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황희찬과 춘천 : 후평동과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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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흥민 황희찬과 춘천 : 후평동과 춘천

    [기록과 증언으로 보는 춘천이야기] 손흥민 황희찬과 춘천 : 후평동과 춘천

    • 입력 2024.02.15 00:00
    • 수정 2024.02.19 00:15
    • 기자명 허준구 전 춘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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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준구 전 춘천학연구소장
    허준구 전 춘천학연구소장

    최근 아시안컵 축구대회 열기로 온 나라가 뜨겁게 달아올랐었다. 한국은 산전수전을 겪으며 천신만고 끝에 4강에 오르며 국민들로 하여금 우승이란 희망을 기대하고 꿈꾸게 했다. 이렇게 희망과 기대가 컸던 만큼 결승에 오르지 못하며 아쉬움 또한 컸다. 그럼에도 아시안컵 대회의 주장이자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는 손흥민과 세계적 스타로 부상하고 있는 황희찬 선수의 활약으로 4강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긍심과 함께 위안을 얻었다. 두 선수 모두 우리 고장 후평동에서 태어났으며 1990년대 출생했다는 공통 분모를 지니고 있어서 더더욱 기이하면서도 자랑스러웠다.

    손흥민 선수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하나하나 써넣기 어려울 정도로 많을 뿐만 아니라 그가 보유한 공식 기록 또한 헤아리기 어렵다. 가장 가치 있고 빛나는 기록 몇 가지를 나열하면, 프리미어 리그와 UEFA 챔피언스 리그 아시아 선수 역대 최다 득점자, 아시아 최초로 발롱도르 후보 30인과 FIFA FIFPro 월드 XI 후보 55인에 선정, FIFA 푸스카스상 수상,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선수 4회 선정, 아시아 선수 최초 PFA 올해의 팀에 선정, 프리미어 리그 통산 100골, EPL 8시즌 연속 두 자릿수 골(역대 6명 달성) 및 최초 아시아 선수로 프리미어 리그 골든 부츠 수상, 토트넘 역사상 최다 도움 등을 꼽을 수 있다.

    대룡산의 기맥은 산 아래 고은리 - 거두리 – 가칭 후석고개(석사동 애막골과 후평3동의 경계가 되는 고개) - 옛 향군회관 – 현 한림대학교를 지나며 봉의산에 이르러 응집한다. 대룡산의 기맥이 서쪽으로 뻗어내려 응집한 봉의산을 중심으로 근화·소양동 일대를 전평리(앞뚜루, 앞뜰)라 불렀고, 뒷면 일대를 후평동(뒤뚜루, 뒤뜰)이라 불렀다. 대룡산의 능선 줄기가 명봉과 구봉산으로 이어지며 그 기맥 일부가 후평동 동남 방향을 안온하게 감싼다. 마치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품에 안듯이 대룡산이 후평동을 품는 모양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카타르 알와크라 알자누브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호주의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과 황희찬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카타르 알와크라 알자누브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 호주의 경기가 끝난 뒤 손흥민과 황희찬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후평동 서쪽으로는 대룡산 갑둔이고개에서 발원하여 후평 평야를 뚫고 흘러온 후평천의 물을 소양강이 받아내고 있어서 산을 등지고 강에 임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로 사람이 살기 좋은 명당을 이루고 있다. 1973년 소양강댐이 완공되며 후평동에는 수몰민을 위한 후평공단이 조성되었고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는 관공서와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이러한 확장세에 힘입어 후평동은 1990년대 강원대 후문 지역과 동반 성장하며 춘천 명동 상권에 이어 제2 상권을 형성하여 경제적 풍요를 실현하였다. 1990년대 후평동 상가는 찾아드는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며 닭갈비와 고기 굽는 연기가 하늘 가득하였다. 이 시기 후평동 상가는 최고조의 활황을 누리며 춘천을 찾는 관광객의 단골 탐방코스로 인기가 높았고 지금까지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예로부터 후평동은 배산임수의 명당이고 평야와 낮은 구릉지가 모여 이루어진 분지형 구조여서 물산이 풍요롭고 터전이 안온하여서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후평 평야에 논물을 대던 보(洑)의 안쪽에 있었던 마을이라 보안으로도 불렸으며 후평 평야와 일대 구릉에서 생산된 곡물은 풍성하여 마을 사람을 먹이고도 남음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강원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보안역(保安驛)이 있어서 교통의 중심지 역할도 했으며 이 보안역을 중심으로 주막거리가 형성되었을 정도로 번성하였다.

    손흥민 황희찬이라는 월드 스타가 동시대 동일 공간에서 태어난 배경에는 후평동만이 지닌 배산임수의 자연환경과 물산의 풍요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축구에 이렇게 열광하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공이 둥글듯이 승부를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 때문이다. 비록 아쉽게도 4강에서 멈췄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일상에 아슬아슬한 환호의 역전 드라마를 선사한 춘천의 아들들은 빛났고, 그들의 이름처럼 그 빛은 세상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춘천의 후평동이 낳은 장한 빛이 세계로 퍼져 나가, 두 선수를 통해 다시 춘천에 비추며, 춘천이 축구의 성지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 허준구 필진 소개
    -강원도 지명위원회 위원
    -춘천시 교육도시위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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