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카페야?”⋯연극배우 부부가 차린 예술카페 ‘지내리 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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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가 카페야?”⋯연극배우 부부가 차린 예술카페 ‘지내리 429-1’

    [동네 사장님] 8. 자연 속 전원 카페 ‘지내리 429-1’
    41년 경력 박명환 연극배우 부부가 꾸민 산속 정원
    그림·조각 등 직접 수집한 예술품 전시, 손님 맞아
    “일반인과 예술인이 어우러지는 사랑방 되고 싶어”

    • 입력 2024.01.20 00:04
    • 수정 2024.01.26 00:22
    • 기자명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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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S투데이는 지역 경제의 뿌리인 소상공인을 집중 조명합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우리 이웃의 가게를 발굴하고 ‘동네 사장님’이 가진 철학을 지면으로 전합니다. <편집자 주>

    춘천시 신북읍 지내리의 외딴 산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다 보면 탁 트인 공간에 정원과 두 채의 건물이 손님을 맞이한다. 언뜻 보면 전원주택 같기도, 미술관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곳의 정체는 산속 정원 카페 ‘지내리 429-1’이다. 주소가 카페의 이름이다.

    춘천 신북읍 지내리 429-1번지에 있는 카페 '지내리 429-1'(오른쪽 건물)과 박명환 대표 부부의 전원주택. (사진=박준용 기자)
    춘천 신북읍 지내리 429-1번지에 있는 카페 '지내리 429-1'(오른쪽 건물)과 박명환 대표 부부의 전원주택. (사진=박준용 기자)

     

    지내리 429-1은 41년 동안 연극배우로 활동해온 박명환(68) 대표와 김종월(64)씨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들 부부에겐 카페가 사업장인 동시에 영업이 끝나면 먹고, 자고, 생활하는 집이다.

    박 대표는 인생의 황혼기를 춘천의 자연 속에서 맞고자 전원주택 겸 카페·정원을 직접 건축하고 가꿨다. 카페 내부와 정원에는 그가 평생을 수집한 조각작품, 그림, 예술품이 가득 차 있다. 소규모 개인 전시를 열어도 될 정도로 수집품이 많아 집 내부에 창고처럼 쌓여있다고 한다.

     

    카페 루프탑에서 바라본 정원. 박 대표가 나무 하나까지 직접 고르고 심으며 조성했다. (사진=박준용 기자)
    카페 루프탑에서 바라본 정원. 박 대표가 나무 하나까지 직접 고르고 심으며 조성했다. (사진=박준용 기자)

     

    2년여 전인 2021년 카페를 차린 부부는 아직도 영업이 어색한 초보 사장님이다. 연극 활동만으로는 수입이 적어 20여년 전 전원주택으로 점찍어두고 구매했던 신북읍 지내리 429-1번지 부지에 카페도 함께 차린 것이다. 카페 이름을 주소로 한 이유는 외딴곳이라 손님들이 찾아오기 힘들까 봐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나이 60을 넘어 창업한 만큼 커피와 디저트 ‘전문가’는 아니라고 하지만, 멀리서 찾아와주는 고객들을 위해 원두와 각종 음료에 들어가는 재료만큼은 강원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최고를 엄선해 납품받고, 천연 유기농만을 고집하고 있다.

    아직 초보티를 벗지 못해 우왕좌왕 부딪힐만도 하지만,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지 70일 만에 결혼할 정도로 찰떡궁합이다. 18일 이들을 만나 연극 인생과 카페에 담긴 사연을 들어봤다.

     

    카페 한가운데 있는 조각품 '치우천왕.' (故 신석필 화백作). (사진=박준용 기자)
    카페 한가운데 있는 조각품 '치우천왕.' (故 신석필 화백作) (사진=박준용 기자)

     

    Q.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계신다고요.

    (박명환) 저는 1983년부터 연극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처음엔 연극단 ‘혼성’에서 20년 정도 몸담았고, 이후부터는 프리랜서로 활동 중입니다. 현재도 1인극을 준비하고 있어요. 연극배우가 된 된 계기는 국민학생(초등학생) 때 학예회로 연극을 했던 기억으로 20대 중반쯤 극단에 들어갔는데, 지금까지 40년 넘게 활동하고 있네요. 예술인 중에서도 연극배우는 특히 수입이 적어 지금 영업 중인 카페뿐만 아니라 옷가게, 술집 등 부업도 했습니다.

