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에 사는 산모 김씨는 지난달부터 출산을 위해 춘천의 산부인과로 원정 진료를 받으러 다닌다. 홍천에도 산부인과는 두 곳이 있지만, 분만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만은 야간에도 의사와 간호사, 마취의사가 항상 대기해야 하고,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할 만큼 높은 의료 사고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여기에 분만 수가(진료비) 마저 적어 포기하는 곳이 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김씨처럼 자신의 고장에서 출산을 하지 못하고 외지의 산부인과를 다니며 분만하는 이들을 ‘출산 난민’이라 한다. 도내에는 이런 출산 난민이 얼마나 될까.
본지가 31일 강원도내 산부인과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에 도내 출생아 6688명 중 출산 난민으로 태어난 아기는 2696명이다. 2.5명 중 한명꼴이다. 이중 분만 산부인과가 한 곳도 없는 지역에 거주하는 산모가 낳은 아기는 1895명이었다. 화천, 인제, 횡성, 홍천, 평창, 정선, 양양, 고성 등 9곳이다. 분만 산부인과가 하나 뿐인 지역(속초, 삼척, 태백, 영월, 철원)도 출산난민 대열에 합류한다. 작년에 해당 지역 산부인과에서 산모가 낳은 아기는 202명뿐이고, 다른 지역의 산부인과로 가서 낳은 아기 수는 801명으로 4배에 달했다. 시설이나 의사들의 분만 경험, 산후조리원 여부를 따져 먼 길 원정을 가는 것이다.
도내 출생아 수는 2015년을 고비로 9년째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산모들은 아기를 낳기 위해 원정 출산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더욱이 고령 산모가 많아지고, 저체중·조산아들이 늘고 있어 신생아 중환자실도 필수적이지만 도내에는 겨우 세 곳 밖에 없다. 산모가 안전하게 아기를 낳으려면 대학병원이 있는 춘천과 원주, 강릉으로 먼길 출산 원정이 불기피한 상황이다. 도내 산모 2.5명 중 한명은 이처럼 아기 낳으려면 다른 지역의 산부인과로 원정가야 하는 출산 난민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도내 분만 가능한 병원 23곳⋯8개 군지역 분만 병원 ‘0’
복지부와 강원도에 따르면 강원도내 18개 시군 중에서 분만 하는 산부인과는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병원·의원급을 합쳐 모두 23곳이다. 원주가 6곳으로 가장 많고, 춘천 5곳, 강릉 4곳, 동해 2곳 순이었다. 속초, 삼척, 태백, 영월, 철원, 양구는 모두 1곳씩이다. 이중 상급종합병원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과 강릉아산병원 2곳이고, 종합병원급은 강원대병원과 한림대병원 2곳이다. 병원급은 삼척의료원, 영월의료원, 속초의료원, 철원병원, 양구성심병원 5곳이 해당한다. 이 밖에 의원급은 14곳으로 원주가 5곳으로 가장 많고, 춘천 3곳, 강릉 3곳, 동해 2곳, 태백 1곳이 있다.
작년에 산부인과 중 500명 이상의 아이를 낳은 병원은 5곳이다. 가장 많은 아기를 낳은 곳은 강원대병원으로 761명이다. 이어 원주의 A의원 716명, 원주의 B의원 665명, 강릉 C의원 583명, 춘천 호산부인과 532명 순이다. 6~10위(300~499명)는 원주 E의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353명, 강릉아산병원 342명, 춘천 미래산부인과 333명, 강릉 G의원 304명 순이다. 300명 이상 아기를 낳는 10대 산부인과는 강원대병원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강릉아산병원을 제외하고는 원주 3곳, 강릉 2곳, 춘천 2곳의 동네 산부인과였다.
그러나 도내에는 분만 산부인과가 아예 없어 출산시에는 도시의 산부인과를 찾아 나서야 하는 지자체가 도내 18개 시군 중 8곳이나 된다. 대부분 한해 출생아 수가 200명 이하에 그쳐 산부인과 의사들도 개업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지역이다.
