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돼지로 살기로 했다” 삼겹살집?, 아니 베이커리 카페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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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돼지로 살기로 했다” 삼겹살집?, 아니 베이커리 카페의 비밀

    [동네 사장님] 5. ‘나’를 만나는 돼지놀이터
    캐나다서 제빵 기술 배운 페이스트리 셰프
    고향으로 돌아와 서면 배추밭에 카페 개업
    지역 농산물로 메뉴 개발, ‘맛’에 진심 담아

    • 입력 2023.12.30 00:09
    • 수정 2024.01.06 00:05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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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S투데이는 지역 경제의 뿌리인 소상공인을 집중 조명합니다. 저마다 사연을 가진 우리 이웃의 가게를 발굴하고 ‘동네 사장님’이 가진 철학을 지면으로 전합니다. <편집자 주>

    춘천 서면 신매리의 배추밭 한가운데 신상 카페 ‘돼지놀이터’가 문을 열었다. 가게 이름만 들었을 땐 삼겹살집인가 착각이 들지만, 캐나다에서 제빵 기술을 배워온 페이스트리(페스츄리) 셰프가 창업한 엄연한 ‘베이커리 카페’다. 미식의 즐거움을 아는 ‘돼지’들이 마음껏 행복해질 수 있는 공간을 꾸리고 싶다는 철학이 담긴 이름이다.

    돼지놀이터의 콘셉트는 명확하다. 출입구 밖에선 산타 모자를 쓴 돼지 동상이 손님들을 맞는다. 내부로 들어서면 갖가지 모양의 돼지 소품이 공간을 지키고 있다. 배추로 감싸진 돼지 인형은 배추밭이 내려다보이는 농촌 한가운데 자리한 이 가게를 상징하는 마스코트가 됐다. ‘돼지바’ 아이스크림을 연상케 하는 쿠키샌드와 케이크도 판매한다.

     

    올해 11월 서면 신매리에 베이커리 카페 ‘돼지놀이터’를 개업한 이남경(31·오른쪽) 대표와 일손을 돕고 있는 친동생 이아람(28)씨가 카페의 상징인 돼지 인형을 들고 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올해 11월 서면 신매리에 베이커리 카페 ‘돼지놀이터’를 개업한 이남경(31·오른쪽) 대표와 일손을 돕고 있는 친동생 이아람(28)씨가 카페의 상징인 돼지 인형을 들고 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취재진과 만난 이남경(31) 대표는 대뜸 “나는 돼지로 살기로 했다”는 말부터 꺼냈다. 타향살이 중 스트레스와 식이장애로 고통받았던 자신을 달래며 한 다짐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캐나다에서 겪었던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나, 고향인 춘천으로 돌아와 ‘나’를 긍정하기로 하고 돼지놀이터를 창업했다. 제빵을 하면서 먹고 싶은 것을 건강히 마음껏 먹고, 진심이 담긴 음식을 소비자들과 나누기 위해서다.

    힘들었던 외국 생활이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스펙트럼이 넓은 다양한 북미 스타일의 제빵 기술을 몸으로 익혔고, 지역에서 얻은 재료를 활용하는 방법도 고민할 수 있었다. 이달 29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은 돼지놀이터에서 이남경 대표와 얘기를 나눴다.

    Q. ‘돼지놀이터’라는 가게 이름이 독특하네요.

    외국어 이름을 사용한 예쁜 베이커리 카페가 유행이긴 하죠. 하지만 제가 지향하는 가치를 손님들에게 직관적으로 보여드릴 방법을 고민했어요. 저는 맛있는 음식을 정말 좋아해요.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맛난 걸 먹게 하는 것도 좋아하죠. 정성을 다해 최상의 상태로 만든 빵과 디저트를 제공하고, 돼지놀이터를 방문한 모두가 ‘나답게’ 미식을 즐기는 경험을 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산타 모자를 쓴 돼지 모양의 동상이 돼지놀이터를 찾은 손님들을 맞이해준다. (사진=권소담 기자) 
    산타 모자를 쓴 돼지 모양의 동상이 돼지놀이터를 찾은 손님들을 맞이해준다. (사진=권소담 기자) 

