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이 장식품만 1억 별난 수집가⋯“‘BTS 부엉이’도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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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엉이 장식품만 1억 별난 수집가⋯“‘BTS 부엉이’도 만들었죠”

    은퇴 후 춘천 정착한 김선숙, 전시공간과 작업실 마련
    해외여행 다니며 수집한 부엉이 장식품 1억원 규모
    부엉이 도예품 제작, 최근 첫 전시회서 공개

    • 입력 2023.11.10 00:01
    • 수정 2023.11.17 12:00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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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 날개를 편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1820년 펴낸 '법철학'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문구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격동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참된 지혜가 생긴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의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젊은 시절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삐 살다가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고서야 자신만의 인생을 찾아나선다.

    몇해 전 춘천으로 이주한 김선숙 씨의 삶도 이와 닮아있다. 중·고교 교사로 청춘을 보낸 그는 고향 춘천으로 돌아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인생 2막을 맞이한 그의 곁은 어린 학생들 대신 수천마리의 부엉이가 지키고 있다. 

     

    춘천 신북읍 율문리에 위치한 김선숙 씨의 작업실은 마당부터 부엉이 장식품이 반긴다. (사진=한승미 기자)
    춘천 신북읍 율문리에 위치한 김선숙 씨의 작업실은 마당부터 부엉이 장식품이 반긴다. (사진=한승미 기자)

     

    춘천 신북읍 율문리의 한 골목. 세월이 묻은 연립과 주택 사이로 동화 같은 집이 자리하고 있다. 담낮은 울타리 너머로 1m는 돼 보이는 한 쌍의 부엉이가 반기고, 곳곳에 부엉이 모양을 한 도자기나 나무 장식품들이 놓여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공간은 김선숙 씨가 일과를 보내는 곳이다. 1층은 도자기 작품을 만드는 작업실이고 2층은 각종 장식품을 모아둔 작은 갤러리다. 이 공간이 특이한 점은 마당은 물론 건물의 1, 2층 그리고 그 사이의 계단까지 모두 부엉이 장식품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수십여년간 김 씨가 수집하거나 만들었는데 구입 비용만 해도 무려 1억여원이 훌쩍 넘는다.

     

    은퇴 후 고향 춘천에 정착한 김선숙 씨는 그동안 수집한 부엉이 장식품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사진=한승미 기자)
    은퇴 후 고향 춘천에 정착한 김선숙 씨는 그동안 수집한 부엉이 장식품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사진=한승미 기자)

    부엉이에 대한 그의 사랑은 수십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1989년부터 틈틈이 해외로 나갔다. 방문한 나라만 64개국에 달하는데 주변에서는 북한과 수단만 빼고 다 가봤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처음에는 코끼리와 같은 기념품을 사다가 어느 순간 부엉이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부엉이는 어느 나라에서나 비슷한 모양을 한 다른 동물 장식품들과 달리 제각각 다른 표정과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재물을, 서양에서는 지혜를 상징하는 등 부엉이가 가진 의미들도 영향을 미쳤다. 또 남극과 그린란드를 제외하고 세계 곳곳에 130여종이 분포한 만큼 조금씩 다른 모양과 생김새가 여행한 나라의 추억을 담기에 충분했다. 

    김선숙 씨는 “부엉이는 다양한 표정으로 여러 감정을 전하는 것 같아 좋아하게 됐다”며 “특히 매서운, 강해 보이는 표정을 좋아하는데 제가 부엉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1억여원에 달하는 부엉이 장식품에는 각국의 특색이 담겨있다.(사진=한승미 기자)
    1억여원에 달하는 부엉이 장식품에는 각국의 특색이 담겨있다.(사진=한승미 기자)

    실제로 그가 수집한 부엉이 장식품에서는 각국의 문화와 종교, 환경, 민족성 등을 엿볼 수 있다. 장식품들은 나무나 도자기, 호박 등 각 나라에서 흔한 광물이나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특유의 미감도 드러난다. 또 지혜를 상징하는 국가의 부엉이는 책을 읽는 모습을 하고, 신분에 따라 다른 의복 무늬를 가진 나라는 부엉이도 그에 맞는 모습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집을 넘어 직접 만들기에 나섰다. 여러 나라에서 구입한 장식품들이 점점 ‘메이드 인 차이나’로 변해가면서 수집의 의미가 퇴색됐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부엉이의 모습을 직접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김선숙 씨가 부엉이 작품을 직접 만드는 공간. (사진=한승미 기자)
    김선숙 씨가 부엉이 작품을 직접 만드는 공간. (사진=한승미 기자)

     

    퇴직 후 인도네시아로 떠난 봉사활동에서 가죽공예를 배운 그는 1000마리의 가죽 부엉이를 만들어 모빌처럼 엮는 등 다양한 시도에 나섰다.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도자기 수업을 들으며 도예에 관심을 갖게 됐고, 춘천에 작업실까지 마련하게 됐다. 서면 박사마을에서 태어난듯한 박사 부엉이부터 방탄소년단(BTS) 부엉이까지 상상한 모습 그대로 작품이 됐다. 그렇게 완성한 부엉이 작품만 수백여점, 최근에는 이를 공개하는 첫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24시간 부엉이 생각만 하다보니 길가에 고인 물웅덩이도 부엉이 모양으로 보인다”며 “부엉이에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무엇이든지 부엉이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선숙 씨는 최근 전시회를 열고 직접 만든 작품들을 공개했는데 BTS 부엉이(사진 위)가 가장 큰 관심을 모았다. (사진=한승미 기자)

    마지막 버킷리스트는 춘천에 부엉이 박물관을 짓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역사성이 있는 부엉이 조각품이나 대형 작품 등을 수집할 계획이다. 

    김 씨는 “죽을 때까지 부엉이를 만들며 노후를 보내고 싶다”며 “가능하다면 춘천에 부엉이 박물관을 짓고 많은 사람들에게 부엉이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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