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태권도축제, 행안부 심사 피하려 예산쪼개기 ‘꼼수’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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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태권도축제, 행안부 심사 피하려 예산쪼개기 ‘꼼수’ 의혹

    춘천 태권도문화축제, 도 심사 이후 예비비 18.4억 반영
    총사업비 30억원 넘었는데 행안부 재심사 받지 않아
    대회 종료 2개월 지났는데 정산은 아직
    과도한 예산 집행에 ‘고비용·저효율’ 지적

    • 입력 2023.11.02 00:02
    • 수정 2023.11.08 00:04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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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지영 기자)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을 ‘태권도시’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열렸던 '세계태권도문화축제'가 지난 8월 막을 내렸다. 주최 측인 춘천시는 축제가 끝난 뒤 “세계 태권도 중심도시로 우뚝 섰다”고 자평했지만, 지역사회의 평가는 엇갈렸다. 예산 수립부터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 종료 이후까지도 논란의 연속이다. 당장 내년 축제를 바라봐야할 판인데 대회가 끝난지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정산이 이뤄지지 않았고, 내년 축제 예산은 시의회에 막혀있다. 혹자는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한다. 심지어 예산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중앙 정부의 심사를 받지 않은 점이 감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본지는 기획보도를 통해 춘천 세계태권도문화축제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춘천시가 지난 8월 세계태권도문화축제를 치르면서 원칙상 받아야 하는 중앙 정부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는 심사 대상이 아니라며 항변하고 있지만, 법령상 위반 소지로 보이는 정황이 다수 확인되면서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자칫 잘못된 재정 운영이 적발될 경우 지방교부세 지원금이 감액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시와 대회조직위에 따르면 이번 ‘2023 강원·춘천 세계태권도문화축제’에는 총 47억4000만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다. 당초 본예산 29억원(보조금 27억+민간자본 2억)만으로 대회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특설경기장(에어돔) 준공이 연기되고, 세계대회 1종목이 추가되면서 예비비 18억4000만원이 추가로 투입됐다.

    지방재정투자사업 심사규칙 제3조 3항에 따르면 ‘시·도 또는 시·군·구의 총사업비 30억원 이상의 공연·축제 등 행사성 사업과 홍보관 사업’은 행정안전부의 중앙의뢰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투자심사 이후에도 총사업비가 30% 이상 증가한 경우에도 재심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축제의 당초 총 사업비는 29억원으로 책정돼 시는 지난 3월 강원특별자치도의 투자심사를 받았다. 30억원 미만이라 도의 투자심사를 받는 것이 맞지만, 3개월 뒤인 6월 예비비 18억4000만원이 추가 편성돼 전체 사업비가 60% 이상 증가했다. 이에 따라 원칙상 행정안전부로 투자심사기관을 변경해 재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시는 중앙심사를 거치지 않아 법령상 위반 소지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용덕 도 예산과 재정심사 담당은 “투자심사 매뉴얼은 행사를 치르는데 필요한 모든 비용을 합산하는 것으로 원칙상 중앙심사를 받는 것이 맞다”며 “이미 행사를 치러 중앙심사를 권고할 단계를 지나 알게 됐는데 사전에 알았다면 당연히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1~2억도 아니고 18억원이 늘어났다는 것은 애초에 계획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행안부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재심사를 받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된다면, 감사를 받을만한 사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행안부 재정정책과 중앙의뢰심사 총괄 담당은 “총사업비가 30% 이상 늘어났는데 재심사를 받지 않은 것은 법령상 위반이다. 재심사 대상인데 받지 않고 행사를 치렀다면 감사 영역으로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고, 감사에서 지적이 되면 교부세 감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춘천시는 늘어난 예비비가 지방재정법상 ‘편성’된 예산이 아니라 ‘배정’한 개념이라 중앙투자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지방재정법 제37조의 ‘재정투자사업에 관한 예산안 편성’ 조항에서 ‘편성’이라는 단어를 자체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영인 시 기획예산과 주무관은 “투자심사는 지방재정법에서 예산안 ‘편성’일 경우 받게끔 되어 있다”며 “예비비는 ‘편성’ 개념이 아닌 ‘배정’ 개념이라서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의 해명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가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한 ‘2023 강원·춘천 세계태권도문화축제 예비비 사용계획’에는 예비비를 배정이 아닌 ‘편성’으로 적었다. 시는 예비비가 필요하다는 사유로 “규모 및 여건 변동에 따른 추가소요비용 발생”한다며 ‘예비비 편성은 6월 26일, 예산 집행은 6월 27일부터’라고 명시했다.

