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고라니의 비극만은 아니다⋯로드킬 급증한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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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고라니의 비극만은 아니다⋯로드킬 급증한 진짜 이유는

    로드킬예방협 김경종 대표 동행 르포
    차에 치인 고라니, 90% 끝내 안락사
    “동물들 희생에 미안⋯사람도 죄책감”
    봄철 로드킬 최다⋯사후 처리가 중요

    • 입력 2024.03.07 00:09
    • 수정 2024.03.13 11:05
    • 기자명 오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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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춘천시 남산면 근처에서 차에 치인 고라니가 풀밭에 쓰러져있다. (사진=오현경 기자)
    지난달 28일 춘천시 남산면 근처에서 차에 치인 고라니가 풀밭에 쓰러져있다. (사진=오현경 기자)

    봄철은 일년 중 고라니를 비롯한 야생 동물들이 로드킬(Road Kill·동물이 도로에서 자동차 등에 치여 죽는 사고)을 가장 많이 당하는 시기다. 지난해 강원특별자치도 내에서 발생한 로드킬은 집계된 것만 4336건에 달하고, 파악되지 않은 숫자는 그 3배로 추정된다. 로드킬이 발생하면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도 재산 상의 피해는 물론이고 2차 사고로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 본지는 강원로드킬예방협회 김경종(57) 대표와 함께 로드킬 사고 현장에 출동해 처리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김 대표는 버스 운전사로 일하다가 사고 당한 동물들을 보고 이 일에 뛰어든 인물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로드킬을 막고 동물과 사람이 안전하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아본다.<편집자 주> 

    ▶ 피흘리며 도망치던 고라니, 구조했지만 당일 안락사

    지난달 28일 오전 11시쯤. 춘천시 남산면사무소에 “고라니가 차에 치였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사고가 발생한 곳은 남산면의 한 도로 위. 춘천에서 야생동물 로드킬(동물이 자동차 등에 치어 사망하는 일) 사고 다발구간으로 분류되는 창촌리 일대 시내 진입 구간이다. 시에서 동물 사체 수거 위탁을 맡기고 있는 강원로드킬예방협회 김경종 대표는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고 각종 장비를 챙겨 현장으로 향했다.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도로 위에는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고라니는 사고 현장으로부터 100m쯤 떨어진 풀밭에서 부러진 뒷다리를 질질 끌며 어디론가 기어가는 중이었다.

    김 대표가 다가가자 고라니는 허둥대다 그 자리에서 구르고 넘어졌다. 축 늘어진 다리가 꼬이면서 ‘빽, 빽’ 고통 섞인 비명을 질렀다. 김 대표는 서둘러 커다란 면포를 가져와 고라니의 얼굴을 감싸 덮었다. “이렇게 눈을 먼저 가려줘야 흥분을 가라앉혀요.” 김 대표는 포대에 옮겨진 고라니를 구조 차량에 싣고, 강원대학교 야생동물 전문병원으로 향했다.

    고라니는 검사받는 동안 동그란 눈으로 사람들을 관찰했고, 기자가 보기엔 치료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엑스레이, 방사선 검사 등에서는 경추 손상, 머리뼈·갈비뼈·뒷발 등 몸 전체에서 다발성 골절이 확인됐다. 특히 다친 뒷다리 관절 쪽에서 분쇄골절(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짐)이 확인됐다. 고라니는 그날 바로 안락사 주사를 맞았다. 강원대 야생동물병원 수의사는 “구조돼 들어오더라도 10마리 중 9마리는 치료 불가능한 상태여서 안락사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 마리라도 살리고 싶어 이 일을 하지만, 그런 일이 별로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김경종 강원로드킬예방협회 대표가 다친 고라니를 구조하고 있다. (사진=오현경 기자)
    김경종 강원로드킬예방협회 대표가 다친 고라니를 구조하고 있다. (사진=오현경 기자)

    ▶ “24시간 비상 출동 준비⋯죄책감 갖진 않았으면”

    김 대표가 2021년 동물 구조 활동에 뛰어든 이후 3년간 구조한 동물은 3000여마리에 이른다. 어릴 적부터 동물을 사랑했고, 2년간 춘천시민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하면서 외곽부터 시내까지 여러 노선을 운행하며 수많은 도로 위 생명을 마주쳤다. “로드킬 당해 죽은 동물의 사체를 밟고, 또 밟고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자연은 사람과 동물에게 모두 평등한데 사람에 의해 동물들이 희생된다는 게 너무나 미안했다”고 그는 말했다. 

