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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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세한도 가는 길

    • 입력 2020.12.09 00:00
    • 기자명 이영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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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한도 가는 길
      

                                        유 안 진

     

    서리 덮인 기러기 죽지로
    그믐밤을 떠돌던 방황도
    오십 령 고개부터는
    추사체로 뻗친 길이다
    천명이 일러주는 세한행歲寒行 그 길이다
    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길을
    닳고 터진 알발로
    뜨겁게 녹여 가라신다
    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록한 꽃진 흘려서
    자욱자욱 붉게 붉게 뒤따르게 하라신다

    *유안진: 1965년 '현대문학'등단. *시집 '세한도 가는 길' 외 다수. *서울대명예교수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고고한 지조의 상징으로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옛 선비들은 유배지에서도 이렇게 곧은 ‘지조志操’로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냈던 이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유배지에 버려진 스승을 위해 올곧게 헌신했던 이상적을 비롯하여, 원균 등의 모함으로 옥살이를 했던 이순신도 그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단종을 지켜내려던 사육신도 모두 고절의 상징적 인물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위대한 정치가들은 누구를 위한 ‘지조’이고 ‘절개’ 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진정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정의와 지조를 갖춘 애국자가 그립습니다.

    이 시는 화자 자신을 담금질 하는 세한도로 읽힙니다. “그믐밤을 떠돌던 방황도/오십 령 고개부터는/추사체로 뻗친 길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천명이 일러주는 세한행(歲寒行) 그 길”입니다. “누구의 눈물로도 녹지 않는 얼음장 같은 그 길”을 풍진 세상에서 “닳고 터진 알발로/뜨겁게 녹여 가라신다”고 자신에게 당부합니다. 이 당부는 자신을 돌아보라는 선비의 자세입니다. “매웁고도 아린 향기 자오록한 꽃 진 흘려서/붉게 붉게 뒤따르게 하라신다”고 간접화법으로 고고한 선비 정신을 담금질하고 있습니다. “서리 덮인 기러기 죽지로”라도 올곧은 길을 가라 이르고(謂) 있습니다.

    세상이 얼음장 같이 찬 겨울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들의 심신도 양심도 일심으로 아니 단심(丹心)으로 ‘세한도(歲寒圖)’같이 청정하고 올곧게 자신을 세우며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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