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찬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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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찬 봄날

    [최삼경의 동네 한바퀴]

    • 입력 2024.03.21 00:00
    • 수정 2024.03.21 09:26
    • 기자명 최삼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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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삼경 작가
    최삼경 작가

    왜 유독 봄에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일까.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라서? 그거야 4계절 환절기마다 그래야 하는데 꼭 봄에만 바람이 많이 부는 이유로는 적합하지 않다. 과학 쪽에서는 ‘바람’이란 대기권의 기압 차이를 없애고 평형을 맞추려는 대기의 움직임으로 개념 짓고 봄철 바람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봄에는 태평양의 고기압과 시베리아의 저기압이 급격하게 형성되어 발생한 기압 차이로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이다. 또, 봄에는 태양의 각도가 높아져 지구의 광학적 에너지가 증가하고, 이로 인해 대기 전체의 온도가 올라가 열의 이동이 활발해져 대규모의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과학적 설명이라지만 썩 와닿지는 않는다. 차라리 봄에는 꽃이 펴서, 여리여리한 새싹이 대지를 뚫고 돋아 올라서 ‘그 꽃과 새순을 응원하느라 바람이 분다.’라는 해석이 그럴듯하지 않은가.

    이런 봄날 하루종일 집안에 앉아 있어도 무언가 흥미진진해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창밖에서 호시탐탐 창 사이로 부딪치고 비집고 들어오는 천변만화의 바람 소리 때문이다. 무슨 히말라야 고봉 사이에 있는 것처럼 혼자 날카로운 아리아를 부르다가 또다시 황소 천 마리쯤이 떼 창으로 ‘우우~’ 거린다. 그러다가 문득 조용해지고 이내 2악장의 바람이 귀 옆에 앉아 ‘파르륵 파르륵’ 내는 휘파람 소리를 듣다 보면 정말로 어디 산중에 큰 초상이라도 나서 바람의 호곡(號哭)을 듣는 착각에도 빠지는 것이다. 바람은 무엇이 이리 서러울까. 이처럼 새로이 생명이 시작되는 일은 엄중하다는 것일까. 겨우내 폐허처럼 버려졌던 대지가 물을 들이고 뿌리를 내리는 데는 이런 고통이 동반된다는 전 지구적 생명 캠페인쯤 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봄은 또 선거의 계절이기도 하다.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총선의 계절, 벌써 후보들은 길거리마다 파랗고 빨갛게 인사를 하고 춤을 추며 골목을 누빈다. 자신만이 그 어렵다는 ‘경제를 살리고,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결연한 출사표를 외치지만 어쩐지 새롭거나 미덥지 않다. 정치에 합당한 룰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많이 틀어진 느낌이다. 그것은 뭐랄까, 한 경기장 안에서 서로 다른 종목으로 경쟁하는 느낌? 서로 다른 잣대와 언어, 국가의 신민들처럼 낯설다. 그리하여 요사이의 봄바람은 안 그래도 좁은 나라가 모눈종이, 격자무늬로 갈가리 찢어지는 현실에 대한 아픔과 안타까움에 공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혹여 바람은 여기에 한마디를 더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친중과 친일과 친미를 권력의 언덕으로 일삼던 이 땅의 위정자들이 언제 한 번이라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반성하고 사과한 적이 있던가. 반성하라! 사과하라! 그 반성과 성찰의 진정함 속에 서로 녹고 스며들어야 비로소 조국이다. 그래야 미래고, 희망을 노래할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당부와 우려 같은 것 말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최삼경 필진 소개
    -작가, 강원작가회의 회원
    -‘헤이 강원도’, ‘그림에 붙잡힌 사람들’ 1·2, 장편소설 ‘붓, 한자루의 생'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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