    야간에 활동이 많은 야생동물 특성상 휴일이나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신고가 들어오기 때문에 24시간 대기는 필수다. 몸과 마음이 지치지만, 구조한 동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며 더 큰 보람을 느낀다. 고라니, 노루, 너구리, 오소리 등 포유류와 참매, 황조롱이 등 구조하는 동물도 다양하다. “철조망에 낀 고라니를 어렵게 구조한 적이 있는데, 고라니가 저 멀리 산으로 뛰어가는데 도중에 갑자기 멈추더니 제 쪽을 한참 쳐다보다가 갔습니다. 마치 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았어요.” 

    춘천 인근에서 구조된 동물은 강원대학교 야생동물병원으로 옮기지만, 이미 죽은 경우 사체는 동내면에 위치한 소각장으로 이동한다. 그는 사고를 신고한 사람들에게 문자로 구조 결과를 안내하고 있다.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한 이들에게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뜻에서다. 그는 “신고자들 중에 동물을 걱정하고 죄책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다”며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고라면 너무 자책하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구조된 고라니가 강원대학교 야생동물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발성 골절 등 회복이 어려운 수준의 부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오현경 기자)
    구조된 고라니가 강원대학교 야생동물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발성 골절 등 회복이 어려운 수준의 부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오현경 기자)

    ▶사람에게도 위험천만⋯로드킬, 이렇게 대처하라

    국립생태원 로드킬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강원지역에서 2019년 1400건이던 로드킬 건수가 2022년 4336건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실은 늘었다기보단 몰랐던 로드킬 규모가 점차 실체를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동물 관련 사고 조사 관리 지침이 만들어지면서 로드킬 정보 수집과 일원화, 통계 수립 등이 막 시작되는 단계”라고 말했다. 각종 연구 자료들은 실제 사고 건수가 2022년 집계된 수치의 3배 이상일 것으로 추측한다.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은 사체들이 자연에 방치되거나 다른 야생동물에게 잡아먹히는 등의 방법으로 사라졌을 것이란 추정이다.

    야생동물과 차가 부딪치는 사고는 동물에게도 위험하지만, 인명 피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 갑자기 도로로 뛰어드는 동물을 피하려다 차선을 이탈하거나 반대편 차량과 충돌할 수 있고, 급제동 시 뒤따라오던 차량과 충돌하는 등 2차 사고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지난해 1월 강원 원주시 소초면의 한 도로에서는 운행 중이던 승용차가 길가에 방치된 동물의 사체를 피하려다 중앙선을 넘어 상대편 차량을 들이받은 사고가 있었다. 이 사고로 피해 차량에서는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쳤다.
     

    강원지역 로드킬 발생 현황. (그래픽=박지영 기자)
    강원지역 로드킬 발생 현황. (그래픽=박지영 기자)

    로드킬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현실적으로 운전자가 조심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도로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는 도로 안전과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2020년 로드킬 저감 대책을 처음으로 수립했다. 사고 다발구간에 유도 울타리를 설치하고, 동물 찻길 사고에 주의하라는 표지판을 설치하는 방안이 도입되고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새끼 고라니가 독립하는 봄철은 로드킬 사고가 가장 많은 기간이다. 김 대표는 “로드킬 우려 지역에서는 도로 주행 중 서행하고, 동물을 치었을 때는 우선 차로 동물이 쓰러진 곳을 막고 선 뒤 빠르게 신고하고, 비상등을 켠 채 기다려야 한다”며 “야간 운행 중에는 도로에 서 있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휴대폰으로 후레시 등을 켜서 흔들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규정 속도 준수, 안전 운전 등 운전자의 작은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오현경 기자 h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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