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여행기] 밤새고 40km를 걷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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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여행기] 밤새고 40km를 걷는다고?!

    • 입력 2025.01.31 00:02
    • 기자명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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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마치 베트남 중부 지방 시골 마을과 같았던 풍경 도보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날은 상식적으로 잠을 깊이 자야 합니다. 그것도 17일 동안 700km 넘게 불볕더위 속을 걷는 도보여행 전날에는 더욱 그래야 했죠.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번 고성에서 부산까지 걷는 도보여행의 근본적인 이유는 이를 영상으로 남기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저는 밤을 새워 유튜브 채널에 올릴 도보여행 오프닝 영상을 편집했습니다. 영상이 완료되어 업로드된 시간은 새벽 4시 30분. 서둘러 배낭에 짐을 챙겼고, 그렇게 도보여행 출발 전날 밤을 몽땅 새워 버렸습니다.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걸려 대한민국 북쪽 끝 통일 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무릎 보호대와 선캡, 등산화를 착용 후 배낭을 짊어졌습니다. 배낭 뒤에는 '내 생애 단 한 번, 고성→부산' 현수막을 써 붙였습니다. 그렇게 남쪽으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눈앞에는 금강산 콘도가 있고, 표지판에는 김일성 주석의 별장이 보이는 걸 보니 여기가 과거 38선 이북 땅이었다는 게 실감이 납니다. 한낮에는 37도 불볕더위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아침에는 선선해서 꽤 걸을만합니다. 고맙게도 바다에서 시원한 동풍이 불어 흐르는 땀을 금세 날려줍니다.

     

    배낭 뒤에는 '내 생애 단 한 번, 고성→부산' 현수막을 써 붙였다. 사진=강이석
    배낭 뒤에는 '내 생애 단 한 번, 고성→부산' 현수막을 써 붙였다. 사진=강이석

    대진고등학교 옆에 있는 화진포를 지나 소나무 길을 따라 걷습니다. 정오에 가까워져 오면서 햇빛은 점점 강렬해집니다. 다행히 아직 물집은 잡히지 않았지만, 오른쪽 무릎이 욱신거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더 이상의 그늘은 없고, 거기다 밤을 새운 후유증이 스멀스멀 밀려옵니다. 그렇게 30도가 넘는 땡볕에서 4시간 넘게 걸은 후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은 기가 막힙니다. 점심때가 지났지만, 배가 고프지 않아서 1.5리터 이온 음료로 식사를 대신합니다.

    수분과 전해질, 카페인을 가득 채우고 다시 걷는 길. 태양은 바로 머리 위에 놓여있고, 열기는 아스팔트에 한껏 머물다 또다시 온몸으로 전달됩니다. 그래도 걷고 또 걷습니다. 도로 갓길은 목적지에 조금 더 빨리 데려가지만, 그만큼 덥고 위험하고 지루합니다. 다행히 곧 시골길로 이어졌고 어느새 바닷길도 보입니다. 바다 전망이 보이는 길가에는 어김없이 카페가 있습니다. 불현듯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커피 공화국이 되었나 궁금한 마음이 듭니다.

    언덕을 넘으니 시야가 탁 트인 바다가 바람과 함께 다가옵니다. 부메랑처럼 휘어진 가진 해수욕장부터 저 멀리 보이는 송지호 해수욕장까지 이어진 라인은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하늘빛과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약간의 피로감에 몽롱한 기분도 들어 바다의 모습이 마치 코타키나발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지호 호수길을 걸을 때쯤에는 슬슬 그늘이 지기 시작합니다. 도로 옆 갓길에는 '통일 전망대 42km' 표지판이 보입니다.

    조금씩 하늘이 노란빛으로 변해갑니다. 오른쪽으로 태양이 마치 동남아의 어느 시골 마을처럼 노랗게 영글고 있습니다. 산과 구름과 하늘도 베트남 중부 지방 어느 도시의 모습과 같은 모습입니다. 유튜브 음악은 신기하게도 지금의 분위기와 너무도 절묘하게 맞는 노래를 계속해서 추천해 줍니다.

    바닷길을 두어 번 더 지난 후 아야진 해수욕장 근처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땀에 절어버린 옷을 벗어던져 버리고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누웠습니다. 종일 이온 음료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밖에 먹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배는 하나도 고프지 않습니다. 그래도 뭔가는 먹어야지 내일 다시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편의점 도시락을 먹다 스르르 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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