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과 문화 전쟁을 대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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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국전쟁’과 문화 전쟁을 대하는 자세

    [칼럼] 한상혁 콘텐츠전략국장

    • 입력 2024.02.22 00:00
    • 기자명 한상혁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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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혁 콘텐츠전략국장
    한상혁 콘텐츠전략국장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흥행 역주행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일 공개된 '건국전쟁'은 박스오피스 5위로 출발했으나 서서히 순위를 높여 지난 16일~18일에는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19일 현재 누적 관객 수는 71만여 명이 됐다. 167개로 출발한 상영관 수는 설 연휴를 기점으로 늘기 시작해 900여 개까지 늘었다. '건국전쟁'은 개봉 초기 큰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설 연휴를 기점으로 관객몰이하고 있다. 요즘 한창 주가가 오른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관람한 모습이 언론을 타면서 흥행에 가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감독은 ‘이승만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려 했다’고 밝혔지만 총선을 앞두고 영화의 개봉과 관객몰이는 보수 우파 결집을 위한 목적과 의도가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금까지 영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시도는 여럿 있었으나 주로 진보 좌파 진영이 주도해 왔거나 직·간접적인 이득을 보았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만 꼽아 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변호인’과 5·18 소재 영화 ‘택시운전사’, 12·12 사태를 다룬 ‘서울의 봄‘ 등이 있다. 영화계에서는 ‘진보적인’ 색채를 담은 영화가 흥행할 수 있다는 공식이 있고, 때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실을 지나치게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원전 재난을 다룬 영화를 보고 탈원전을 추진했는데, 이 영화는 과학자들로부터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봐도 보수적 색채를 띤 ‘건국전쟁’의 흥행은 이례적이다. 유명 가수 나얼은 소셜미디어에 ‘건국전쟁‘의 포스터를 게재했다가 야권 성향 네티즌들의 악플 세례를 받고 댓글 창을 닫았다. 나얼은 이 게시물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해 적었는데, 이승만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점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네티즌들은 ‘나얼이 2찍(보수 지지자) 인증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진보 성향을 드러낸 연예인들이 반대 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일은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화, 예술계열의 운동장이 다른 분야보다 더 기울어져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건국전쟁' 포스터가 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1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건국전쟁' 포스터가 나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연예인들은 ‘진보‘ 색채를 드러내는 데 있어 조금 더 당당하다. 한쪽 진영을 지지하는 의사 표현을 넘어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어느 가수는 방송에 나와서도 특정 정치세력을 비난하는데 거침이 없고, “만약 여자친구가 ○○당 지지한다고 생각해 봐, 어떻게 사귀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생각 자체는 틀린 건 아니지만 그는 같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절반 정도가 ○○당 지지자라고 보면 이 가수는 말 몇 마디로 자신의 팬 절반에게 등을 돌린 셈이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음악가로서는 아쉬운 선택이다.

    정치가 문화 예술계로 침투해 ‘문화 전쟁‘이 되는 상황에서 아쉬운 건 상대방에 대한 관용의 태도다. 누구나 정치적인 입장을 가질 수 있다. 문화 예술인, 아니면 체육인의 경우 이를 드러내는 게 바람직한가는 생각해 볼 문제지만, 정치적 입장을 갖는 것만큼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정치적 관점이 그를 미워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분명한 문제다. 다른 사람이 내가 지지하지 않는 쪽을 지지할 수도 있다라는, 아니면 내가 지지하는 쪽이 항상 정의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건국 대통령 영화를 포스팅한 연예인에게 댓글 테러가 일어날 일도 없을 것이다. 문화 예술인을 대하는 일반인의 태도도 그렇고, 직접 정치하는 정치인들에게도 적용되는 일이다. 정치 플레이어들이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빚어지는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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