그나마 정부가 산부인과가 아예 없거나 하나밖에 없어 분만을 포기할 우려가 있는 지역을 위해 정부는 분만취약지역 병원으로 지정해 매년 일정액을 지원해 주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 2명과 마취과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도내에서는 5곳이 지원 대상이다. 전문의 두 명이 일하는 삼척의료원은 삼척의 유일한 분만 산부인과로 작년에 131명의 아기를 낳았고, 올 들어 109명의 아기가 탄생했다. 인구 8만여명의 속초는 속초의료원이 분만을 하는 유일한 병원이다. 작년에 31명의 아기가 태어났는데 전문의는 한 명이고, 현재 1명을 새로 충원하는 과정에 있다. 영월의료원은 최근 분만을 하지 않았으나 올해 두명의 전문의를 뽑아 올들어 3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철원병원은 작년에 35명의 아기가 태어났고 올해도 지금까지 28명이 태어난 상태다. 태백의 한마음 산부인과에선 작년에 이어 올해도 5명이 아기를 낳았다. 양구는 2020년 12월에 성심병원이 분만 취약지구 병원으로 지정돼 정부의 보조를 받고 있으나 2021년에만 6명이 태어났고 이후로는 한 명도 태어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산부인과 전문의가 둘이었으나 지금은 한 명으로 줄어 국고지원도 그만큼 삭감된 실정이다.
◆도내 산부인과 의사 절반가량 60세 넘어
도내 산부인과 전문의는 156명이다. 여성인구 1000명 당 산부인과 전문의가 0.21명으로 1명도 안되는 실정이다. 이중에도 분만에 참여하는 산과(産科)의사는 61명만에 그치고 나머지는 산전 진찰 등을 주로하는 부인과(婦人科)의사다. 도내 각 시군은 인구가 적어 산부인과 의사들이 개업을 꺼리는 지역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산부인과 전문의 숫자가 많지 않다. 그나마 대학병원인 원주기독병원 8명, 강릉아산병원 7명, 강원대병원 6명, 한림대병원 2명이다.
그러나 도시지역도 이젠 더 이상 출산 안전 지대가 아니다. 강원도내 산부인과 의사들의 평균 연령은 58.1세다. 경북(60.8세), 전북(59.6세), 전남(59.1세), 충북(58.3세) 다음으로 평균연령이 높다. 도내 산부인과 의사들의 연령분포를 보면 완전한 역삼각형으로 미래가 암담하다. 60대 이상이 전체 산부인과 의사의 절반에 가까운 71명으로 가장 많고 이들의 평균연령은 법정 정년을 훌쩍 넘긴 66.4세이다. 산부인과 고령화가 심각한 현실임을 보여준다. 이어 50대 56명, 40대 22명, 30대는 고작 7명에 그치고 20대는 단 한 명도 없다. 도시지역 개원의들도 50대가 주축이다. 원주는 5개 의원 중 3곳이 60세 이상이고, 강릉은 3곳이 모두 50대, 춘천은 50대 3명에 40대 1명이다.
더욱이 문제는 도내에 젊은30, 40대 의사들은 숫자가 적은데다 분만을 포기하고 산전 진찰만 하거나 아예 산부인과 전문의를 포기하고 일반의나 피부과로 바꾼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강원대와 한림대병원에서 최근 5년사이 인턴과 레지던트과정을 마친 산부인과 전임의를 1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강원대에선 최근까지 매년 산부인과 레지던트를 두명씩은 확보해 배출했지만, 대부분 수련후 외지로 떠나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레지던트를 한명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들이 65세에 분만에서 손을 뗀다고 하면 대략 7년 후면 도내 분만 산부인과 의사들이 대부분 사라질 위기이다. 지금까지는 분만 산부인과가 없어서 문제였다면 이제는 분만할 산부인과 의사가 부족해지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매년 의사는 3300여명이 탄생하지만 산부인과 전공의는 손꼽을 정도만 배출된다. 야근해야 하고, 분만 사고 위험 등의 이유로 산부인과가 의사 사회에서 기피 과목으로 전락한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의사가 늘어난다고 산부인과 의사가 늘어날 수 없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도 의료당국이 도내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학생이나 산부인과 전공의들에게 각종 장학금이나 개업에 필요한 여러 지원을 해서라도 지역에서 산부인과 의사를 적극적으로 유치할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그렇지 못하면 젊은 누가 강원도 농촌지역에 살려고 하겠느냐”고 지적한다.
김동섭 편집인·한재영 기자 socf111@ms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