     

    Q. 소위 ‘감성 카페’는 돼지놀이터의 지향점이 아니었네요.

    돼지놀이터는 장식만 화려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과는 거리가 멀어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을 마련해두긴 했지만, 외적으로 예쁘게 보이는 것보다는 ‘맛’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어요. 손님이 행복한 표정으로 빵을 고르고, 그 순간을 소중하게 즐기도록 유도하고자 합니다. 가게 문을 연 지 두 달이 채 안 됐지만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단골손님이 많아졌어요. 저희 같은 로컬의 가게들은 주인장과 결이 비슷한 손님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인스타그래머블이란 인스타그램(instagram)와 에이블(able)의 합성어로 ‘인스타에 올릴만한’ 뜻의 신조어다.)

    Q. 빵 만드는 기술은 캐나다 현지 베이커리에서 익히셨다고요.

    2017년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후, 제빵 현장 밑바닥부터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죠. 처음엔 호텔에 빵을 납품하는 베이커리에서 일을 배웠고, 현지 커피 프랜차이즈인 팀홀튼에서 일하면서 커피에 대해서도 공부했어요.

    나중에는 제빵 분야에서 경력을 더 쌓고 싶어서 밴쿠버의 유명 베이커리인 라포레(La Foret)로 자리를 옮겼어요. 자격증도 취득하고, 실력을 인정받아 ‘페이스트리 셰프’까지 올라간 후 올해 9월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강점은 다룰 수 있는 제과‧제빵 분야가 넓다는 거예요. 바게트나 사워 도우 같은 하드(hard) 계열부터 간식처럼 먹을 수 있는 소프트(soft) 빵까지 만들 수 있습니다.

     

    돼지놀이터의 다양한 휘낭시에 메뉴. 맨 오른쪽이 토마토치즈휘낭시에. (사진=돼지놀이터)
    돼지놀이터의 다양한 휘낭시에 메뉴. 맨 오른쪽이 토마토치즈휘낭시에. (사진=돼지놀이터)

     

    Q. 빵과 디저트에 지역 농산물을 접목하셨다고요.

    대표 메뉴는 휘낭시에 등 구움과자와 소금빵인데요. 어머니가 사북면 오탄리에서 재배하시는 마늘, 방울토마토, 고구마 등을 원재료로 사용하고 있어요. 마늘은 마늘소금빵, 방울토마토는 토마토치즈휘낭시에, 고구마는 고구마휘낭시에와 고구마소금빵에 활용합니다. 밀가루와 전분을 넣지 않은 글루텐프리 치즈케이크도 판매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넣는 계란도 물론 춘천산을 사용하고 있어요.

    Q. 소금빵 종류가 정말 다양하네요.

    요즘 소금빵이 유행이잖아요. 기본적으로 질 좋은 국내산 소금과 뉴질랜드산 버터를 쓰고 있고요. 여기에 올리브, 소시지, 소보로, 단팥앙금, 커피 번 등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개업 초기라서 여러 가지 형태의 빵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손님들과 소통하면서 제품군을 갖춰 나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질 좋은 재료로 만든 돼지놀이터의 다양한 소금빵 메뉴. (사진=권소담 기자)
    질 좋은 재료로 만든 돼지놀이터의 다양한 소금빵 메뉴. (사진=권소담 기자)

     

    Q. 지역과 함께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에요.

    우동착을 통해 10% 할인해 드려요. 특히 평일(월~목)에는 주로 춘천시민들이 오시니까, 지역과 상생한다는 의미에서 음료는 20% 할인 혜택을 드리고요. 장작을 구비해두고 날씨가 좋을 때는 무료로 ‘불멍’을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돼지놀이터라는 ‘나다운’ 공간을 만들 수 있었듯, 춘천시민들이 이곳에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가게 문을 나설 때 모두가 미소 지으며 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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