    행안부 중앙의뢰심사 총괄 담당은 “예비비가 투자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근거가 없는 내용으로 관련해 별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비비 사용 적절했나⋯현수막 555개 등 홍보비에 약 4억원 지출

    예비비 등 예산이 늘어난 배경에 대한 의문점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지방재정법에 따르면 예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또는 예산 초과 지출에 충당하기 위하여’로 그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춘천시는 예비비 사용계획을 작성하면서 ‘규모 및 여건 변동에 따른 추가 소요비용’ 13억3300만원을 비롯해 △축제 홍보 2억8500만원 △관람객 편의 5200만원 △미디어 광고 1억7000만원 등 총 18억4000만원의 추가재원이 필요하다고 산출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홍보 비용과 언론 광고 등은 본예산에 포함해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본예산 정산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아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을 산출한 것인지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불가피하게 더 써야하는 항목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시의원들도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중앙투자심사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본 예산을 30억보다 낮은 29억원에 맞춰놓고, 사실상 예비비 사용을 계획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배숙경 춘천시의원은 “중앙투자심사 통과가 쉽지 않으니 춘천시가 이를 피하기 위해 금액을 맞춰 올리는 식으로 ‘편법 쪼개기’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예비비 사용은 목적에도 맞지 않고 중앙투자심사도 받지 않은 법령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9억원이면 웬만한 축제는 다 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인데 알맹이도 없는 행사에 예비비 18억4000만원을 더 끌어 쓴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비비 사용 신청 시기 등을 보면 사전에 본예산(보조금) 이외에 예비비를 신청할 계획을 갖고 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 정산 내역에서도 예비비 편성 규정인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이라고 보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항목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거리홍보용 현수막 4290만원 △언론홍보 1억7000만원 △홍보자료 구입 3900만원 등이다.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항목인 만큼 본 예산에 편성되는 항목들이다.

    예산을 들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났는지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시는 예비비에 포함된 금액 중 1740만원을 팸플릿과 리플릿 6000장 제작에 썼지만, 정작 방문객들에게 제대로 배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춘천시 체육과 관계자는 “운영이 미숙하다 보니 관계자들이 제대로 배포하지 않았다”며 “추후에 이를 인지하고 경기장 곳곳에 비치해 방문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대외 홍보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내건 거리 현수막도 무려 555개나 쓴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거리 현수막 250개(2000만원), 대형현수막 5개(1000만원), 가로등 현수기 300개(900만원) 등이다. 이렇게 예비비에서 투입된 홍보비용만 약 4억원 수준이다. 

    한 행사기획 업계 관계자는 “단일 행사 기준으로는 거리 현수막에 과도한 비용이 들어간 경향이 있다”며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과거 지역 스포츠단의 연간 현수막 비용이 1억원 수준이었는데 단 한 차례 행사에 절반 가까운 금액을 쓴 건 좀 무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 쓰고도 욕먹은 “고비용·저효율의 극치”⋯끝난지 2개월째 정산도 못해

    지역사회에서는 이번 축제가 고비용 저효율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대대적인 홍보를 펼친 것에 비해 축제기간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은 1만3500여명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날짜별로 집계하지 않고 각 행사장 좌석의 점유율을 기반해 대략적으로 잡았기에 실제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시는 지난 10일 ‘2024 세계태권도문화축제’를 포함한 춘천레저·태권도조직위원회 출연 동의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축제 종료 이후 2개월이 지났지만 본예산(보조금) 정산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시의원들은 “이전 행사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근거 없이 심의할 수 없다”며 부결했고 12월에 다시 심의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하지만 조직위가 사업 기한을 11월 말로 연장, 보조금 정산 기한도 1월말로 미뤄지면서 12월에 열릴 심의가 정산 마무리 이후 치러질지 불투명해졌다. 

    윤민섭 시의원은 “방문객 1인당 지출 규모로 봐도 세계태권도문화축제는 지역에서 열리는 다른 축제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예산이 많이 투입됐다”며 “민선8기 육동한 춘천시정이 이번 WT유치와 문화축제를 추진하면서 졸속 행정, 혈세 낭비를 한 것은 아닌지, 내 돈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MS투데이는 2023 강원·춘천 세계태권도문화축제의 운영 과정에 대해 후속 보도할 예정입니다. 운영 과정에서 미숙한 점은 없었는지, 정산이 늦어지고 있는 예산 사용에 문제는 없었는지 등에 대해 꼼꼼히 살펴볼 예정입니다. 이와 관련 제보를 기다립니다. (singme@mstoday.co.kr)

    [한승미·진광찬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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