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감언이설] 힘든 시절의 축제
  •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형석의 감언이설] 힘든 시절의 축제

    • 입력 2023.11.16 00:00
    • 수정 2023.12.07 14:54
    • 기자명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지자체의 보조금을 통해 문화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 11월은 가장 가슴 떨리는 시간이다. 내년 예산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정해진 예산 속에서 최대한 행사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다행히 나름 내세울 만한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자부하기도 하지만, 예산을 책정하는 주무 부서와 그 예산을 통과시키는 의회의 관점은 다르다. 그들은 여러 문화 행사와의 균형, 시 전체가 지니는 문화적 방향성, 예산 집행의 투명성 등 여러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만들어지는 ‘내년 예산’ 앞에서 안도 혹은 걱정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춘천영화제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경제적으로 힘든 요즘, 내년 춘천의 축제 예산은 10~20% 정도 전반적으로 축소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긴축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예산을 줄여야 할 상황이 될 때, 보통 가장 먼저 문화 관련 예산을 줄이기 때문이다. 국비도 마찬가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제 지원 예산은 올해 56억2900만원에서 내년엔 50% 삭감되어 28억1500만원으로 책정되었다. 영화제만 타격을 입은 게 아니다. 영화계 전체가 절망적이다. 영화 기획 개발 지원, 제작 지원, 독립영화 제작 지원, 해외 진출 지원 등 거의 모든 지원 사업이 큰 규모로 감액되었다.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이나 지역 네트워크 예산은 아예 ‘제로’가 되었다. 나라 곳간이 힘든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영상 산업의 인프라가 되는 이른바 ‘풀뿌리 예산’이 큰 타격을 입는 상황이다. 최근 화두가 된 ‘R&D 예산’처럼, 영화를 포함한 독서와 출판 같은 문화 전반의 ‘기초 예산’이 상당 부분 감액되거나 일부는 사라졌다.

    다시 돌아가는 질문. 왜 문화 예산일까? 당장 먹고 사는 것과 상관없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1~2년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문화가 돈이 된다”는 실사구시의 모토는, ‘K-브랜드’의 전세계적인 열풍 속에서 오래 전에 이미 사실로 증명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중 내세울 만한 건 사실 ‘문화’ 밖엔 없다. 그럼에도 ‘예산’이라는 벽 앞에서 문화는 항상 뭔가 죄스럽고 비생산적이고 위축되는 존재다. 따지고 보면 순서도 항상 정치-경제-사회-문화 아닌가? 이상한 관습일 수도 있고, 한국이라는 나라의 현실을 반영한 위계 질서일 수도 있겠다. 정치가 최종심급이 되고 문화는 가장 아래에서 좌지우지되니까.

    척박한 상황 속에서 문화가 성과를 내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엔 없다. 짜내는 것이다. 무엇을? 사람을. 경상비를 줄이지 못하면 행사비를 줄여야 한다. 경상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여야 행사의 성과가 그나마 유지되고, 그 다음 해 예산을 지킬 수 있다.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은 두 가지다.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 혹은 노동 강도를 높이는 것. 대부분 후자의 방식을 선택한다. 미리 위로한다. 내년에 춘천 지역의 많은 축제 관계자들이 겪을 고충을. 그리고 춘천 시민 분들께 부탁드린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만들어낸 문화 축제에 조금만 더 따스한 시선으로,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길. 힘든 시절일수록 우리에겐 축제가 필요하니까.

     

    ■김형석 필진 소개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영화 저널리스트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7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