    Q. 수입이 적었다면 그동안은 어떻게 생활해 왔나요?

    (박명환) 다른 예술 직종도 비슷하겠지만 연극배우는 전업인 ‘프로’,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유지활동을 하는 ‘아마추어 ’로 나뉩니다. 흔히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실력’으로 보는데 사실 진정한 의미는 전업이 가능하냐는 ‘수입’에서 갈립니다. 서울의 큰 극단 소속이 아니면 지방은 프로 배우가 거의 없는 실정이거든요. 저 같은 경우도 연극을 거의 평생 해오고 있지만 항상 다른 일을 했습니다. 덕분에 다양한 일도 경험해보고 사업적인 분야도 개척하고 있죠. 사업 수완도 예전보다 좋아졌고, ‘우동착’ 할인을 시작하니 손님도 늘고 있습니다.

     

    지난 1983년부터 현재까지 연극배우로 활동중인 박명환 카페 ‘지내리 429-1’ 대표. (사진=박명환 대표)
    지난 1983년부터 현재까지 연극배우로 활동중인 박명환 카페 ‘지내리 429-1’ 대표. (사진=박명환 대표)

     

    Q. 예술품들은 어떻게 모으게 됐나요?

    (박명환) 저는 춘천에서 태어나 5년 정도 서울로 나갔다가 돌아왔습니다. 28살부터 연극을 비롯한 예술계에 몸담았으니 자연스레 지역 조각가나 화가 등 예술인들을 많이 만나게 됐고, 예술품을 수집하게 됐습니다. 구매는 물론 선물 받은 것도 많지만요. 제가 가진 모든 예술품은 춘천지역 작가들로부터 구한 작품입니다. 수십년을 모으다 보니 조그만 전시회장을 빌려 개인 전시회를 한 적도 있어요. 주변에 전시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들도 많네요. 앞으로도 계속 수집할 생각입니다.

    (김종월) 흔히들 남편의 취미생활이 돈만 많이 들어가고 쓸데없다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실제로 예술품은 비싸기도 하고요. 하지만, 남편이 예술품을 보는 시각만큼은 탁월해서 큰 불만이 없어요. 솔직히 공원이나 카페도 이쁘게 잘 꾸몄고요.

    Q. 70일만에 결혼에 골인하신 두 분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합니다.

    (박명환) 저희가 서로 40살이 넘어서 결혼했는데 어쩌다 보니 금방 결혼하게 됐습니다. 원래 결혼에 대한 생각이 따로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요.

    (김종월) 제가 결혼 전에는 법률사무소 직원으로 근무했었는데, 그때 남편이 저에게 상담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별로 맘에 들진 않았는데, 하도 고맙다고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다고 조르고 졸라서 한번 만났다가 정신 차려보니 2달 정도 지나고 결혼식장이었죠.(웃음)

     

    만난 지 70일만에 결혼해 인생의 황혼기를 앞두고 문화예술 카페를 차린 박 대표(오른쪽)·김씨 부부. (사진=박준용 기자)
    만난 지 70일만에 결혼해 인생의 황혼기를 앞두고 문화예술 카페를 차린 박 대표(오른쪽)·김씨 부부. (사진=박준용 기자)

     

    Q. 강원지역 농산물 위주로 메뉴를 구성하신다고요.

    (김종월) 저희는 아무래도 60살을 넘은 늦깎이 창업가다 보니 다른 전문 카페들에 비해 실력은 떨어지는 게 사실이에요. 직접 커피 로스팅은 못해도 ‘맛’만큼은 확실하게 대접하고 싶어서 강원에서 제일 맛있다는 원두를 다른 원두업체 사장을 졸라서 추천받은 걸 사용하고 있어요.

    여러 업체 원두를 먹어봤는데 저희가 사용하는게 강원 최고의 맛이라고 자부합니다. 다른 음료나 차, 빵 같은 경우도 춘천산 과일·채소를 대부분 사용하고 있어요. 남편 지인 중에 사과 등 농장을 하는 분이 있어서 모두 유기농으로 들여오고 있죠. 저희가 직접 만드는 옥수수빵과 보리빵이 제일 인기있는데, 어린 시절 먹었던 추억의 맛을 되살리기 위해 수십번이고 만들어 그 맛을 되찾았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와 꿈꾸는 미래가 있다면요?

    (박명환·김종월) 카페가 번창하면 좋겠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이미 인생의 황혼기를 앞둔 만큼 적어도 경제적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연기하고, 가난한 문화 예술인들을 초빙해 저희 카페 정원에서 공연하게 해주고 싶어요. 이미 지금도 날씨 좋은 계절엔 진행하고 있어요. 자녀도 없어서 세상을 떠날 때가 오면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계획입니다. 많은 분이 저희 카페를 찾아오셔서 예술품도 보고, 자연 속 탁 트인 이 공간에서 쉬었다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준용 기자 jypark@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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