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의 교육시선] 누구를 위한 유보통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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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수경의 교육시선] 누구를 위한 유보통합인가?

    • 입력 2024.03.13 00:00
    • 수정 2024.03.18 09:27
    • 기자명 남수경 강원대 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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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수경 강원대 교육연구소장

    지난달 28일 교육발전특구 1차 시범지역으로 총 31곳이 선정됐다. 선정된 지역들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 조성’을 목표로 다양한 늘봄학교 운영과 유보통합(유아교육·보육통합) 모델을 제시하였다. 어르신이 많은 지역은 마을형 아이 키움터에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영유아들에게 정서적 지원을 하는 모델을 담았다. “노인정 옆 유아원”이 그려지고,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실감 난다.

    그러다 문득 ‘누구를 위한 유보통합인가’ 내지 ‘유보통합의 궁극적 정책목표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하게 된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2023.1.30.)에 따르면, 유보통합은 5세 이하 모든 영유아가 이용기관에 관계없이 양질의 교육과 돌봄 서비스를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해 나가는 정책이다. 자녀 양육의 첫 단계인 영유아 시기부터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저출생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유보통합이나 늘봄학교가 저출생 위기 대책이라고는 하지만, 조금 거칠게 표현하면, 유아를 위한 정책보다는 맞벌이 어른을 위한 정책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필자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으로서 아들의 유년기 내내 보육과 교육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자녀의 유소년기는 직장인 엄마에게도 사회적 경력을 쌓고 조직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많은 직장맘들이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경력 단절을 면하고 직장에서 어엿한 상사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유보통합이나 늘봄학교 정책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정책일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부모의 안정적 직장생활을 위해서 영유아들이 더 어릴 때부터 가정으로부터 분리되어 보육과 교육을 받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 연방정부에서 운영하는 유아 대상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헤드 스타트 프로그램(Head Start Program)이 있다. 미국 보건복지부에서 1965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60년의 역사를 지닌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프로그램이다. 취학 전 유아를 위하여 교육, 건강, 영양 및 부모 참여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헤드스타트는 빈곤에 대한 ‘예방접종’의 성격을 갖고 있다. 빈곤 아동은 일반 아동에 비해 인지발달이나 건강 상태 등에서 뒤처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청소년기의 학업성취도 부진과 직결돼 결국 성인이 됐을 때도 가난을 면하기 어려운 처지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렸을 때 일반 아동과 빈곤 아동간의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이 빈곤을 막는 지름길이라는 게 헤드스타트의 도입 배경이다.

    그런데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바우처는 매우 다양하게 사용된다. 예컨대 월 100만 원의 바우처가 제공될 경우 부모는 그 돈으로 집 근처 보육이나 교육기관에 가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의 누리과정에 대한 유아교육 지원과 유사하다. 그런데 헤드스타트 프로그램에서는 그 100만 원을 부모가 다니는 직장에 내고, 직장 근무 시간을 단축하고 집에 일찍 들어오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바우처를 교육비로 직접 지불할 수도 있지만, 부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늘리는 간접 비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의 연방교육진흥법(BAföG, 바푁) 제1조에 따르면, “부모는 자녀가 고등교육을 포함하여 첫 직장을 얻는 데 필요한 학위를 받을 때까지 학교생활비를 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존재한다. 단, 경제적 능력이 없는 가정의 경우에는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독일 하면 자녀의 이른 독립을 강조할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이렇게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강조하는 법적 규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의아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모든 정책은 그 정책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와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때 정책에 내포된 문제의식과 목표는 정책을 제안하는 사회집단의 철학 내지 관점을 담고 있다. 모든 자녀들이 양질의 교육과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유보통합을 시행하는 데 있어, 부모와 가정의 역할을 여전히 중심부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유보통합 전면 시행 앞두고 2년 유예론 솔솔”이라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데 소요되는 재정이나 통합시스템 구축의 어려움도 해결해야 하겠지만, 누구를 위한 유보통합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예된 기간동안 부모로부터 자녀를 분리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자녀와 부모가 함께 하면서도 모두 행복한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면 이 정책에 담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 [남수경의 교육시선]은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수고해주신 필자에게 감사드리며, 다음 호부터는 새로운 필진과 함께 독자 여러분을 찾아 가겠습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 남수경 필진 소개
    - 강원대 교육연구소장
    - 강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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